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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발 작품

슈거 애플 페어리 테일 2권- 은설탕사와 파랑 공작 챕터 별 스토리 요약

by 미도착 원고함 서고지기 2026. 4. 12.

 

 

 

[1장 눈이 내리면]

 

 

잿빛 구름이 낮게 내려앉은 하늘에서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코끝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 앤은 절망적인 기분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으나, 마차 지붕 위의 물방울 요정 미스릴 리드 포드는 눈이 온다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마부석에 누워 있던 흑요석 요정 샤르 펜 샤르는 나른하게 몸을 일으키며 앤에게 얼른 손님에게 물건이나 건네주라고 충고했다. 앤은 정신을 차리고 눈앞에 서 있는 여자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모피 망토를 두른 여자는 앤의 설탕과자보다 마부석에 앉아 눈송이를 맞고 있는 아름다운 샤르의 모습에 넋을 잃고 있었다. 샤르가 독설을 내뱉으며 재촉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여자는 앤이 일주일 동안 정성을 다해 만든 화려한 봄꽃 다발 모양의 설탕과자를 확인했다. 여자는 과자의 완성도에 감탄하면서도 앤이 정식 은설탕사가 아니라는 점을 빌미로 약속한 금액의 절반인 1크레스만을 내밀며 억지를 부렸다. 미스릴이 분개하고 샤르가 무력으로 과자를 되찾아오겠다고 위협했지만, 앤은 갈등을 키우기보다 당장의 여비를 위해 부당한 거래를 받아들이며 여자를 보냈다.

 

 

앤은 낡은 마차를 끌고 추위를 피할 숙소를 찾아 내려갔다. 그 곁을 나란히 걷던 샤르는 앤의 부족한 소지금액을 걱정하며 자신이 몸이라도 팔아 돈을 벌어오겠다는 폭탄선언을 했고, 앤은 정조 관념이 없는 샤르의 태도에 경악하며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세 사람은 곧 처마 기와가 떨어질 듯 초라한 여관에 도착했다. 좁고 지저분한 방에 짐을 풀고 있을 때, 2주 전 설탕과자를 주문했던 한 노파가 방으로 찾아왔다. 노파는 죽은 남편의 승혼일을 기념하기 위해 눈 전령 새 모양의 과자를 주문했었는데, 값을 치를 반지가 제때 팔리지 않아 이제야 1크레스를 마련해 왔다며 사과했다. 앤은 노파의 거칠고 마른 손과 소중한 반지를 팔아 남편을 기리려는 진심에 마음이 움직였다. 앤은 은설탕 함량을 잘못 계산했다는 핑계를 대며 받은 돈의 절반을 거스름돈이라며 노파의 손에 쥐여 주었고, 노파는 고마움을 표하며 떠났다.

 

 

이 따뜻한 광경을 지켜보던 여관 주인은 앤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는 미스릴의 말을 엿듣고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갑자기 숙박비를 열 배 이상 올리며 돈을 내지 못하면 취소 수수료 명목으로 샤르의 날개를 넘기라고 위협했다. 샤르가 보이지 않는 빛의 알갱이를 모으며 반격할 준비를 하던 찰나, 갑작스러운 찬바람과 함께 낯익은 인물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갈색 피부의 검사 살림이 순식간에 여관 주인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상황을 제압했고, 그 뒤를 이어 현 은설탕 자작인 휴 머큐리가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휴는 겁에 질린 여관 주인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다우닝 백작의 이름을 빌려 그를 사형에 처하겠다고 겁을 주었다. 공포에 질린 주인이 실신하자 휴는 다시 평소의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와 앤을 껴안으며 안부를 물었다. 휴는 웨스트르에 실력 있는 소녀 장인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를 찾으러 다녔다고 고백했다. 눈을 피해 숙소로 들어올 앤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휴는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며 앤을 자신의 거성인 실버 웨스트르 성으로 초대했다.

 

 

 

 

[2장 필락스 공의 부르심]

 

 

창문 밖으로 돌출된 4층 발코니에 선 앤은 어둠이 내린 숲과 검은 거울 같은 호수가 어우러진 엄숙한 풍경을 내려다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지금까지 숲과 호수를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발밑의 높이감에 아찔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성의 거대함에 압도되었다. 발코니의 추위를 피해 방 안으로 돌아오자 벽난로의 장작이 타오르는 포근한 온기가 그녀를 맞이했고, 네 명은 족히 누울 수 있을 법한 화려한 캐노피 침대가 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앤 일행은 날이 저물기 전 휴의 초대를 받아 실버 웨스트르 성에 도착했는데, 15년 전 내전 후에 지어진 이 성은 전투를 위한 요새라기보다는 성주의 편안한 생활과 권위를 위해 세련되게 건축된 공간이었다. 앤은 샤르와 미스릴이 각자 다른 방으로 안내받자 잠시 불안함을 느꼈으나, 샤르가 바로 옆방이라는 사실에 스스로를 다독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온 요정 하녀가 따뜻한 허브티를 대접하자 앤은 그녀의 날개가 한쪽뿐인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요정이 무거운 장작을 들려고 하자 앤은 자신이 더 힘이 세다며 장작을 대신 옮겨주었고, 뜻밖의 친절에 요정은 앤과 함께 여행하는 샤르와 미스릴이 부럽다며 미소 지었다. 앤은 모든 요정을 자유롭게 해줄 수 없는 현실에 미안해하며 요정을 배웅한 뒤, 넓은 방에 혼자 남겨지자 옆방의 샤르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하며 벽에 귀를 갖다 댔다.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난 샤르가 앤의 팔을 붙잡으며 독방이 외롭냐고 짓궂게 속삭였고, 당황한 앤은 얼굴이 붉어진 채 그를 밀쳐냈다. 샤르는 우아하게 의자에 앉아 성의 구조가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며 무심하게 말했고, 앤은 그가 과거 리즈라는 소녀와 함께 보냈던 성을 떠올리며 묘한 동요와 답답함을 느꼈다.

 

 

 

그때 방을 찾아온 휴가 앤에게만 보여줄 것이 있다며 그녀를 성 안의 비밀스러운 장소로 안내했다. 휴가 데려간 곳은 천수각 아래 지하로 이어지는 은설탕 자작의 전용 작업장이었으며, 그곳에는 국왕의 탄신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거대한 사자 모양의 설탕과자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앤은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느끼며 감탄했고, 휴는 앤의 자질을 높게 평가하며 그녀가 은설탕사가 될 때까지 성에서 돌봐주고 이후 자신의 조수로 고용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건넸다. 그러나 앤은 누군가의 힘에 의지해 안락하게 지내기보다 자신의 발로 직접 걸어가며 실력을 쌓고 싶다며 휴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휴는 앤의 의외의 대답에 즐겁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편 휴는 샤르를 따로 찾아가 앤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샤르가 곁에 있어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며, 앤을 위해 샤르가 스스로 떠날 것을 종용했다. 샤르는 앤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휴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있겠다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다음 날 성을 떠난 앤 일행은 3일간의 여정 끝에 승혼일을 앞둔 루이스턴에 도착했다. 앤은 활기 넘치는 서쪽 시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설탕과자를 전시하며 주문을 기다렸으나, 사람들은 어린 소녀의 실력을 의심하며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그때 조나스가 레드클리프 공방의 장인들과 함께 나타나 앤을 사기꾼으로 몰아세우며 군중 앞에서 거짓 정보를 퍼뜨렸다. 조나스는 앤이 은설탕 자작을 유혹해 품평회 자리에 올랐으며 자신의 작품을 훔치려 했다고 모함했고, 이를 본 구경꾼들은 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억울함에 눈시울이 붉어진 앤은 울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며 짐을 정리했고, 분노한 샤르가 검을 뽑아 장인들을 위협하자 앤과 미스릴이 간신히 그를 말렸다. 숙소인 풍향계정으로 돌아온 앤은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리며 조나스 일당의 악행에 치를 떨었다. 여주인은 상심한 앤에게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소식을 전했다. 필락스 공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설탕과자를 만든 장인에게 무려 천 크레스를 하사하며 실력자를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앤은 조나스 일행 역시 그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실력으로 정당하게 승부하여 명예와 자금을 얻기 위해 필락스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3장 해변의 성]

 

 

록웰 주의 주도 힐버그와 인접한 필락스는 왕가의 직할지로서 대륙과의 무역이 번창한 항구 도시였다. 그곳에는 왕가의 적통 핏줄이자 필락스 공이라 불리는 윌리엄 앨번이 다스리는 웅장한 필락스 성이 바다로 돌출된 곶 위에 요새처럼 서 있었다. 설탕과자 장인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은 앤은 마차를 몰아 필락스로 향했다. 이동하는 마차 위에서 앤은 자신이 떠도는 가난뱅이라는 샤르와 미스릴의 농담을 받아넘기며, 연말에는 따뜻한 곳에서 쉬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성문 앞에 도착했다. 앤은 문지기에게 자신이 만든 설탕과자를 보여준 뒤에야 비로소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샤르와 미스릴은 짐칸에서 기다리게 한 채 홀로 안내를 받아 천수각으로 향했다.

 

 

안내받은 대기실에는 이미 음침한 분위기의 다른 설탕과자 장인이 한 명 와 있었다. 잠시 후 시동을 따라 들어선 홀은 석조물이 그대로 드러나 투박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곳에서 앤은 필락스 공작 앨번을 마주했다. 그는 20대 후반의 옅은 금발을 가진 청년이었으나, 짙은 녹색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아 보는 이로 하여금 차가운 위화감을 느끼게 했다. 앤은 그가 왕국에 남은 마지막 불씨라 불리는 앨번 가문의 당주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과거 체임버 내란 이후 다우닝 백작의 견제를 받으며 영지와 군대를 박탈당하고 왕가에 충성을 확인받아야 하는 굴욕적인 처지에 놓인 가계였으나, 앨번은 그 모든 상황에 무관심한 듯 담담하게 앤과 남자의 설탕과자를 살폈다.

 

 

앨번은 앤이 미스릴을 모델로 만든 설탕과자를 집어 들고는 옆에 있던 남자를 돌려보냈다. 홀에 앤과 단둘이 남게 되자 공작은 왜 이런 형태를 만들었는지 물었고, 앤이 친구를 위해 만든 것이라고 답하자 그는 앤을 성에 머물게 하며 설탕과자를 만들라고 명령했다. 앨번은 벽에 걸린 커튼을 걷어 한 장의 초상화를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은빛 눈동자와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요정 여인이 그려져 있었다. 앨번은 이 요정을 설탕과자로 형상화하라는 과제를 주었고, 앤은 요정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공작의 종자인 데일은 앤을 장인들을 위한 내곽의 숙소로 안내했다. 그 과정에서 앤은 이 성에 요정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이는 요정을 사역하는 것을 싫어하는 공작의 성품 때문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앤은 그곳에서 자신을 배신했던 조나스와 그의 일행을 다시 만났다. 조나스는 앤의 등장에 당황하면서도 적대감을 드러냈으나, 앤은 실력으로 겨루는 것이라면 절대 지지 않겠다며 당당히 응수했다. 앤은 동쪽 탑에 걸린 요정의 초상화들을 연구하며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작업을 시작한 지 며칠 동안 미스릴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거나 재료를 건네주며 앤을 도왔지만, 샤르는 매일 성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미스릴은 샤르가 과거에 살았던 오래된 성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고, 앤은 그가 과거에 사랑했던 리즈를 떠올리는 것인지 궁금해하며 묘한 질투심과 우울함을 느꼈다. 우물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샤르가 앤의 얼굴에 묻은 물방울을 닦아주자 앤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며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조나스가 자신의 작품이 공작에게 인정받아 천수각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며 자랑하러 찾아왔으나 앤은 흔들리지 않고 작업에 매진했다.

 

 

 

 

마침내 앤은 물줄기처럼 흐르는 머리카락과 온화한 미소를 지닌 요정 설탕과자를 완성했다. 앨번은 앤의 작품을 보고 잠시 감정의 동요를 보였으나 이내 원래의 요정과는 다르다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앤의 작품이 조나스의 것보다 분위기가 더 비슷하다는 평을 내리며, 앤에게도 천수각 방으로 옮겨 작품의 정밀도를 높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앤은 더 좁고 복잡한 천수각 탑으로 짐을 옮기며 본격적으로 공작의 마음에 들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에 빠졌다. 그 과정에서 조나스의 사역 요정인 캐시가 나타나 앤을 비웃었지만, 앤은 조나스에게 자신도 결코 지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이며 새로운 작업대에 설탕과자를 올려놓았다.

 

 

[4장 거짓된 작별 인사]

 

 

아래층에서 방울 소리가 울려 퍼지자 앤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천수각 방으로 옮겨온 첫날 밤 조나스가 울린 그 방울 소리는 앤을 초조하게 만들었고, 누군가 그의 방을 드나드는 소리에 불안감은 더해만 갔다. 아침이 밝았지만 다행히 앤에게 작업을 그만두고 나가라는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고, 그녀는 높은 태양 아래서 미스릴과 함께 설탕과자 만들기에 몰두했다. 그때 다시 한번 아래층에서 조나스의 방울 소리가 들려왔고, 마음이 급해진 앤을 대신해 미스릴이 상황을 살피러 몰래 방을 나섰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산책을 마친 샤르가 미스릴의 목덜미를 잡아채어 돌아왔다. 조나스의 방에 숨어들려다 붙잡힌 미스릴은 억울해하며 조나스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고 얼굴에 멍까지 들어 있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샤르와 미스릴은 인간의 도덕을 운운하는 앤에게 자신들은 요정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고, 앤은 결국 두 요정을 가르치는 일을 포기하며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기로 결심했다.

 

 

앤이 결연한 의지로 신호의 방울을 울리자 놀랍게도 앨번 공작이 직접 방으로 찾아왔다. 무릎을 꿇고 공작의 반응을 살피던 앤은 그의 손이 분노로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공작은 어제와 비교해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며 앤과 조나스 모두 아무것도 모른다고 독설을 내뱉고는 차갑게 발길을 돌렸다. 깊은 혼란에 빠진 앤은 한낮부터 밤늦도록 설탕과자 앞에 앉아 고민에 잠겼다. 샤르는 완벽한 균형을 갖춘 앤의 작품을 공작이 왜 부정하는지 의아해했고, 미스릴은 옆에서 졸음을 견디다 잠이 들었다. 한밤중이 지나서야 일어난 앤은 작품의 방향을 사실적으로 바꾸기로 마음먹고 샤르와 함께 홀에 있는 요정의 초상화를 다시 보러 갔다. 차가운 밤 공기 속에서 초상화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앤에게 샤르는 공작이 단순히 훌륭한 설탕과자를 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던졌다.

 

 

이후 5일 동안 앤은 초상화의 세세한 부분까지 머릿속에 새기며 실물과 똑같은 형태의 설탕과자를 새로 만들었다. 수십 번이나 홀과 방을 오가며 작업에 매달리던 중, 그녀는 계단에서 초췌한 몰골의 조나스와 마주쳤다. 조나스는 공작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며 절망 섞인 고함을 지르고는 왼쪽 뺨의 커다란 멍을 드러낸 채 방으로 숨어버렸다. 그의 태도가 신경 쓰였지만 앤은 다시 완성 신호를 보냈고, 다시 찾아온 공작은 그녀의 새로운 작품을 보더니 눈동자에 서늘한 분노를 담았다. 공작은 초상화와 똑같이 만들었다는 앤의 항변을 비웃으며 이건 가짜일 뿐이라고 소리쳤고, 급기야 받침대 위의 설탕과자를 내리쳐 산산조각 냈다. 부서진 설탕 조각들 앞에서 앤은 얼어붙었고, 공작은 형태로 만들라는 알 수 없는 말만 남긴 채 사라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앤에게 샤르는 공작이 원하는 것은 누구도 알 수 없으니 일을 그만두고 성을 나가자고 권유했다. 하지만 앤은 공작이 처음 자신의 작품을 봤을 때 아주 잠깐 기뻐했던 표정을 떠올리며, 그가 원하는 것이 설탕과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은 아닐 것이라 확신했다. 고집을 꺾지 않는 앤의 모습에 샤르와 미스릴도 결국 그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날 밤 앤은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샤르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 문득 그의 옛 주인인 리즈에 대해 물었다. 샤르는 리즈가 푸른 눈에 긴 머리를 가진, 차분하고 사려 깊은 미인이었다고 회상했다. 자신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리즈의 이미지에 앤은 걷잡을 수 없는 열등감과 질투를 느끼며 눈물을 쏟아냈고, 당황한 샤르는 그녀를 혼자 두기 위해 조용히 방을 나갔다.

 

 

혼자 남은 앤은 후회하며 샤르를 찾아 나섰지만 성 어디에서도 그를 찾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텅 빈 방 안에는 조나스가 미스릴의 날개를 빼앗아 쥔 채 서 있었고, 잠결에 날개를 탈취당한 미스릴은 겁에 질려 있었다. 조나스는 날개를 인질 삼아 앤에게 샤르를 성에서 영원히 내쫓으라고 협박했다. 투명해지는 능력을 갖춘 요정 캐시가 감시자로 남겨진 상황에서 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잠시 후 방으로 돌아온 샤르에게 앤은 떨리는 목소리로 더 이상 같이 있고 싶지 않으니 성을 나가달라고 거짓 작별 인사를 건넸다. 샤르는 앤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분노와 허탈함을 느꼈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미련 없이 방을 떠났다. 샤르의 뒷모습을 보며 앤은 무너져 내렸고, 조나스는 비열하게 웃으며 다음 날 공작 앞에서 자신이 시키는 대로 행동할 것을 강요했다. 앤은 미스릴을 품에 안고서야 샤르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뼈저리게 실감하며 그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5장 붙잡힌 신세]

 

 

보랏빛으로 물든 동쪽 바다를 뒤로하고 샤르 펜 샤르는 필락스 성 기슭의 상록수 숲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간밤에 내린 눈이 덮인 좁은 길을 따라 정처 없이 걷던 그는 파도 소리 사이로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를 포착하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세 명의 요정 사냥꾼과 그들에게 사역당하는 두 명의 전사 요정이 샤르를 에워쌌다. 사냥꾼들은 샤르의 수려한 외모를 보고 값비싼 애완 요정이라 짐작하며 그를 훔치려 들었다. 샤르는 불쾌한 초조함을 갈무리하며 손바닥에 빛의 알갱이를 모아 검을 만들어냈고, 그가 애완용이 아닌 전사 요정임을 알아챈 상대들이 당황하며 공격을 시작했다. 샤르는 날렵하게 몸을 날려 사냥꾼들의 공격을 피하며 맞서 싸웠으나, 앞뒤로 날아드는 추가 달린 쇠사슬과 전사 요정들의 협공에 발목이 묶이며 위기에 처했다. 그 순간 길 건너에서 말을 타고 나타난 청년 귀족 휴 머큐리가 샤르의 이름을 부르며 싸움을 멈추게 했다.

 

 

은설탕 자작 휴는 요정 사냥꾼들을 쫓아버린 뒤 샤르에게 다가와 앤과 미스릴의 행방을 물었다. 앤과 다투고 성을 나온 샤르가 입을 다물자, 휴는 특유의 빠른 손놀림으로 샤르의 안주머니에 있던 가죽 주머니를 낚아챘다. 그 안에는 앤이 돌려주었던 샤르의 날개가 들어 있었다. 순식간에 날개를 빼앗긴 샤르는 분노하며 검을 휘두르려 했으나, 휴는 날개를 쥔 자가 요정의 소유권을 갖는다는 인간의 규칙을 내세우며 자신이 이제 샤르의 주인임을 선언했다. 샤르는 무의식적으로 휴를 방심했던 자신을 자책하며 날개를 인질로 잡은 그의 명령에 따라 필락스 성으로 향하는 마차에 올랐다.

 

 

같은 시각 필락스 성안에서는 겁에 질린 조나스가 앤의 방을 찾아와 함께 앨번 공작을 면회하러 가자고 재촉했다. 두 사람이 안내받은 공작의 방은 고귀한 혈통에 어울리지 않게 간소하고 적막했다. 앨번은 칼집째 검을 쥐고 위태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나타났고, 공작의 광기 어린 집착에 공포를 느낀 조나스는 바닥에 엎드려 울먹이며 일을 그만두게 해달라고 빌었다. 조나스는 자신이 도망치기 위해 앤의 실력이 훨씬 뛰어나니 그녀를 성에 가두고서라도 설탕과자를 만들게 하라며 동료를 팔아넘겼다. 앨번이 검을 휘두르며 위협하자 앤은 조나스를 대신해 자신이 끝까지 남아 설탕과자를 완성하겠다고 약속하며 조나스를 보내달라고 청했다. 앨번은 앤의 결연한 눈빛을 확인한 뒤 조나스에게 성을 떠날 것을 허락했고, 홀로 남겨진 앤에게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들 때까지 결코 성을 나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성을 떠나게 된 조나스는 탑 계단에서 앤에게 미스릴의 날개를 돌려주며 그녀의 무모함을 비난하고는 서둘러 자취를 감췄다. 앤은 소중한 날개를 되찾아 미스릴을 안심시킨 뒤, 홀에 걸린 두 장의 날개를 가진 요정 초상화를 다시금 살폈다. 그녀는 앨번 공작이 왜 사역당하지 않은 요정의 모습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내야만 공작이 원하는 설탕과자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앤은 성에 닥칠 위험으로부터 미스릴을 보호하기 위해 그에게 성 밖으로 나가 샤르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미스릴은 앤의 진심을 전하고 샤르를 데려오겠다며 굳게 약속하고는 성벽 너머로 사라졌다.

 

 

한편 휴는 샤르를 호위로 대동한 채 앨번 공작의 방으로 들어섰다. 휴는 국왕의 토벌 허가를 받은 다우닝 백작의 군대가 필락스로 오고 있다는 급보를 전하며 앨번에게 루이스턴으로 가서 충성을 증명하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앨번은 극심한 두통과 함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휴가 성안에 머물고 있을 설탕과자 장인 앤의 행방을 묻자, 앨번은 이미 모든 장인을 쫓아냈다며 거짓을 고했다. 성 밖에 세워진 앤의 마차를 보며 그녀가 아직 안에 있음을 직감한 샤르는 앨번의 거짓말에 의구심을 품었다. 샤르는 자신을 거부했던 앤의 차가운 목소리를 떠올리면서도, 홀로 남겨진 그녀의 안위가 걱정되어 타들어 가는 초조함을 억누르며 어두운 성 내부를 응시했다.

 

 

[6장 기억 속의 요정]

 

 

앤은 미스릴 리드 포드를 성 밖으로 내보낸 뒤 데일에게 앨번 공작과의 독대 면담을 요청했다. 장인을 엄격하게 대하던 데일은 앤의 진지한 태도에 수긍하여 면담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운 밤이었지만 앨번 공작의 방은 따뜻했다. 공작은 아침과 다름없이 무기력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고, 앤은 그가 집착하는 것이 설탕과자가 아니라 초상화 속 요정 그 자체임을 직감했다. 앤은 공작 앞에 무릎을 꿇고 설탕과자를 만들기 위해 초상화 속 요정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청했다. 앨번은 처음으로 앤을 시야에 담으며 칼을 뽑아 들었다. 그는 타인의 추억을 파고드는 무례함을 지적하며, 만약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앤은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완성하겠다며 앨번의 칼날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앨번은 결국 칼을 거두고 요정의 본명이 레아리스 실 에릴이며, 자신이 크리스티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음을 털어놓았다. 3년 전 바닷가에서 태어난 그녀를 성으로 데려와 함께 지냈으나 그녀는 1년 반 전 수명을 다해 소멸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앤은 공작의 상처 입은 마음과 고독을 이해하게 되었고, 자신이 그저 예쁜 작품을 만들려 했던 미숙함을 깨달았다. 앤은 공작이 원하는 것이 세련된 예술품이 아니라 크리스티나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온 추억의 형상임을 알게 되자, 공작의 방에 은설탕을 들여와 그의 기억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눈앞에서 직접 작업을 시작했다.

 

 

그 시각 성 밖에서는 휴 머큐리가 다우닝 백작의 군대 삼백여 명이 필락스 성을 포위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급히 성으로 향했다. 샤르 역시 휴와 동행했다가 살림이 건네준 깡통 속에서 미스릴 리드 포드를 발견했다. 미스릴은 조나스가 자신의 날개를 훔쳐 앤을 협박했기 때문에 앤이 어쩔 수 없이 샤르를 내쫓았던 것이라는 진실을 전했다. 모든 오해를 풀게 된 샤르는 미스릴을 살림에게 맡기고 곧장 성벽을 넘어 앨번 공작의 방으로 난입했다. 샤르는 앨번의 목에 칼을 겨누며 앤을 데려가려 했으나, 앤은 자신의 일과 자긍심을 위해 이 설탕과자를 반드시 완성해야 한다며 성을 떠나기를 거부했다.

 

 

샤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고집을 부리는 앤의 모습에 결국 칼을 거두고 그녀가 작업을 마칠 때까지 병사들을 막아주기로 약속했다. 앤은 공작의 기억 속에 있는 크리스티나의 표정과 몸짓을 세밀하게 재현해 나갔다. 앨번은 설탕과자의 완벽한 형태가 요정의 생명력과 연결되어 크리스티나가 다시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드러냈고, 샤르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냉혹한 현실을 일깨웠다. 하지만 앤은 공작의 나약한 내면을 목격하며 그가 원하는 눈동자를 만들어주기 위해 마지막 열정을 쏟았다. 성문이 폭약에 의해 파괴되고 군대가 들이닥치기 직전, 앤은 투명한 은색 눈동자를 만들 방법을 떠올리며 냄비를 집어 들었다.

 

 

[7장 당신을 계속 바라보면]

 

 

샤르는 전쟁을 대비해 설계된 견고한 천수각의 좁은 계단 입구를 홀로 지키고 섰다. 어른 두 명이 겨우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그곳 너머에는 앤이 앨번 공작과 함께 설탕과자를 만들고 있었다. 집념에 사로잡힌 공작이 앤에게 해를 끼칠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컸지만, 장인으로서의 긍지를 지키려는 앤의 간절한 바람을 알기에 샤르는 검을 쥐고 자리를 지켰다. 곧이어 앨번 공작을 체포하려는 다섯 명의 병사가 들이닥쳤고 샤르는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뒤이어 나타난 은설탕 자작 휴는 샤르의 날개를 가졌음을 상기시키며 길을 비킬 것을 명령했으나, 샤르는 자신에게 주인은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샤르와 휴의 시선이 날카롭게 충돌하는 사이에도 샤르는 오직 앤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버텼다.

 

 

방 안에서 앤은 은설탕을 정성껏 녹여 수정처럼 투명하고 맑은 구체를 빚어내고 있었다. 뜨거운 설탕 액체에 손가락이 데이는 고통을 찬물로 식혀가며 앤은 크리스티나의 은빛 눈동자를 완성했다. 바늘 끝을 이용해 숨을 죽이고 한 올 한 올 속눈썹을 얹는 앤의 모습에는 간절한 기도가 담겨 있었다. 마침내 완성된 등신대의 요정 설탕과자는 앨번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크리스티나의 모습 그 자체였다. 광기에 휩싸였던 앨번은 완성된 과자를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집착의 허망함을 깨달으며 이성을 되찾았다. 그는 앤을 최고의 장인이라 칭송하며 약속했던 금화 주머니를 건넸고, 이제는 자신의 요정에게 돌아가라며 앤을 보내주었다.

 

 

 

 

가죽 주머니를 소중히 품에 안고 계단을 내려오던 앤은 피로 탓에 발을 헛디뎌 허공으로 몸이 떴다. 그러나 아래에서 지키고 있던 샤르가 어느새 검을 거두고 달려와 낙하하는 앤을 품에 받아냈다. 샤르는 무사히 돌아온 앤을 확인하고 안도하며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꽉 끌어안았다. 그 사이 휴는 앨번 공작의 구속을 선언하고 전투를 중단시켰으며, 주인 노릇을 하려 해도 전혀 말을 듣지 않던 샤르의 날개를 아무렇지 않게 돌려주었다. 소란이 잦아든 천수각 계단 아래에서 앤은 샤르의 품에 안긴 채 수줍어하면서도 천 크레스를 벌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샤르는 앤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고, 앤은 그가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준 것이 두 번째라며 행복해했다. 샤르는 이름 하나에 기뻐하는 인간의 마음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앞으로는 그녀를 이름으로 더 자주 불러주겠다고 마음먹으며 앤의 온기를 느꼈다.

 

 

사건이 마무리된 후 앨번 공작은 신분을 박탈당하고 작은 성에 칩거하게 되었으나, 앤이 만든 설탕과자를 곁에 두고 매일 바라보며 평온한 여생을 보내게 되었다. 이 이례적인 관대한 처우는 앤이 만든 설탕과자가 행운을 가져다주었다는 소문으로 번져 그녀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루이스턴으로 돌아온 앤과 샤르, 미스릴 일행은 단골 숙소인 풍향계정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앤은 자신을 비방하는 레드클리프 공방의 장인들과 마주치기도 했지만, 키스라는 의문의 청년이 도움을 준 덕분에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숙소의 여주인은 요정 동료들까지 따뜻하게 환대하며 정성스러운 식사를 준비해주었다. 앤은 난로 옆 특등석에 앉아 샤르와 미스릴을 바라보며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앤은 샤르에게 왜 요 며칠간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는지 물었고, 샤르는 앤이 그편이 더 행복하다고 했기에 노력하는 중이라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샤르의 무뚝뚝하면서도 다정한 배려에 앤은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주방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음식 냄새와 난로의 열기 속에서 세 사람은 각자의 행복을 만끽하며 다음 여정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