
[암약]
1장
아카데미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대로 시카마루는 정해진 시간에 눈을 떴다. 낯익은 천장을 바라보며 하품을 하던 그는 문득 옷에서 배어 나오는 고기 탄내와 담배 냄새를 맡고 어제저녁 쵸지와 늦게까지 술을 마셨던 기억을 떠올렸다. 한밤중에 돌아와 씻지도 않고 옷만 벗어 던진 채 잠들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분명 꼼꼼한 성격의 테마리가 자신을 위해 목욕물을 받아두고 밥상보를 덮어 저녁까지 차려두었을 것이 뻔했기에, 연락도 없이 외박이나 다름없는 짓을 저지른 미안함과 앞으로 닥쳐올 귀찮은 상황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어지럽혔다.
시카마루는 기합을 넣듯 제 뺨을 두어 번 내리치고는 헝클어진 머리를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장지문을 열어 복도로 나선 순간, 눈앞에 서 있던 아들 시카다이와 마주쳤다. 잠긴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건네는 아버지에게 시카다이는 엄마의 기분이 무척 좋지 않다는 사실을 속삭이며 힘내라는 말을 남겼다. 주방 쪽에서 들려오는 평소보다 날카롭고 강한 도마 소리는 테마리의 분노가 심상치 않음을 짐작하게 했다. 시카마루는 어느덧 훌쩍 커서 자신을 위로하는 아들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복잡한 감정에 젖었다. 중닌 시험에서 적으로 만났던 여자가 아내가 되고, 자신을 꼭 빼닮은 아들이 생긴 인생의 유전이 새삼 묘하게 느껴졌다.
아들을 배웅한 시카마루는 잔뜩 긴장한 채 주방으로 향했다. 뒤돌아보지도 않는 아내의 뒷모습에 목욕하러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욕실로 몸을 숨겼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닥쳐올 잔소리를 걱정하던 그는 욕실 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세탁된 임무 복을 발견했다. 화가 난 와중에도 자신을 챙긴 아내의 배려에 복잡한 마음으로 옷을 챙겨 입고 안방 밥상 앞에 앉았다. 정갈하게 차려진 나라 가문의 아침 식사가 놓여 있었지만, 테마리는 묵묵부답이었다. 시카마루는 어설픈 변명 대신 솔직하게 잘못했다며 사과를 건넸고, 평소보다 정중하게 밥을 먹으며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테마리의 침묵은 예상보다 길고 무거웠다. 단순히 연락 없이 늦은 것치고는 분위기가 너무 싸늘했다. 밥을 더 먹겠느냐는 짧은 물음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평소보다 예의를 갖추던 시카마루에게, 테마리는 마침내 어제가 무슨 날이었는지 기억하느냐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 순간 시카마루의 머릿속에는 오오츠츠키 사건 처리와 오카게 회담 준비에 치여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결혼기념일'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당황한 그는 밥상에 이마가 닿을 정도로 숙이며 거듭 사과했지만, 테마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제의 시간을 언급하며 차갑게 돌아섰다.
회담 준비로 집을 나서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시카마루는 서둘러 남은 밥을 입에 밀어 넣었다. 부엌에서 등을 돌린 채 늦겠다며 덤덤하게 말하는 아내에게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하고는 도망치듯 집을 뛰쳐나왔다. 호카게 관저로 향하는 외나무다리 위에서 그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는 흰 구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족이라는 존재의 무게와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이 복잡한 상황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는 입버릇처럼 귀찮다는 말을 나직이 읊조렸다.
2장
나뭇잎 마을에서 열린 오카게 회담장은 평소와 다른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원탁 중앙에 앉은 나루토의 뒤에서 보좌하던 시카마루는 그 이질적인 분위기의 정체를 살피며 바위 마을의 츠치카게 쿠로츠치를 주목했다. 회의가 시작된 이후 줄곧 날카롭고 긴장된 눈빛으로 나루토를 쏘아보던 쿠로츠치는 나루토가 오오츠츠키의 습격 사건과 중급 닌자 시험 중단에 대해 사후 설명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기색을 풀지 않았다. 나루토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끼면서도 지난번 납치 사건 때 탈환에 도움을 준 다른 카게들에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며 거듭 사과했다.
카제카게 가아라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라이카게 다루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나른한 태도로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미즈카게 쵸쥬로 역시 앞으로 이변이 있으면 즉시 공유해달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나 쿠로츠치는 나루토의 온화한 태도를 차갑게 끊어내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녀는 언제나 큰 사건의 중심에는 나뭇잎 마을이 있으며, 다른 마을들이 사태를 파악할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된 뒤라며 강하게 몰아붙였다. 급기야 책상을 내리치며 격분한 쿠로츠치는 나루토의 아들이 시험 중에 사용했던 과학 닌구를 거론하며 나뭇잎 마을이 뒤에서 은밀하게 병기를 개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당황한 나루토가 과학 닌구반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쿠로츠치는 이를 단순한 발뺌으로 치부하며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과학 닌구가 닌자의 근간인 수련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혈계한계의 기술마저 누구나 쓰게 만드는 위험한 무기임을 강조하며 나루토를 압박했다. 이때 옆을 지키던 시카마루가 개입하여 어느 마을이나 발전을 위해 도구를 개발하고 있으며, 이를 군사적 이용으로 단정 짓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반박했다. 다루이 역시 시카마루의 말에 동조하며 분위기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뜻밖에도 늘 우호적이었던 쵸쥬로가 쿠로츠치의 의견에 힘을 실으며 나뭇잎 마을의 독주를 경계하는 발언을 던졌다. 시카마루는 안개 마을과 바위 마을 사이의 자원 수급과 관련된 경제적 밀약 가능성을 직감하며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공격의 화살은 결국 우치하 사스케에게로 향했다. 쿠로츠치는 과거의 죄인인 사스케가 나뭇잎의 비호 아래 각국을 돌아다니며 스파이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쏘아붙였고, 나루토는 친구를 향한 비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시카마루는 다시 한번 나서서 닌자의 정찰 업무에 대한 동맹의 규칙과 사스케의 신병에 대해 이미 오카게 사이의 합의가 끝났음을 상기시키며 쿠로츠치를 막아 세웠다. 하지만 쿠로츠치는 물러서지 않고 나뭇잎 마을이 진정으로 협조할 의지가 있다면 마을의 기밀 정보를 모두 공개하라는 파격적인 요구를 던졌다. 만약 이를 거부할 경우 바위 마을은 동맹에서 탈퇴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남긴 채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으며, 쵸쥬로 역시 그 뒤를 따랐다. 홀로 남겨진 나루토가 힘없이 중얼거리며 당혹해하는 가운데, 시카마루는 벽에 기댄 채 특유의 한숨을 내뱉으며 귀찮게 꼬여버린 상황을 곱씹었다.
3장
나뭇잎 마을의 호카게 집무실 옆, 시카마루는 자신의 사무실을 찾아온 두 명의 암부 닌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원숭이 탈을 쓴 키 큰 남자와 고양이 탈을 쓴 작은 체구의 여자는 각각 로와 히노코였으며, 시카마루와는 과거 고요의 나라에서 생사를 함께했던 각별한 동료들이었다. 고양이 가면을 벗은 히노코는 예전의 긴 오렌지색 머리를 짧게 자른 채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고, 여전히 본명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하며 시카마루와 티격태격했다. 원숭이 가면을 벗은 로는 어느덧 머리칼에 흰머리가 섞인 노련한 베테랑의 풍모를 풍겼으나, 여전히 썰렁한 농담을 던지며 진지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애썼다. 시카마루는 현재 암부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두 사람의 일정을 무리하게 비워 이 자리에 불렀는데, 이는 그만큼 이번 사안이 중요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시카마루는 장갑을 낀 손으로 입가를 만지며 바위 마을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대해 입을 열었다. 최근 열린 오카게 회담에서 츠치카게인 쿠로츠치가 나뭇잎 마을의 기밀 정보를 공개하라는 비상식적인 요구를 해왔다. 그녀는 중급 닌자 시험에서의 과학 닌구 소동과 사스케의 단독 조사 활동을 빌미로 나뭇잎 마을이 타국을 추월하려 한다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시카마루는 쿠로츠치의 이런 무모한 행보가 단순히 정보 공개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판을 어지럽혀 무언가를 숨기려는 교란 작전이라고 판단했다. 닌자 세계의 평화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 그는 바위 마을 내부의 마그마 정도, 즉 그들이 숨기고 있는 내정의 실체를 조사해달라고 두 사람에게 요청했다.
히노코는 전시 태세에 돌입했을지 모를 바위 마을에 잠입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에 시카마루는 타인의 차크라로 위장하거나 자신의 차크라를 완벽히 억제할 수 있는 로의 기술과, 미세한 차크라 바늘로 상대의 차크라 흐름을 끊어 감시를 무력화하는 히노코의 실력을 치켜세우며 그들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시카마루는 자신 또한 정면으로 당당하게 바위 마을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은퇴한 츠치카게인 오오노키와 장기를 두러 간다는 구실을 만들어 마을의 모든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그 틈을 타 두 사람이 잠입할 수 있도록 미끼가 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예상치 못한 시카마루의 동행 소식에 히노코는 깜짝 놀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로는 시카마루의 깊은 뜻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히노코는 시카마루의 배려에 고마워하면서도 겉으로는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특유의 말투로 투덜거렸고, 로는 다시 한번 어설픈 농담을 던지며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다. 시카마루는 여전히 변함없는 두 동료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든든함을 느꼈다. 그는 평화라는 환상이 깨지기 전에 불안의 싹을 잘라내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며, 두 사람에게 이번 임무를 정중히 부탁했다.
4장
시카마루는 3개월 만에 얻은 귀한 휴가를 내어 홀로 바위 마을로 향했다. 마을 경계에 들어서자마자 경호를 명목으로 마중 나온 닌자들은 시카마루를 밀착 감시하듯 안내했고, 시카마루는 그들의 날 선 눈빛에서 바위 마을이 이미 비상 태세에 돌입했음을 직감했다. 그는 현 츠치카게인 쿠로츠치와의 면회 대신 선대 오오노키를 만나러 왔다는 개인적인 용무를 명확히 밝힌 뒤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한 소박한 은거지로 안내받았다. 화려함 없이 조촐하게 지내는 노인의 처소에서 시카마루는 진정한 닌자의 심지를 느끼며 그와 장기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귀가 어두워진 오오노키는 시카마루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채 장기 대국에 몰두했다. 오오노키는 공격에만 집중한 나머지 자신의 왕이 위험에 처한 것을 깨닫지 못했고, 시카마루가 목소리를 높여 장군이라고 여러 번 외쳤음에도 비차의 경로를 읽지 못했다.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오오노키는 체면을 구기자 홧김에 장기판을 뒤엎어버리며 재대결을 요구했다. 시카마루는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장기알을 주워 모아 판을 정리했고, 노인의 몸에서 여전히 뿜어져 나오는 승부욕과 야심을 살폈다.
시카마루는 다시 장기판을 짜면서 바위 마을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대해 슬며시 질문을 던졌다. 지난 회의에서 쿠로츠치가 나뭇잎 마을의 기밀 공개를 압박하고 안개 마을과 공조하려 했던 움직임을 언급하며 오오노키의 반응을 살핀 것이다. 오오노키는 이미 은퇴한 몸이라며 손녀에게 모든 일을 일임했다고 대답을 회피했으나, 시카마루는 담배를 피워 물며 노인이 말 못 할 사정을 숨기고 있음을 확신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오오노키는 아무리 세상이 평화로워도 닌자는 결국 닌자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중얼거렸다.
그 순간 쿠로츠치가 거친 발소리를 내며 예고 없이 응접실로 들어섰다. 그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시카마루를 내려다보았고, 오오노키는 손녀의 등장에 시선을 내리깔며 침묵을 지켰다. 쿠로츠치는 시카마루가 정보를 탐색하러 온 것이 아니냐며 날카롭게 몰아세웠고, 나뭇잎 마을이 자신의 제안을 수용할 것인지에 대해 확답을 요구했다. 시카마루는 단순히 휴가를 온 것이라며 얼버무렸고, 테마리와의 부부 관계를 들먹이는 쿠로츠치의 비아냥을 담담하게 받아치며 유연하게 대응했다.
결국 대화가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시카마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장기판을 응시하고 있는 오오노키에게 상황이 안정되면 다시 대국하러 오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오오노키는 힘없는 목소리로 기다리겠다는 대답을 남겼고, 시카마루는 쿠로츠치의 서늘한 시선을 뒤로한 채 신발을 신고 은거지를 나섰다. 등 뒤로 들려오는 쿠로츠치의 악의 없는 배웅 인사를 들으며 시카마루는 씁쓸한 여운을 안고 마을을 떠났다.
5장
바위 마을에서 돌아오자마자 시카마루는 쉴 틈도 없이 집무실로 향했다. 억지로 만들어 낸 짧은 휴가였기에 자리를 비운 단 3일 사이에 책상 위에는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호카게의 상담역으로서 자신과 나루토에게 집중된 과도한 업무량을 실감하며, 마을의 체계를 개선하고 유능한 인재를 발탁해 결재권을 분산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수많은 서류를 검토하고 도장을 찍으면서도, 정작 닌자의 근본인 술법 수련에는 소홀해진 채 잡기술에만 능숙해져 가는 자신의 처지에 씁쓸함을 느꼈다. 임무에 나가지 않은 지 10년이 넘은 터라 아들인 시카다이보다 자신의 술법이 나을지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서류를 처리하는 와중에도 시카마루의 머릿속은 바위 마을의 상황으로 가득했다. 츠치카게 쿠로츠치의 견제로 오오노키에게서는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지만, 사실 그의 방문은 어디까지나 시선을 끌기 위한 양동 작전이었다. 진짜 임무는 은밀히 잠입한 로와 소쿠 팀에게 맡겨져 있었고, 아직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잠입 자체는 성공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쿠로츠치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심증을 더욱 굳혔다.
그때 시카다이의 팀을 담당하는 상급 닌자 모에기가 집무실을 찾아왔다. 평소와 달리 진지한 그녀의 모습에 시카마루는 서류 더미에서 고개를 들고 등을 기댔다. 모에기는 중급 닌자 시험 이후 시카다이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클라이언트의 강력한 요청으로 상급 닌자가 맡을 법한 S등급 임무인 다이묘 신변 경호 의뢰까지 들어왔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시카다이가 돌연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이 중요한 임무를 거절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동료인 쵸쵸와 이노진이 설득해도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말에 시카마루는 당혹감을 느꼈다.
모에기는 혹시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으나, 시카마루는 아내 테마리와 냉전 중이라는 사실 외에는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하지만 시카다이가 그런 사소한 일로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날려버릴 만큼 미숙한 아이가 아니라는 점이 더 큰 의구심을 자아냈다. 결국 의뢰인의 강경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임무는 섭외부를 통해 다른 팀에게 넘어갔고, 모에기는 시카다이와 직접 대화해 줄 것을 부탁하며 물러났다. 답답한 마음으로 옥상에 올라간 시카마루는 담배를 피우며 바위 마을의 이변과 산더미 같은 업무, 그리고 속을 알 수 없는 아들의 행동을 곱씹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퇴근한 시카마루는 잠든 아들의 방을 조용히 찾아갔다.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시카다이에게 S등급 임무를 거절한 진짜 이유를 캐물었다. 시카다이는 등을 돌린 채 그저 귀찮아서 그랬을 뿐이라며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을 회피했다. 시카마루가 답답함에 화를 내며 다그치려던 순간, 어느새 뒤에 서 있던 테마리가 나타나 그를 제지했다. 아들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니 내일 임무를 위해 자게 두라는 아내의 말에 시카마루는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여전히 등을 돌리고 있는 아들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고 방을 나왔으나, 시카다이는 끝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6장
나뭇잎 마을에 7일에 한 번 찾아오는 휴일이 되었지만, 호카게의 보좌관인 시카마루에게는 온전한 휴식이 허락되지 않았다. 시카다이를 비롯한 현역 닌자들이 자택 대기 명목으로 쉬는 날에도 그는 평소 미뤄둔 서류를 처리하기 위해 집무실로 향해야 했다. 정오가 되어서야 집을 나서기에 오전 시간이 유일한 낙이었으나, 자신보다 더 혹독한 일정을 소화하며 그림자 분신까지 동원해 업무를 처리하는 호카게 나루토를 생각하면 시카마루는 불평할 수 없었다. 오히려 가족 행사 도중 분신인 것을 아들에게 들켰다며 씁쓸하게 웃던 친구를 떠올리며, 그에게 더 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다잡을 뿐이었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툇마루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시카마루에게 아내 테마리가 다가와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침 일찍 보루토 일행과 놀러 나간 아들 시카다이의 근황을 전하던 테마리는 곧 낮은 목소리로 최근 시카다이가 임무를 거절했던 사건의 내막을 꺼냈다. 테마리의 입을 통해 전해진 진실은 시카마루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당시 임무의 의뢰주는 시카다이의 실력이 아니라, 호카게의 상담역인 시카마루와 연을 맺기 위해 일부러 그의 아들이 속한 반에 의뢰를 넣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시카다이는 자신의 존재가 아버지의 권력에 이용당한다는 사실에 상처를 입고 임무를 거부한 상태였다. 아들에게 특별 대우를 하지 말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신신당부해 왔음에도 타국의 요인이 아들을 이용하려 했다는 사실에 시카마루는 깊은 자책감에 빠졌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던 중, 마당 울타리 너머로 낯익은 차크라의 기운이 느껴졌다. 바위 마을로 파견 나갔던 암부 히노코가 귀환을 알린 것이었다. 시카마루는 테마리가 챙겨주는 윗옷을 입으며 조만간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자고 약속한 뒤 집을 나섰다. 그는 사람들이 붐비는 공원 벤치에서 히노코를 만났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버지들로 가득한 공원은 오히려 남의 눈을 피해 기밀을 보고받기에 적당한 장소였다. 시카마루는 히노코와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풀었으나, 곧 이어지는 보고 내용에 표정을 굳혔다.
히노코는 지난 오카게 회담에서 보여준 츠치카게 쿠로츠치의 강경한 태도가 사실 흙의 나라 다이묘의 의중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고했다. 척박한 바위산뿐인 흙의 나라는 풍요로운 토지를 가진 이웃 소국인 '꽃의 나라'를 침공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꽃의 나라는 번개 나라와 강력한 동맹 관계였기에, 만약 흙의 나라가 침공을 강행한다면 구름 마을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쿠로츠치는 이 침공 과정에서 바위 마을이 고립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리 나뭇잎 마을을 압박하고 안개 마을을 포섭하여 다자간 동맹의 균열을 유도하려 했던 것이다.
시카마루는 일련의 상황을 분석하며 은퇴한 오오노키가 자신에게 남겼던 경고의 의미를 깨달았다. 평화로운 시대에도 닌자는 결국 다이묘의 명령에 따라 전쟁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오오노키는 예견하고 있었다. 시카마루는 많은 동포의 희생으로 쌓아 올린 평화가 다이묘들의 탐욕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다고 다짐했다. 그는 공원에서 웃고 떠드는 아이들이 부모를 잃는 비극을 막기 위해 히노코에게 바위 마을의 동향을 계속 감시할 것을 지시했다. 히노코를 돌려보낸 시카마루는 이제 더는 귀찮다는 말을 내뱉을 수 없는 중대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친구 나루토가 기다리는 호카게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책략]
1장
나루토는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흙 나라가 정말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의 곁에서, 시카마루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굳어버린 친구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시카마루는 외부에서 적이 쳐들어오던 시절이 차라리 대응하기 쉬웠다고 말하며, 마을의 경계를 넘어 결집할 수 있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각 마을과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현실임을 짚어주었다. 모든 마을이 협조할 수 있다는 것은 이상론일 뿐이며 지금 마주한 적은 다름 아닌 타 마을의 닌자들이라는 냉혹한 사실 앞에 나루토는 이를 악물었다. 사람들은 반드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으며 탈주했던 친구까지 돌려세웠던 나루토였기에 시카마루의 현실적인 조언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나, 시카마루는 쿠로츠치와 흙 나라에게도 나름의 뜻이 있음을 나루토가 깨닫기를 바랐다.
나루토는 곤란한 일이 있다면 오카게 회담을 통해 대화로 풀거나 부족한 것을 서로 도우면 될 일이라며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다. 시카마루 역시 대화를 통한 해결 가능성을 믿고 싶었으나, 흙 나라가 꽃의 나라 침공을 결정하고 바위 마을이 그 뒤를 따르기로 한 데에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업보와 정이 얽혀 있음을 직감했다. 나루토는 과거 오오노키가 아무리 평화로운 세상이 와도 닌자는 결국 닌자라고 말했던 기억을 떠올렸고, 시카마루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대로 침공이 시작될 경우 번개 나라와 안개 마을까지 참전하게 될 최악의 연쇄 반응을 우려했다. 그것은 곧 제5차 인계 대전의 서막이었으며, 외부의 적에 맞서 어렵게 쌓아 올린 닌자들의 결속과 평화의 이상이 산산조각 난 채 서로를 죽이는 소모적인 전쟁으로 회귀함을 의미했다.
슬픈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나루토를 마주하며 시카마루는 전쟁의 참혹함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호카게의 강한 결의를 읽어냈다. 나루토가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난 동료들을 떠올리는 동안 시카마루 역시 아버지와 스승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은 채,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며 스승의 온기를 느꼈다. 나루토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쿠로츠치를 막아내겠다고 선언했고, 시카마루는 그가 달릴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해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시카마루는 이번 침공이 쿠로츠치 개인의 의지가 아닌 흙 나라 다이묘의 결정임을 지적하며, 쿠로츠치를 설득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조언했다.
나루토는 혹시 아카츠키 같은 세력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현실을 부정하려 했으나, 시카마루는 쿠로츠치가 결코 환술 따위에 휘둘릴 유약한 닌자가 아님을 단호하게 일깨웠다. 시카마루는 호카게로서 편리한 외부의 적을 상정하며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말고 국가 간의 문제를 직시하라고 충고했다. 나루토는 친구의 말을 받아들여 오카게 회담을 소집하기로 결심했고, 시카마루는 마을의 태양인 나루토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그림자로서 가아라에게 미리 협조를 구해 나뭇잎과 모래 마을이 중립적인 위치에서 중심을 잡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방대한 업무를 앞두고 자신도 모르게 담배에 불을 붙인 시카마루는 금연이라며 소리치는 나루토를 뒤로한 채, 남은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서둘러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장
오카게가 집결한 회의장에는 시작부터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종일관 굳은 표정을 지은 쿠로츠치와 갑작스러운 소집에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는 다루이, 그리고 다가올 논쟁을 대비하며 마음을 다잡는 쵸쥬로 사이에서 가아라만이 태연하게 자리를 지켰다. 그들의 중심에 선 나루토는 진검승부를 앞둔 닌자처럼 진지한 얼굴로 감사의 말을 전하며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쿠로츠치는 나루토의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지난번 요구했던 나뭇잎 마을의 기밀 공개에 대한 대답을 종용하며 압박을 가했다. 나루토는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를 응시하다가 돌연 책상을 짚고 몸을 일으키며 흙 나라가 꽃의 나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물었다.
이 말에 평소 졸린 눈을 하고 있던 다루이가 크게 당황하며 소리를 높였고, 회의장은 순식간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쿠로츠치는 눈썹을 찡그리며 나뭇잎 마을이 사스케와 암부를 이용해 타 마을의 내정을 살피며 대륙을 지배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다루이가 다시금 침공 여부를 거세게 추궁하자 쿠로츠치는 망설임 없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꽃의 나라가 번개 나라의 오랜 동맹국임을 강조하며 경고하는 다루이에게, 쿠로츠치는 가로막는 적은 대가를 치를 뿐이라며 냉담하게 응수했다. 분노한 다루이가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로 일어섰으나, 쿠로츠치는 여기서 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그를 외면하고 나루토에게 다시 기밀 공개에 대한 확답을 요구했다.
나루토가 다루이를 만류하며 평화를 위한 논의를 이어가려 애썼지만, 쿠로츠치는 나루토와 사스케라는 압도적인 무력이 한 나라를 망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나뭇잎의 질서가 곧 지배와 다를 바 없다고 쏘아붙였다. 나루토는 모두를 지키고 싶을 뿐이라며 간절하게 평화를 호소했으나, 쵸쥬로마저 닌자의 본질은 경쟁에 있다며 동맹의 결속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회의장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고 다섯 마을의 결속이 무너지려던 찰나, 나루토의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시카마루가 인을 맺어 차크라를 방출했다.
순식간에 회의장 전체를 덮은 그림자 결박술에 오카게와 수행원들 모두가 몸이 묶여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당황한 나루토가 만류했으나 시카마루는 이를 무시하고 오카게를 매섭게 노려보며 일갈했다. 그는 나뭇잎 마을의 압도적인 전력을 상기시키며, 화목을 깨뜨리려는 자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쿠로츠치와 쵸쥬로를 향해 여기서 떠나려 한다면 그림자로 목을 가로채겠다며 서슬 퍼런 위협을 가했다. 가아라가 지나친 장난이라며 중재하려 했으나 시카마루는 나뭇잎의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츠치카게와 미즈카게를 죽여 대륙 전체를 얼어붙게 만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강요했다.
살벌한 위협에 쿠로츠치가 차크라를 끌어올리며 저항하려 하자, 나루토의 몸이 금빛으로 타오르며 폭발적인 힘을 뿜어냈다. 나루토는 분노 섞인 외침과 함께 시카마루의 그림자를 산산조각 냈고, 곧바로 시카마루의 뺨을 세차게 때려 바닥에 쓰러뜨렸다. 나루토는 멱살을 잡고 시카마루를 질책한 뒤, 다른 카게들을 향해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숙이며 사죄했다. 그는 자신이 있는 한 절대 평화를 어지럽히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흙 나라의 다이묘를 설득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쿠로츠치는 나루토의 정은 신용하지만 나뭇잎은 언젠가 위협이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회의장을 떠났고, 다른 카게들도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며 차례로 자리를 비웠다.
마을로 돌아가는 길, 침묵을 지키던 나루토는 정문에 다다라서야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했는지 시카마루에게 물었다. 시카마루는 나루토가 반드시 자신의 술법을 깨고 모두를 설득할 것임을 알고 있었으며, 이 소동을 통해 다른 마을들이 나뭇잎의 위협을 현실적으로 체감하게 하려 했다고 답했다. 그는 냉정한 힘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때로는 선수를 치는 약이 된다고 덧붙였다. 나루토는 쓴웃음을 지으며 친구의 깊은 속내를 받아들였고, 시카마루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대국을 머릿속에 그리며 가족이 기다리는 마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3장
격무의 골짜기가 지나가고 갑자기 한가해진 저녁, 시카마루는 평소처럼 수련장으로 향하는 대신 익숙한 마을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에 지도를 그릴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도착한 곳은 옛 동료 이노가 운영하는 꽃집이었다. 가게 앞에는 은색 통에 담긴 무수한 꽃들이 길가까지 진열되어 있었고, 이노는 닌자의 기색을 지운 채 평범한 꽃집 주인처럼 부지런히 물을 주고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동료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자 이노는 호스를 든 채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시카마루는 어색하게 목 뒤를 긁적이며 서 있었고, 이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가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려 벌충하러 왔다는 사실을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
이노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술법을 쓰지도 않고도 시카마루의 곤란한 처지를 정확히 짚어내며 타박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인 사이가 기념일마다 얼마나 성실하게 선물을 준비하는지 늘어놓았고, 시카마루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특유의 귀찮다는 생각을 속으로 삼켰다. 이노는 테마리의 고향인 모래 마을이 원산지인 노란 꽃 한 송이를 꺼내 들었다. 잎도 없이 가느다란 줄기 끝에 늠름하게 핀 그 꽃은 누가 보아도 테마리와 꼭 닮아 있었다. 시카마루는 만족하며 가게에 있는 그 꽃을 전부 달라고 주문했다.
그 순간 길 건너편에서 덩치 큰 옛 동료 쵸지와 그의 딸 쵸쵸가 나타났다. 가족과 함께 단골집인 야키니쿠Q로 외식을 가려던 쵸지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시카마루는 쵸쵸를 바라보며 아들 시카다이가 중요한 임무를 거절해 팀원들에게 폐를 끼친 것에 대해 부모로서 미안함을 전했다. 그러나 쵸지와 이노는 오히려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런 시카다이의 모습이야말로 시카마루를 쏙 빼닮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시카다이가 나름의 생각이 있어 내린 결정일 것이라며 시카마루를 다독였고, 밖에서의 일만큼이나 가장 가까운 가족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건넸다.
동료들의 진심 어린 충고에 시카마루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가족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남자가 마을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반성하며, 그는 더욱 강한 마음가짐으로 가족과 마주하겠다고 다짐했다. 고마움을 전하며 늠름하게 등을 돌려 걷기 시작한 시카마루는 머릿속으로 아내와 아들에게 건넬 말을 정리하며 결연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한참을 걸어가던 그는 문득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고, 정작 아내를 위해 사기로 했던 꽃다발을 가게에 그대로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허탈함에 멈춰 서고 말았다.
4장
시카마루는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에 도장을 찍으며 연일 흙 나라의 동태를 살폈다. 업무에 집중하느라 부하의 부름조차 듣지 못할 정도로 몰입해 있던 그는 지난 다섯 카게 회담에서 다른 마을에 경고를 남기긴 했으나, 구체적인 타개책이 없어 내심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로와 소쿠로부터 바위 마을이 인력을 확충하며 전쟁 준비에 나섰다는 보고가 들려오자 시카마루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닌자의 기술이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쓰이길 바랐고, 필요하다면 닌자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져도 좋다는 각오로 비극적인 대전의 재발을 막으려 했다.
생각에 잠겨 기계적으로 도장을 찍던 시카마루는 누군가 곁에서 여러 번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겨우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스승 아스마의 딸인 미라이가 서류 더미 사이로 손뼉을 치며 서 있었다. 미라이는 주변을 살피지 않는 시카마루의 버릇을 나무랐지만, 시카마루는 미라이가 심상치 않은 일을 가져왔음을 직감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직접 인술의 기초를 가르치며 애지중지 키워온 제자였기에 그녀의 어두운 표정만으로도 사태의 심각성을 읽어낸 것이었다. 시카마루는 의자에 기대어 앉으며 무슨 귀찮은 일이 생겼느냐고 물었고, 미라이는 사흘 뒤 마을을 방문할 불 나라의 다이묘 마도카 잇쿄와 그의 아들 텐토에 관한 소식을 전했다.
시카마루는 다이묘의 방문을 흙 나라를 견제할 결정적인 기회로 보고 있었다. 나루토를 통해 잇쿄를 설득하고 5대국 회담을 소집해 교착 상태를 깨뜨릴 비책을 구상 중이었다. 그러나 미라이는 강도단 무지나가 다이묘의 아들인 텐토를 노리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했다. 수배 중인 거물 쇼죠지가 이끄는 무지나 일당의 음모를 확인한 시카마루는 책상 위 서류를 뒤져 보루토 팀이 이미 관련 임무를 수행 중임을 파악했다. 잠시 고민하던 시카마루의 눈에 서늘한 살기가 감돌았다. 그는 미라이에게 텐토를 감시하되, 무지나가 움직이면 그대로 유괴하게 내버려 두라는 충격적인 명령을 내렸다.
경악하는 미라이에게 시카마루는 다이묘에게 거절할 수 없는 빚을 지게 해야 한다며 자신의 의도를 드러냈다. 유괴된 아이를 신속하게 구조함으로써 정치적 우위를 점하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는 이 계획을 정의로운 나루토가 알게 되면 반드시 막으려 할 것이기에 절대 비밀로 하라고 강조했다. 세계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어둠에 손을 담그기로 결심한 시카마루의 단호한 태도에 미라이는 무거운 마음으로 방을 나섰다.
사흘 뒤 다이묘 일행이 도착했고, 호카게 집무실에 있던 나루토는 보루토 팀이 강도단을 소탕했다는 소식에 기뻐했다. 시카마루는 담배를 입에 문 채 나루토의 기쁨을 지켜보며 내면의 죄책감을 억눌렀다. 그는 미라이와 눈빛을 교환하며 상황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시카마루는 쇼죠지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나루토의 신경을 분산시켰고, 회담에만 전념하도록 유도했다.
이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유괴된 텐토를 미라이의 부대가 아닌, 그와 우정을 쌓았던 보루토가 단신으로 아지트에 쳐들어가 구해낸 것이었다. 보루토는 동료들과 힘을 합쳐 쇼죠지까지 생포하는 대활약을 펼쳤고, 덕분에 미라이의 돌입 부대는 나설 기회조차 없었다. 보고를 받은 시카마루는 비록 과정은 예상과 달랐지만 나뭇잎의 닌자가 다이묘의 아들을 구했다는 결과는 변함없다며 고개를 숙이는 미라이를 다독였다.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여전히 입에 문 시카마루는 의자를 돌려 앉으며 다시금 전장의 날카로운 눈빛을 띠었다. 그는 이제 세계를 건 승부를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읊조렸다.
5장
호카게의 집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 나루토에게 시카마루는 다시 한번 불 나라의 영주인 잇쿄와 이야기를 나누라고 권했다. 나루토는 이미 대화가 끝난 사안이라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시카마루는 이번에는 직접 불 나라로 가야 한다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최근 시카마루의 행보가 평소와 다르다고 느낀 나루토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냐고 물었고, 시카마루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흙 나라에 관한 건이라고 답했다. 나루토는 지난 회담에서 잇쿄가 흙 나라를 움직여보겠다고 확약했으니 굳이 두 번째 회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으나, 시카마루는 상황이 달라졌음을 강조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텐토 공의 납치 사건을 둘러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루토는 시카마루가 텐토가 납치될 것을 미리 알고도 범인인 쇼죠지를 일부러 놓아주어 구출 극을 연출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엄격한 눈빛으로 그를 몰아세웠다. 시카마루는 영주에게 빚을 지게 하려는 의도였음을 숨기지 않고 인정했다. 나루토는 호카게로서 정치를 이해하면서도 아이를 협상 도구로 이용하는 어두운 수법에 분노를 터뜨리며 시카마루의 멱살을 잡았다.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지려 하지 말고 자신을 믿으라는 나루토의 외침에 시카마루는 오히려 나루토를 믿기에 자신이 이 방식을 관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시카마루의 진짜 목적은 닌자들의 대화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작금의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5대국 다이묘 회담을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나루토는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에는 동감하면서도, 책임의 무게 때문에 예전처럼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고민만 깊어지는 자신의 처지를 쓸쓸하게 고백했다. 시카마루는 그런 나루토의 약한 소리를 묵묵히 들어주며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함께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 올라 담배를 피워 문 시카마루는 어른이 되고 가족이 생기면서 짊어지게 된 귀찮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금의 신중함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최선의 한 수를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나루토를 다독였다.
두 사람은 맑은 하늘 아래서 서로의 고민을 나누며 신뢰를 재확인했다. 시카마루는 아스마나 네지가 겪었던 비극을 보루토와 시카다이 세대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만큼은 막겠다고 맹세했다. 나루토 역시 시카마루의 등에 손을 얹으며 그를 전적으로 믿겠다고 화답했다. 무거운 대화가 끝난 뒤, 두 사람은 평소처럼 라면을 너무 많이 먹는다거나 담배를 너무 자주 피운다는 사소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짧은 웃음을 나눴다. 나루토는 결국 시카마루의 각오를 받아들여 5대국 다이묘 회담을 성사시키기로 결심했고, 텐토 구출로 만든 명분을 활용하기로 했다. 시카마루는 다시 업무로 복귀하는 나루토의 등을 두드려준 뒤, 앞으로 닥쳐올 거대한 싸움에 대비하듯 다시금 험악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옥상을 내려갔다.
6장
불 나라의 다이묘 마도카 잇쿄는 나루토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소파에 걸터앉았다. 나뭇잎 마을에서의 회담이 끝난 지 열흘도 되지 않아 성사된 이 비공식적인 만남을 위해 나루토와 시카마루는 고기를 나르는 업자로 변장하여 삼엄한 경비를 뚫고 잇쿄의 저택에 잠입했다. 잇쿄는 진지한 표정의 나루토를 응시하며 용건을 물었고,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자신의 아들 텐토를 무지나 강도단으로부터 구해준 것에 대해 깊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는 나뭇잎 마을에 보답하고 싶다며 가능한 모든 협력을 약속했고, 시카마루는 바로 이 순간이 흙 나라의 침공을 막을 공격의 수를 꺼낼 기회라고 판단했다.
나루토는 흙 나라가 꽃 나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정보를 전하며 사태의 긴박함을 알렸다. 잇쿄는 조속히 시찰단을 보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답했으나, 나루토는 구름 마을의 닌자들이 이미 결집 중이며 전쟁이 터지면 안개 마을까지 가세해 전 대륙이 다시 전란에 휩쓸릴 것이라며 반박했다. 곁에 있던 시카마루는 흙 나라가 이미 오카게 회담에서 균열을 만들고 안개 마을을 회유하는 등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시찰단을 보내는 정도의 온건한 대응으로는 시간을 벌어줄 뿐이며, 그 사이 흙 나라와 바위 마을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잇쿄는 흙 나라를 지나치게 자극해 화를 돋울까 우려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시카마루는 열흘 안에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며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시카마루는 불 나라가 가진 강력한 힘을 전면에 내세워 역사상 유례가 드문 5대국 다이묘 회담을 제안하라고 요청했다. 잇쿄는 흙 나라를 적으로 돌릴 셈이냐며 당황했으나, 시카마루는 강한 위세를 부려 그들을 회담장으로 끌어내야만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루토 역시 시카마루의 진심을 대변하며 평화를 위해 힘을 빌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시카마루는 소파에서 내려와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잇쿄에게 호소했다. 책략이나 동술을 써서 다이묘를 조종할 수도 있었으나, 그는 상대의 마음을 진심으로 움직여야만 이번 회담이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평소 냉철하고 여유롭던 시카마루가 체면을 가리지 않고 엎드린 모습을 본 나루토 역시 곁에 나란히 앉아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의 절박한 태도에 잇쿄는 결국 어깨를 으쓱하며 전쟁의 위험성을 인정했다. 잇쿄는 보루토에게 진 빚을 갚겠다는 뜻을 밝히며 소파에서 일어나 나루토와 시카마루 앞에 마주 앉았다. 그는 단순히 협력하겠다는 말을 넘어 함께 싸우겠다고 선언하며 두 사람의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분전]
1장
오랜만에 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시카마루는 목욕하기 전 남는 시간 동안 거실 책상에 앉아 설거지를 하는 테마리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린 실수 탓에 집안 공기는 여전히 서늘했고, 바쁜 일정 때문에 제대로 다가가지 못한 시카마루는 사과를 먼저 건넬지 아니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을 걸지 고민하며 갈등했다. 문득 이노의 꽃집에서 사과용 꽃을 사지 못한 실수를 떠올리며 후회하던 그의 시선은 열린 창문 너머 툇마루에서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아들 시카다이에게 머물렀다. 시카마루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의 옆으로 다가가 소리 없이 앉았다.
게임 화면 속에서는 갑옷을 입은 거한이 기괴한 적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고, 시카다이는 주변의 기척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버튼을 눌러댔다. 시카마루는 그 모습에서 과거 장기판에 몰입해 주변 소리를 듣지 못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핏줄의 힘을 실감했다. 마침내 화면 속 캐릭터가 쓰러지며 게임 오버가 되자 시카다이는 아쉬운 신음을 내뱉으며 게임기를 던지려다 멈췄고, 시카마루는 그제야 아들에게 게임이 재미있는지 물었다. 시카다이는 친구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습관처럼 하고 있다며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곧이어 혼자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던 적을 스스로의 힘으로 쓰러뜨렸을 때의 성취감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시카마루는 화제를 돌려 최근 시카다이가 겪었던 S등급 임무 제안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신의 명성과 입장이 아들에게 원치 않는 부담과 부정적인 경험을 준 것에 대해 미안함을 전했지만, 시카다이는 그저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어 거절했을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오히려 중급 닌자 시험 이후 쏟아지는 주변의 관심이 피곤하다며 닌자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이에 시카마루는 자신 역시 어린 시절에는 눈에 띄는 것조차 싫어하며 평범하게 살다 죽는 것이 꿈이었던 지독한 게으름뱅이였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놀란 표정의 아들에게 시카마루는 과거 사스케 탈환 작전 등 피할 수 없었던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겪으며 비로소 정면으로 세상과 마주하게 되었음을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귀찮다는 말이 결코 도망치기 위한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진정한 의미의 귀찮음이란 목숨을 걸고 끝까지 해낼 각오가 있을 때 비로소 내뱉을 수 있는 말이라는 그의 설명에 시카다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입을 다물었다. 이내 시카다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에는 장기를 가르쳐 달라는 짧은 부탁을 남긴 채 수줍게 웃으며 목욕을 하러 방을 나섰다.
아들이 떠난 자리에 홀로 남은 시카마루가 거실 쪽을 돌아보자, 어느새 테마리가 책상 앞에 앉아 부자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 테마리는 차가운 눈빛을 유지하면서도 시카마루가 처음 데이트 신청을 했을 때 자신이 했던 대답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시카마루가 즉각 귀찮다는 대답이었다고 응수하자, 테마리는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귀찮다는 말은 참 편리하면서도 좋은 말인 것 같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귀찮다는 말을 주고받았고, 집안을 감돌던 팽팽한 긴장감은 부부의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2장
나루토와 시카마루는 차가운 화면 너머로 대륙의 명운을 짊어진 다섯 다이묘의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위엄 있는 자부터 궁상스러운 자까지 제각각인 그들 중에서도 흙 나라의 다이묘 단조우는 양손을 천장으로 뻗으며 연극 같은 몸짓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단조우는 턱살을 파르르 떨며 불 나라의 다이묘 잇쿄를 향해 닌자들이 손을 잡았다고 해서 국가들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며 남의 나라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이에 번개 나라의 다이묘 텟칸은 굵은 팔뚝을 꼬고 단조우를 무섭게 노려보며 대대로 동맹국인 꽃 나라를 침공하려는 계획에 강력히 반대했다. 단조우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꽃 나라와의 동맹은 선대의 인연일 뿐이라 일축했고, 오히려 라이카게를 설득해 이번 일에서 손을 떼게 해준다면 합당한 예를 표하겠다며 텟칸을 회유하려 들었다. 분노한 텟칸이 책상을 내리치며 고함을 질렀음에도 단조우는 코웃음을 치며 자리를 뜨려 했으나, 잇쿄가 담담하면서도 위엄 있는 목소리로 그를 멈춰 세워 다시 자리에 앉혔다.
화면을 지켜보던 나루토는 단조우의 얼굴에 가득한 탐욕을 보며 과거 5카게 회담 때를 떠올리고는 저런 인물과 함께해야 하는 흙 나라의 쿠로츠치를 걱정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카마루는 마다라나 오비토 같은 적들에게는 나름의 대의가 있었으나, 자신의 욕심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아랑곳하지 않는 단조우 같은 이들이야말로 평화를 깨뜨리는 가장 무서운 존재라고 나루토를 달랬다. 화면 속 다이묘들의 회의는 침공을 고집하는 흙 나라와 이에 반발하는 번개 나라, 그리고 중립을 지키는 물과 바람의 나라 사이에서 평행선을 그리며 좀처럼 결론을 내지 못했다. 결국 잇쿄의 제안으로 회의가 중단되었고, 잇쿄는 나루토와 시카마루가 기다리는 대기실로 돌아와 머리를 감싸 쥐며 단조우의 완강한 태도에 난색을 표했다.
나루토는 전쟁을 막기 위해 나뭇잎 마을의 기밀을 공개하여 각 마을의 군사력을 균등하게 맞추자는 제안을 내놓았으나, 잇쿄는 다이묘들의 세계에서는 그런 명분보다 실질적인 이권이 중요하다며 단조우의 탐욕을 채우기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 깊은 고민에 빠진 잇쿄는 마침내 결단을 내린 듯 배에 힘을 주어 숨을 내뱉더니, 과거 흙 나라로부터 빼앗았던 불 나라의 영토 일부를 다시 돌려주겠다는 할양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시카마루는 싸우지도 않고 영토를 내주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같다며 만류했지만, 잇쿄는 자신도 평화를 위해 배를 비우는 각오로 싸우겠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잇쿄의 결연한 의지를 확인한 시카마루는 사고를 총동원하여 단순히 영토를 주는 것에 그치지 말고 대륙의 모든 중요 인사와 해당 토지의 대표까지 불러 모으는 전 대륙 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다시 시작된 회담장에서 잇쿄가 영토 할양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자 현장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텟칸이 경악하며 되묻는 가운데 잇쿄는 단조우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꽃 나라 침공 대신 이 비옥한 땅을 받는 것으로 타결을 보자고 압박했다. 단조우는 이미 침공 준비에 막대한 자금을 썼다며 당황한 기색으로 거부하려 했으나, 잇쿄는 불 나라와 나뭇잎 마을이 무엇을 꾸미는지 의심하며 발악하는 단조우를 향해 전 대륙 회담을 선포했다. 모든 나라의 다이묘와 측근들 앞에서 흙 나라의 야욕과 불 나라의 영토 할양 결단을 공표하겠다는 잇쿄의 선언에 단조우는 비굴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할 말을 잃었다. 텟칸을 시작으로 바람 나라와 물 나라의 다이묘들까지 잇쿄의 제안에 찬동하며 손을 들어 올리자,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인 단조우는 더 이상 항거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이 상황을 지켜본 나루토와 시카마루는 다이묘의 결단이 가져온 힘을 실감하며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로 했다. 본래 계획했던 나뭇잎의 기밀 공유와 잇쿄의 영토 할양이라는 두 가지 강력한 카드가 합쳐지면서 전쟁의 불씨를 끌 수 있는 실질적인 토대가 마련되었다. 시카마루는 잇쿄가 보여준 통치자로서의 각오에 경의를 표하며 전 대륙 회담이라는 전례 없는 행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구체적인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나루토 역시 친구의 지략과 다이묘의 결단이 만들어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굳은 표정으로 화면 속의 평화로운 합의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3장
심야의 업무가 끝났음에도 식지 않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시카마루는 인적이 없는 숲으로 발길을 돌렸다. 보름달이 밝게 빛나는 밤, 그는 지면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응시하며 어린 시절보다 훨씬 능숙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인을 맺었다. 몸속의 차크라를 한꺼번에 뿜어내자 발밑의 그림자가 칠흑 같은 뱀의 형상으로 뻗어 나가 눈앞에 서 있는 굵은 나무 줄기를 휘감으며 치솟았다. 시카마루는 차크라를 더욱 짙게 응축해 나무를 강하게 조였고, 줄기가 삐걱거리며 비명을 지르다 이내 곳곳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계에 다다른 순간 차크라가 끊기며 술법은 허무하게 사라졌고, 그는 견디기 힘든 권태감에 휩싸여 무릎을 꿇었다. 실전에서 물러난 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무 한 그루조차 제대로 부수지 못할 만큼 기술이 퇴보했다는 사실에 그는 깊은 자괴감을 느꼈다.
시카마루는 지난 5카게 회담 당시 나루토의 분노에 자신의 그림자 포박술이 속절없이 깨졌던 순간을 떠올리며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적당한 임무를 수행하며 평범한 아내와 아이를 얻어 평온하게 죽기를 바랐던 어린 시절의 이상과 달리, 분에 넘치는 직책과 소중한 가족을 짊어진 현실의 중압감이 그를 짓눌렀다. 마음속의 응어리를 견디다 못한 그는 지면을 손톱으로 긁으며 귀찮다는 외침을 크게 내뱉었다. 그때 나무 뒤에서 검은 망토를 두른 사스케가 나타나 시카마루의 낯선 모습을 지켜보며 말을 걸었다. 시카마루는 나루토의 그림자로 활동하며 대륙을 떠돌다 돌아온 사스케를 확인하고는 흙 묻은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카마루는 사스케에게 현재 바위 마을이 전시 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구름 마을 역시 언제든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긴박한 상황을 전달했다. 전 대륙 회담이 결렬될 경우 전쟁이 시작될 수밖에 없기에 사스케의 힘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아카데미 시절부터 거리를 두어왔던 사스케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며 시카마루는 자신이 짠 전략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스케의 진심 어린 말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사스케는 나루토가 호카게로서 빛날 수 있는 것은 곁에서 의지가 되어주는 시카마루 덕분이라며 그를 격려했다.
시카마루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고, 사스케는 번개를 발하는 술법인 치도리를 이용해 담배 끝에 불을 붙여 주었다. 시카마루는 깊게 연기를 내뿜으며 나루토라는 태양이 빛나기 위해서라면 자신은 기꺼이 어둠에 물들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고, 사스케 역시 자신 또한 밖에서 싸우며 그 빛을 받치고 있음을 고백했다. 서로가 닮은 처지임을 깨달은 두 사람은 함께 옅은 미소를 지었고, 시카마루는 든든한 동료의 존재를 확인하며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낸 채 크게 기지개를 켰다.
4장
흰 코트의 소매에 팔을 집어넣은 시카마루는 뒤에 선 테마리에게 모레쯤 돌아올 것이라며 철 나라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식탁 앞에는 아들 시카다이가 평소와 달리 긴장된 표정으로 묵묵히 밥을 먹고 있었다. 현관으로 향하던 시카마루는 아들에게 오늘이 쉬는 날인지 물었지만, 시카다이는 눈도 맞추지 않은 채 쌀쌀맞게 대답할 뿐이었다. 흙 나라의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마을의 경계가 강화된 탓에 어린 닌자들까지 그 긴장감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시카마루가 거실 문턱을 넘으려는 찰나, 시카다이가 다부진 목소리로 아빠를 불러 세웠다. 아이는 밥그릇에 남은 밥을 내려다보며 앞으로 나뭇잎 마을과 자신들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솔직한 불안감을 쏟아냈다.
시카마루는 아내를 닮아 날카로운 눈매를 한 아들을 강하게 부르며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내일모레면 다시 평소처럼 돌아올 테니 쉬는 날이라고 멍하니 있지 말고 동료들과 수행이나 하라고 덧붙였다. 울음을 참느라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의 뒤에 쪼그리고 앉은 시카마루는 아이의 따스한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는 자신이 7대 호카게의 오른팔임을 강조하며 아빠가 괜찮다고 하니 믿으라며 안심시켰다. 시카다이는 코를 훌쩍이며 귀찮겠지만 열심히 하고 오라는 인사를 건넸고, 시카마루는 죽을 각오로 임하겠다며 복도로 나섰다.
신발을 신는 동안 내내 침묵을 지키던 테마리는 일어선 시카마루를 평소처럼 다부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시카마루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배신하지 않는 동료가 두 사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며 가족의 존재를 일깨워주었다. 이어 테마리는 기념일 같은 건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없으니 괜찮다며 솔직한 마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카마루가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 집에서 일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안타깝다고 말하며 붉어진 눈시울로 자신에게는 마음을 털어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시카마루는 문득 과거 고요의 나라로 암살 임무를 떠나기 전,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려다 테마리에게 맞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그때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며 자책했지만, 테마리는 고개를 저으며 시카마루가 충분히 잘하고 있는 훌륭한 남자라고 격려했다. 아들과 아내의 진심 어린 응원은 전장으로 향하는 시카마루의 등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테마리는 지고 돌아오면 다시는 문지방을 넘을 수 없을 줄 알라며 평소처럼 엄한 농담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시카마루는 가족의 온기를 가슴에 품고 귀찮지만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전장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미래]
1장
대륙 전역에서 모여든 다이묘들과 측근들이 철 나라가 강행 공사로 마련한 거대한 회의장을 가득 메웠다. 수백 명의 시선이 동심원의 중심인 연단을 향했고, 유례없는 규모의 회의를 앞둔 장내에는 무기 없는 전쟁을 앞둔 긴장감이 감돌았다. 연단과 가장 가까운 줄에 앉은 나루토는 아무도 없는 연단을 응시하며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 옆에 앉은 시카마루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흙 나라의 제안이 과반수의 찬성을 얻으면 곧장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되새겼다. 5카게가 경호를 나누어 맡은 상황에서 무력행사는 불가능했기에 오직 말로써 상대를 꺾어야만 했다.
회의의 시작을 알리는 철 나라 장수의 선언과 함께 이번 회담의 경위와 양측의 주장이 요약되었다. 이어 흙 나라의 다이묘 단조우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연단에 올랐다. 그는 닌자라는 존재가 태어날 때부터 싸움을 숙명으로 타고났으며, 전쟁 속에서만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전투의 전문가들이라고 규정했다. 단조우는 평화라는 환상이 오히려 닌자들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들의 투쟁 본능을 해소하고 대란을 막기 위해 예전처럼 국가 간의 공평한 경쟁을 허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연극적인 몸짓과 궤변에 나루토는 이를 악물며 분노했지만, 시카마루는 나루토의 손을 잡고 진정시켰다.
단조우의 연설이 끝나고 불 나라의 다이묘 잇쿄가 등단했다. 잇쿄는 단조우와 달리 담담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닌자가 정말 전쟁 속에서만 살 수 있는 존재인지 의문을 던졌다. 그는 대륙의 모든 다이묘가 한자리에 모인 이 기적 같은 회의가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필사적으로 전쟁을 회피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잇쿄는 자신 또한 그들의 피와 땀을 보며 변화했음을 고백하며, 강한 힘에 맞서 세계를 지키려 했던 이들이 바로 닌자였다고 강조했다.
잇쿄는 연단 위에서 손을 들어 나루토를 가리켰다. 그는 닌자야말로 전쟁의 최전방에 있기에 누구보다 간절히 평화를 원한다고 단언하며, 자신의 진심을 대신 전해줄 적임자로 나루토를 지명했다. 회의장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자 나루토는 시카마루와 미소를 주고받은 뒤 당당하게 연단으로 향했다. 나루토가 발언을 시작하려 할 때 시카마루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말석에서 경호를 서던 미라이가 호카게의 연설이 시작되는 중요한 순간에 어디를 가느냐며 당황해 물었지만, 시카마루는 그저 담배를 피우러 간다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는 나루토가 결코 실수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뜨거운 진심이 좌중을 움직여 승리를 가져올 것임을 확신했다. 시카마루는 각국의 대표들에게 호카게의 이야기를 각오하고 들으라는 혼잣말을 남긴 채,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회의장을 뒤로했다.
나루토의 진심 어린 연설이 이어질 회의장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온 시카마루는 이제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나루토의 뜨거운 열정이 회의장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긴박했던 대륙 회담의 한복판에서 시카마루는 자신의 역할을 마무리했다.
2장
회의장 밖 원기둥 모양의 재떨이 옆에 선 시카마루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안에서 들려오는 나루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이가 들어 호카게의 상담역이라는 중책을 맡았음에도 여전히 이런 공식적인 자리를 귀찮아하는 자신의 본성은 소년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음속 어린 자신은 어른이 된 시카마루를 향해 무엇이 그렇게 귀찮으냐며 핀잔을 주는 듯했지만, 시카마루는 사스케와 함께 나루토의 그림자가 되어 일하는 현재의 위치가 자신에게 가장 알맞다고 생각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회의장 안에서 다이묘들을 마주한 나루토는 평온한 내일이 쌓여 평화가 된다는 꾸밈없는 진심을 전하고 있었다. 시카마루는 열기 없는 화려한 수식어 대신 사람을 믿는 마음으로 연설을 이어가는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루토가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고 아이들이 웃으며 등교하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강조하자, 시카마루의 머릿속에는 제4차 인계 대전의 참혹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당시 수많은 닌자가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식으로서 전쟁터에서 희생되었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남겨진 이들의 비탄이 얼마나 컸을지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된 그는 뼈저리게 통감했다.
만약 자신이 죽거나 아들 시카다이가 전사한다면 남겨진 테마리와 가족들이 겪을 고통이 어떠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시카마루는 순간적인 현기증과 구역질을 느꼈다. 그는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사이 나루토는 닌자가 단지 전쟁 속에서만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곤경에서도 빛과 평화를 찾아 참고 견디며 나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힘주어 말했다. 과거 아카데미의 낙제생이었던 소년이 어느덧 모두의 침묵과 경청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호카게로 성장한 모습에 시카마루는 깊은 자부심을 느꼈다.
나루토와 같은 시대를 살며 그의 곁을 지킬 수 있음에 안도한 시카마루는 새하얀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문득 집에 있을 아내와 아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어진 그는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품은 채 한동안 담배 연기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3장
나뭇잎 마을 번화가 사거리에 우뚝 솟은 빌딩의 거대 화면에는 평소 흐르던 닌구 광고 대신 마을의 영웅인 호카게 나루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가 발걸음을 멈추고 화면을 올려다보는 가운데 시카다이는 양옆에 선 쵸쵸, 이노진과 함께 전 대륙 회담장에서 중계되는 나루토의 연설을 지켜보았다.
대륙의 다이묘들이 모인 엄중한 자리에서 나루토는 닌자가 싸움의 도구라면 이 세상에 닌자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이어갔고, 그 목소리는 화면을 넘어 거리의 사람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옆에 있던 이노진은 우리도 닌자인데 호카게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며 당혹스러운 듯 중얼거렸지만, 시카다이는 그것이 평화에 대한 호카게 나름의 신념임을 어렴풋이 짐작하며 이노진을 다독여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나루토가 불 나라 영토를 흙 나라에 할양하기 위한 결의를 제안하며 숨을 고르던 그때, 쵸쵸가 시카다이에게 다가와 이번 회의를 직접 기획하고 추진한 사람이 바로 시카다이의 아버지인 시카마루라는 사실을 전했다. 시카다이의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진작 전쟁이 터졌을 것이라는 쵸쵸의 말에 시카다이는 큰 충격을 받았으나 동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 집에서는 늘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고 옷을 아무 데나 벗어두며 툇마루에 앉아 멍하니 정원만 바라보던 한심한 아버지가,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륙의 전쟁을 막아내고 있었다는 사실에 시카다이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화면 속 회담장에는 미라이를 비롯한 나뭇잎 닌자들이 보였으나 정작 시카마루의 모습은 어디에도 비치지 않았다. 시카다이는 아버지가 화면에 나오지 않는 어느 구석에서 나루토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과거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귀찮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떠올렸다. 귀찮다는 말은 도망치기 위한 변명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할 각오가 있을 때 비로소 내뱉는 것이라던 아버지의 가르침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대단하다는 이노진의 감탄 섞인 중얼거림에도 시카다이는 벅차오르는 눈물을 들키지 않기 위해 입을 굳게 다문 채 화면 속 아버지가 머무는 세계를 응시했다.
4장
남편과 아들이 없는 조용한 거실에서 테마리는 홀로 화면 속 나루토를 지켜보았다. 화면 너머의 나루토는 익숙하지 않은 원고를 정성껏 읽으며 각 마을의 정보를 공유해 전력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닌자의 기술을 평화적인 산업으로 전환하여 임무가 없어도 닌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원고에서 눈을 뗀 나루토는 호카게로서 각국에 이 안을 제안하고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고,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간곡한 부탁과 함께 연단에 머리를 박듯 깊게 고개를 숙였다. 테마리는 정좌한 채 그 광경을 엄숙하게 지켜보다가 모래 마을 대표로 참석해 나루토를 호의적인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동생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나뭇잎 마을의 좌석 중 호카게의 옆자리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남편 시카마루가 보이지 않았다. 테마리는 그런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귀찮다며 투덜거리는 남편의 목소리를 환청처럼 들으며, 나루토의 고결한 연설 뒤에서 세계 평화를 위해 죽을힘을 다해 일하고 있을 시카마루의 모습을 떠올렸다. 누구보다 평화롭고 한가로운 삶을 바라며 구름처럼 살고 싶어 했던 시카마루가 자신과 아들인 시카다이를 위해, 그리고 나루토와 마을을 위해 정작 자신의 소망을 뒤로 미룬 채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에 테마리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닌자로서의 삶을 당연하게 여겨온 자신이 무의식중에 남편과 아들에게 그 길을 강요하며 시카마루의 온화한 일상을 빼앗은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밀려왔다.
테마리는 무릎 위에 놓인 손에 힘을 바짝 주며 가늘게 떨었지만, 동시에 시카다이의 성장을 누구보다 기뻐하며 중급닌자 시험에서의 활약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다정한 아버지로서의 시카마루를 기억해 냈다. 남편은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과분할 정도로 다정한 사람이었기에, 테마리는 그가 집에 있을 때만큼은 솔직하고 편안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연설이 끝나고 회장이 박수 소리로 가득 차자 나루토가 단상에서 내려갔고, 테마리는 화면 속 나루토 옆의 빈자리를 응시하며 그간의 노고를 기리는 마음을 담아 정말 열심히 했다는 혼잣말을 시카마루에게 건넸다.
5장
회담장 밖 한적한 흡연소에서 시카마루는 홀로 긴 의자에 몸을 뉘인 채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철의 나라 무사들이 빈틈없이 준비한 회의가 안에서 한창 진행되는 동안, 그는 각국 대표들의 연설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시카마루는 이번 사태의 당사국인 꽃 나라가 발언 명단에 없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다가올 결의의 시간을 묵묵히 기다렸다.
그때 회의장 안에서 츠치카게 쿠로츠치의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나뭇잎 마을의 전력 집중이 전쟁의 씨앗이 될 것을 우려해 꽃 나라 침공을 결심했었으나, 호카게와 불 나라 다이묘의 결단을 통해 자신의 우려가 스스로 만든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판단 미숙을 시인하며 전쟁 철회를 선언하는 그녀의 발언을 들으며 시카마루는 누운 채로 주먹을 꽉 쥐었다. 바위 마을이 손을 뗀 이상 흙 나라의 전쟁 명분과 전력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고, 이는 사실상 이번 소동의 종결을 의미했다.
긴장이 풀리자 지독한 졸음과 함께 하품이 밀려왔고 시카마루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이번 싸움은 몸으로 부딪치는 일반적인 임무보다 훨씬 무거웠으며, 자신의 패배가 곧 대륙의 전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중압감이 그를 계속해서 짓눌러 왔기 때문이었다. 시카마루는 비로소 평화가 돌아왔음을 직감하며 눈을 감았고, 한동안 누리지 못했던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의자를 세게 흔드는 바람에 시카마루는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며 잠에서 깨어났다. 눈앞에는 어느덧 회의를 마치고 나온 나루토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루토는 이미 상황이 모두 끝났음을 알렸고, 시카마루는 쿠로츠치의 연설을 들었을 때 이미 승부를 확신했다며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나루토는 시카마루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며, 그가 곁에서 길을 비춰주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했다.
그때 쿠로츠치가 다가와 두 사람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며 앞으로의 협력을 약속했고, 시카마루에게는 테마리와 사이좋게 지내라는 농담 섞인 인사를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시카마루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어 깊게 연기를 내뱉으며 비로소 이겼다는 실감을 맛보았다. 이제 마을로 돌아가면 다시 산더미 같은 서류 작업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시카마루는 나루토와 함께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쳤다.
6장
꽃 나라의 어린 다이묘는 나뭇잎 마을을 찾아와 나루토 앞에서 고개를 깊이 숙였다. 시카다이와 동갑인 소년 다이묘는 갑작스러운 부친의 죽음 이후 반년 만에 전쟁의 위기를 겪었으나, 흙 나라에 영지를 할양하는 방식으로 평화를 지켜낸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눈을 빛냈다. 시카마루는 나루토의 뒤에서 이 기특한 소년을 지켜보다가 문득 궁금한 점을 물었다. 전 대륙 회담이라는 중요한 자리에서 왜 당사국인 꽃 나라가 시종일관 침묵을지켰느냐는 질문이었다. 소년은 자신이 아직 미숙하고 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괜히 나섰다가 국가의 약점만 노출될까 봐 침묵을 선택해 판단을 세계 대표들에게 맡겼노라고 덤덤히 답했다. 그 대답 속에서 단단한 심지를 발견한 시카마루는 소년에게 무례를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고, 다이묘는 끝까지 예의를 갖추며 작별을 고했다.
나루토와 함께 마을 문 앞까지 배웅을 나간 시카마루는 그곳에서 꽃 나라 일행을 호위하기 위해 대기 중이던 아들 시카다이와 마주쳤다. 모에기가 이끄는 하급 닌자 팀과 고양이 가면을 쓴 히노코, 원숭이 가면을 쓴 로가 포함된 암부 팀이 합동으로 이번 임무를 맡게 된 상황이었다. 시카마루는 여전히 낮은 수준의 농담을 던지는 로와 투덜거리는 히노코에게 지난번 임무에 대한 감사를 전한 뒤, 아들 시카다이에게 자신의 역량을 잘 판단해 무리하지 말라는 조언을 건넸다. 시카다이는 귀찮다면서도 상쾌하게 웃으며 길을 떠났고, 시카마루는 부쩍 성장한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루토에게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카마루의 양팔에는 나루토가 챙겨준 노란 꽃들이 한 아름 안겨 있었다. 길거리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얼굴이 빨개진 채 서둘러 현관문을 열자 아내 테마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시카마루는 지난 결혼기념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미안함을 담아 다이묘에게 받은 노란 꽃들을 테마리에게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선물에 당황하던 테마리는 문득 그에게 지금 삶이 행복한지, 가족과의 생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진지하게 물었다. 시카마루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고맙다는 진심을 전했고, 테마리는 금세 평소처럼 벗어던진 셔츠 이야기를 하며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도 꽃을 받아 들고 부끄러운 듯 고맙다는 말을 남긴 채 부엌으로 사라졌다. 시카마루는 마루에 앉아 신발을 벗으며 가족이란 참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지켜낸 이 평온한 일상이 나쁘지 않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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