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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발 작품

슈거 애플 페어리 테일 1권- 은설탕사와 검은 요정 챕터 별 스토리 요약

by 미도착 원고함 서고지기 2026. 4. 12.

 

 

 

[1장 허수아비와 요정]

 

 

정면에서 해가 떠오르는 아침, 앤 할퍼드는 마부석에 앉아 정든 녹스베리 마을을 뒤로하고 여행길에 올랐다. 비가 갠 맑은 가을 하늘 아래 홀로 마차를 몰고 나아가는 길은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했으나 가슴 한구석에는 작은 희망이 일렁였다. 그때 마을의 설탕과자점 외아들인 조나스가 달려와 마차를 세우며 앤에게 자신의 신부가 되어 마을에 남아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앤은 어머니의 유언대로 자신의 길을 확고히 걸어가기 위해 고삐를 움켜쥐며 거절의 뜻을 전했다. 보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 에마는 최고의 은설탕사였으며, 앤은 그런 어머니를 동경하며 자신 또한 은설탕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앤은 왕가에서 주최하는 설탕과자 품평회에 참가해 칭호를 얻기 위해 매년 단 한 번 열리는 루이스턴의 축제를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주도 레진턴에 도착한 앤은 인파 사이에서 요정 사냥꾼이 작은 노동 요정을 진흙탕에 짓밟으며 학대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사냥꾼은 날개를 훔쳐 달아나려 했다는 이유로 요정의 날개를 찢어 죽이려 했고, 주변 사람들은 보복이 두려워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앤은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 사냥꾼의 무릎 뒤를 걷어차 쓰러뜨린 뒤, 그의 손에서 요정의 날개를 빼앗아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요정은 고맙다는 인사 대신 인간에 대한 원망을 뱉고 사라졌지만, 앤은 요정을 도구로 여기는 세상의 시선에 분노하며 자신의 신조를 되새겼다. 하지만 위험천만한 블러디 가도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호위가 절실했기에, 앤은 요정을 사역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잠시 접어두고 전사 요정을 구하기 위해 요정 시장으로 향했다.

 

 

요정 시장의 음울한 텐트들 사이에서 앤은 검은 머리카락에 서늘한 미모를 지닌 청년 요정 샤르 펜 샤르를 발견했다. 상인은 그가 입이 험해 팔리지 않는 불량품이라며 경고했으나, 샤르는 오히려 앤에게 자신을 사라며 대담하게 말을 건넸다. 앤은 전 재산인 금화 한 닢을 내어 그를 샀고, 그의 생명력인 한쪽 날개가 담긴 자루를 건네받아 목에 걸었다. 마차에 나란히 앉아 길을 떠난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앤은 샤르에게 루이스턴에 도착하면 날개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하며 친구처럼 지내고 싶다는 진심을 전했지만, 샤르는 인간과 요정의 관계를 냉소하며 앤을 허수아비라 부르며 비웃었다.

 

 

 

 

가도가 시작되는 황야의 요새에 도착해 야영을 하던 밤, 앤은 어머니와 함께 여행하던 시절의 꿈을 꾸다 갑작스럽게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떴을 때 샤르의 얼굴이 코앞에 와 있었고, 그는 앤이 잠든 틈을 타 목에 걸린 날개를 훔치려던 참이었다. 앤은 배신감에 슬퍼했으나, 곧 자신이 날개를 쥐고 목숨을 위협하는 주인인 이상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앤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며 앞으로는 방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내비쳤다. 샤르는 그런 앤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에게서 풍기는 달콤한 은설탕 향기에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고, 기묘한 예감 속에서 달빛 아래 밤을 지새웠다.

 

 

[2장 블러디 가도에서의 재회]

 

 

마을도 번화가도 없는 천이백 킬로미터의 고적한 블러디 가도에서 앤은 마부석 옆에 앉은 샤르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전사 요정이라기엔 너무나 품위 있고 아름다운 그 얼굴을 보며 과연 그가 험난한 여정에 도움이 될지 불안함이 엄습했지만, 이미 그를 산 이상 믿을 수밖에 없었다. 가을 끝자락에 열릴 설탕과자 품평회까지 남은 시간은 보름뿐이었고, 왕도 루이스턴에 도착해 준비할 기간을 생각하면 하루가 급했다.

 

 

이튿날 일출과 함께 시작된 여정은 순조로운 듯 보였다. 멀리 바위틈에서 늑대 떼가 서성이는 것이 보였으나 다행히 산에서 내려오지는 않았다. 둘째 날 잠자리로 정한 요새까지 이백 킬로미터 정도를 남겨둔 지점에서 평화는 깨졌다. 정막을 뚫고 말의 울음소리와 날카로운 철의 마찰음이 들려왔다. 당황한 앤이 고삐를 당겨 마차를 세우자, 전방에 피어오른 흙먼지 사이로 도적 떼에게 포위된 상자형 마차가 나타났다. 열 마리의 말을 탄 도적들이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여행자를 습격하는 광경에 앤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도망치는 것이 여행자의 규칙이었으나 주변은 몸을 숨길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무지였다. 도적 두 명이 앤의 마차를 발견하고 말머리를 돌리자 앤은 비명을 지르며 옆에 앉은 샤르의 소매를 붙잡았다. 전사 요정임을 상기한 앤이 도적들을 쫓아내 달라고 애원하자, 샤르는 귀찮다는 듯 앤의 손목을 잡아채 자기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얼굴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연인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명령을 하라며 속삭이는 샤르의 행동에 앤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날개를 찢어버리겠다는 위협 섞인 명령 없이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샤르의 고집에 앤은 눈을 질끈 감고 가지 않으면 때리겠다며 나름대로 난폭하게 소리를 질렀다.

 

 

샤르는 허수아비 님이라며 비아냥거리면서도 마부석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가 손바닥에 빛의 알갱이를 모으자 순식간에 은백색으로 빛나는 가느다란 검이 형태를 갖추었다. 바람보다 고요하게 달린 샤르는 찰나의 순간에 도적들이 탄 말의 앞발을 베어 넘겼다. 당황한 도적들이 칼을 휘둘렀으나 샤르는 그들의 팔과 검을 통째로 베어버리며 압도적인 무력을 과시했다. 도적 두목이 퇴각을 외치며 도망치자 황무지에는 잘린 말들의 신음과 시체만이 남았다. 샤르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통받는 말들의 숨통을 끊어 자비를 베풀었다. 앤은 자신의 말 한마디가 불러온 참혹한 결과에 전율하며 전사 요정의 본질을 실감했다.

 

 

그때 습격당한 마차에서 내린 남자는 뜻밖에도 조나스였다. 그는 앤을 좋아한다며 부모님까지 설득해 쫓아왔노라고 고백하며 앤의 두 손을 꽉 쥐었다. 앤은 그의 마음이 애정이 아닌 동정일 것이라 생각하며 거절하려 했으나, 조나스는 은설탕사가 되려는 앤을 돕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샤르가 피 냄새를 맡고 늑대들이 몰려올 것이라 경고하자 앤은 서둘러 마차를 몰았다. 조나스는 기어이 마차를 끌고 앤의 뒤를 따랐다.

 

 

야영지에 도착한 앤은 조나스가 호위에게 돈을 뺏기고도 천하태평인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밤이 깊어지자 앤은 간단한 수프를 끓여 조나스의 마차로 향했다. 거기서 조나스를 섬기는 작은 노동 요정 캐시를 만났지만, 캐시는 앤의 음식을 조잡하다며 멸시했다. 앤은 뾰로통한 마음으로 돌아와 샤르에게 수프를 건넸다. 요정은 맛을 느끼지 못하며 오직 은설탕의 달콤함만을 느낄 수 있다는 샤르의 말에 앤은 마음이 짠해졌다. 앤은 그를 위해 아름다운 월광초 모양의 설탕과자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순간 앤의 마차 안에서 커다란 소음이 들렸다. 겁에 질린 앤이 명령 대신 부탁을 하자 샤르는 또다시 직접 확인하라며 방관했다. 앤은 장작을 들고 용기를 내어 짐칸 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작은 그림자에 놀란 앤이 장작을 휘둘렀고, 날아간 그림자는 샤르의 머리에 부딪혔다. 정체는 레진턴에서 앤이 구해준 작은 물방울 요정 미스릴 리드 포드였다. 그는 은혜를 갚겠다며 몰래 마차에 숨어든 것이었으나, 고맙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겠다며 건방지게 굴었다.

 

 

시끄러운 미스릴과 냉소적인 샤르 사이에서 앤은 피로를 느끼며 담요를 덮고 누웠다. 샤르는 소란을 피우는 미스릴을 보며 앤에게서 날개를 훔칠 기회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을 인간처럼 대하며 날개를 인질 삼아 모질게 명령하지 않는 앤의 순진함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앤이 만들어 줄 설탕과자가 분명 달콤할 것이라는 생각을 막연히 떠올리며 샤르는 밤의 정막 속으로 잠겨들었다.

 

 

[3장 습격]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앤은 졸음이 가득한 샤르와 밤새 소란을 피우다 지쳐 잠든 미스릴을 마차에 태우고 야영지를 떠났다. 뒤를 따르는 조나스의 마차와 함께 길을 가던 중, 점심시간이 되어 앤은 개울가에서 물을 긷기 시작했다. 이때 조나스가 다가와 앤의 손을 잡으며 걱정하는 마음을 전했고, 앤은 그의 서툰 다정함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결국 루이스턴까지 동행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앤은 전사 요정인 샤르만 믿고 낙관하는 조나스의 태도에 불안감을 느꼈다. 여행 3일째 되는 날 밤, 앤은 조나스 일행을 모닥불가로 불러 샤르와 미스릴을 정식으로 소개했다. 요정을 도구로만 여기는 조나스는 샤르의 무례한 태도와 이름을 가진 것에 당황했고, 자신의 노동 요정인 캐시가 실수를 하자 차갑게 꾸짖어 그녀를 투명하게 숨어버리게 만들었다. 앤은 슬퍼 보이는 캐시의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챙겨준 호화로운 식사를 하는 조나스를 보며 그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음을 실감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길을 나선 일행은 요정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스릴은 자신이 레스 호수의 물방울에서 태어나 물을 조종할 수 있다고 자랑했고, 샤르는 흑요석에서 태어난 귀석 요정임을 밝혔다. 평화로운 분위기도 잠시, 해가 저물 무렵 하늘이 갑자기 수백 마리의 황야 까마귀 떼로 뒤덮이며 어두워졌다. 생물의 눈을 노리고 살점을 도려내는 잔인한 새 떼의 습격에 앤은 공포에 질렸고, 샤르에게 자신의 날개를 쥐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지켜달라고 명령했다. 샤르는 마차를 세우고 빛의 검을 만들어 홀로 새 떼 속으로 뛰어들었으며, 앤은 짐칸 안에서 미스릴을 끌어안고 두려움에 떨며 밖의 소란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정적이 찾아와 문을 열었을 때, 도로는 까마귀 시체로 가득했고 그 가운데에 피를 뒤집어쓴 채 아름답게 서 있는 샤르가 있었다. 앤은 그의 압도적인 강함과 미모에 잠시 넋을 잃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마움을 전하며 다시 마차를 몰았다.

 

 

황야 까마귀와의 싸움으로 시간을 지체한 탓에 주위는 금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앤은 밤중에 짐승들에게 습격당할 것을 우려해 지도를 살펴본 뒤 근처에 있는 의원의 집으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서둘러 마차를 모는 동안 앤은 샤르에게 보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에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은설탕사였던 어머니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올해 품평회에서 반드시 은설탕사가 되어 최고의 설탕 과자를 만들겠다는 앤의 결심은 절실했다. 앤은 고독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기분을 억누르며 밝게 말했지만, 샤르는 그녀의 옆모습에서 자신이 겪었던 이별과 고독의 흔적을 발견하고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하늘이 완전히 남색으로 물들고 어둠이 길을 삼키려 할 때, 저 멀리서 의원의 등불이 나타났다. 앤은 닫히려는 문을 향해 간절하게 소리치며 마차를 재촉했다.

 

 

[4장 의원에서의 밤]

 

황야 까마귀의 습격을 받아 야영지까지 갈 수 없게 된 앤 일행은 숲속의 한 의원을 찾아가 대문을 닫으려던 의사에게 하룻밤 묵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부스스한 머리를 한 의사는 마차에 남은 까마귀의 흔적을 보고 그들을 들여보내 주었으나, 마부석에 앉은 전사 요정 샤르를 보고 감탄하며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샤르에게 더벅머리라는 독설을 듣고 말았다. 앤은 무례한 언행에 가슴을 졸였지만 다행히 의사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인당 60바인의 숙박비를 받고 마차를 안으로 들이게 허락했다. 담장 안에는 이미 옻칠이 된 기품 있는 선객의 마차가 서 있었고, 앤은 격식 있는 선객이 있을까 긴장하며 요정들에게 입조심을 당부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의원 안에는 갈색 머리의 쾌활한 청년 휴와 갈색 피부에 하얀 머리를 한 과묵한 검사 살림이 먼저 자리를 잡고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의사가 내어준 수프를 먹으려던 앤은 요정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려다 조나스에게 상식 밖이라는 핀잔을 들었지만, 선객인 휴가 흔쾌히 상관없다며 이름을 묻고 요정들을 자리에 부르라고 배려해주어 다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휴는 앤과 조나스가 루이스턴의 품평회에 가는 설탕과자 장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흥미를 보이며 샤르가 전사 요정이라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앤을 놀렸다. 그러자 살림이 갑자기 검을 뽑아 샤르를 공격했고, 샤르가 순식간에 은색 검을 꺼내 이를 막아내며 팽팽한 대치를 이루자 그제야 휴는 실력을 인정하며 살림에게 검을 거두게 했다.

 

 

앤은 일행을 위험에 빠뜨린 휴에게 분노하며 멱살을 잡았고, 휴는 사과의 의미로 일행 5명의 숙박비를 대신 내주겠다고 제안하며 그 조건으로 각자 설탕과자를 하나씩 만들어 보라고 요구했다. 마차로 은설탕을 가지러 간 길에 조나스는 앤에게 자신이 레드클리프 공방의 수장이자 은설탕 자작이 되겠다는 야심을 밝히며 청혼했지만, 앤은 그의 고백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오히려 샤르의 모습을 떠올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다시 돌아온 앤과 조나스는 휴의 눈앞에서 각각 하얀 꽃과 고양이를 만들어 솜씨를 뽐냈으나, 휴는 완성된 작품들을 가차 없이 부수어버리며 조나스는 잔재주뿐이고 앤은 그저 흉내만 낸 알맹이 없는 과자라며 독설을 내뱉었다.

 

 

정곡을 찔린 앤은 수치심과 괴로움에 방으로 달려가 침대에서 눈물을 쏟았고, 뒤따라 들어온 샤르는 앤의 어린애 같은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장차 아름답게 변할 것이라고 위로했다. 샤르는 자신이 태어나 처음 본 인간 아이 리즈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그녀가 인간에게 살해당했다는 아픈 과거를 털어놓았고, 앤은 샤르의 상처에 공감하며 그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휴는 이미 떠났으나 숙박비는 지불된 상태였고,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나 7일째 되는 날 블러디 가도의 3분의 2 지점에 도착해 야영을 준비했다. 앤은 밤에 사과를 먹는 샤르를 지켜보며 그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고자 설탕과자를 만들어주기로 결심하고 마차의 짐칸으로 향했다. 그러나 은설탕 통을 확인한 앤은 품평회에 쓸 설탕이 들어있어야 할 통 두 개가 감쪽같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큰 충격에 빠졌다.

 

 

[5장 설탕사과는 배신의 나무]

 

 

텅 빈 은설탕 통의 가장자리를 붙잡은 앤은 말도 안 된다는 중얼거림과 함께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분명 의원에서 확인했을 때까지만 해도 가득했던 은설탕이 자물쇠가 채워진 짐칸 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앤이 절망 섞인 비명을 지르자 샤르가 다가왔고, 앤은 비틀거리며 그에게 매달려 작품을 만들 재료가 없어 품평회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때 조나스와 캐시가 나타났는데, 캐시는 의원에서 묵던 밤에 은설탕 범벅이 된 미스릴이 앤의 마차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잠결에 불려 나온 미스릴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앤의 눈동자에 서린 미세한 의심을 읽고는 큰 상처를 받아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며 빗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미스릴이 떠난 뒤 앤이 자포자기하려 하자 조나스는 인근 블러디 가도에 설탕 사과나무 숲이 있다는 정보를 주며, 이동하는 사흘 동안 은설탕을 정제하면서 동시에 작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앤은 조나스의 다정함에 고마움을 느끼며 다시 기운을 차렸고, 샤르의 무뚝뚝한 시선 속에서도 조나스와 함께 지도를 살피며 계획을 세웠다. 사흘 뒤 일행은 설탕 사과나무 숲에 도착해 바구니 가득 빨간 열매를 수확했고, 앤은 루이스턴으로 향하는 마지막 야영지에서 쉴 틈 없이 은설탕을 정제하며 어머니 에마가 남긴 도안을 바탕으로 꽃과 나비가 어우러진 설탕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작업 도중 조나스가 짐칸으로 들어와 은설탕을 보관할 무거운 통을 건네며 앤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려 했으나, 앤은 그를 세차게 밀쳐내며 자신의 마음이 결코 그와 같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거절당한 조나스가 나간 뒤 캐시가 들어와 조나스를 향한 자신의 연심을 드러내며 앤에게 독설을 내뱉었지만, 앤은 오히려 샤르의 날개를 쥐고 있는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며 씁쓸한 기분에 젖었다. 앤은 잠조차 줄여가며 정교한 기술로 작품을 완성했으나 기술적인 완벽함 뒤에 숨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며 피로에 젖은 채 샤르의 곁에 앉아 짧은 휴식을 취했다.

 

 

그 평화로운 순간도 잠시, 조나스가 갑자기 자신의 말을 앤의 마차에 연결하며 마차를 통째로 가로채려 했다. 앤이 당황해 이유를 묻자 조나스는 그녀가 자신의 청혼을 거절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차갑게 대꾸했다. 동시에 캐시가 피 묻은 고깃덩어리로 늑대 무리를 유인해 야영지로 끌어들였고, 앤의 가슴팍에 고기를 던진 뒤 조나스는 앤의 머리에 짐승을 유인하는 액체까지 부어버렸다. 굶주린 늑대들이 앤을 덮치려 하자 샤르가 검을 뽑아 들고 그 앞을 막아섰고, 조나스는 혼란을 틈타 앤의 작품이 실린 마차를 몰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앤은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작품을 되찾기 위해 샤르에게 조나스를 쫓아가라고 울부짖었으나, 샤르는 앤이 늑대 밥이 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며 끝까지 곁을 지키며 늑대들을 베어 넘겼다. 멀어지는 마차를 바라보며 절규하던 앤은 상황이 정리된 뒤 샤르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왜 내 명령을 듣지 않았느냐고 원망을 쏟아냈다. 샤르는 앤이 다치면 자신의 날개도 다치기에 그녀를 지켰을 뿐이라고 스스로 되뇌었지만, 앤을 지키려 본능적으로 움직였던 자신의 감정을 복잡하게 되짚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야영지에서 앤은 지쳐 쓰러졌고 샤르는 말없이 그 곁을 지켰다.

 

 

[6장 태어나는 아침]

 

어둠 속에 부슬부슬 차가운 비가 내리는 야영지에는 늑대 시체를 치운 뒤에도 축축한 빗물과 피 냄새가 자욱하게 남아 있었다. 조나스의 상자형 마차 안에서 앤은 늑대에게 짓밟혀 빗물과 피에 얼룩진 은설탕의 잔해를 바라보며 이 모든 일이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산된 조나스의 거짓말이었음을 깨달았다. 조나스는 레드클리프 공방의 수장이 되기 위해 은설탕사 칭호가 절실했고, 두 번의 실패 끝에 자신감을 잃자 병든 은설탕사와 그 딸인 앤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는 앤의 디자인을 훔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녀에게 청혼하여 자신의 도구로 삼으려 했으나 실패하자, 결국 앤더 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앤의 은설탕을 조금씩 훔쳐내고 급기야 완성된 작품과 마차까지 가로채 달아났다.

 

 

조나스가 늑대를 이용해 샤르의 발을 묶고 루이스턴으로 떠난 뒤, 앤에게 남은 것은 지친 말과 새 마차 그리고 이틀뿐인 시간이었다. 앤은 사랑하는 어머니의 영혼을 보내기 위한 올해의 승혼일을 놓칠 수 없다는 간절함과 자신을 배신한 조나스에 대한 분노, 그리고 동료인 미스릴을 의심했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온몸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채찍에 맞은 손등의 통증보다 더한 비참함에 젖어 있던 앤은 야영지 한쪽 나무 아래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샤르를 발견했다. 앤은 외톨이가 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샤르에게 다가가 목에 걸고 있던 날개 주머니를 뜯어내듯 건네며 그에게 자유를 선언했다.

 

 

샤르는 앤의 손바닥에서 날개 주머니를 집어 들며 이것으로 대등해진 것이냐고 물었다. 앤은 처음부터 샤르를 사역자로 대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고, 샤르는 요정 시장에서부터 그녀의 어리숙함을 이용하려 했던 자신의 속내를 덤덤히 털어놓으며 야영지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홀로 남겨진 앤은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리며 어머니를 부르짖었고 차가운 비를 맞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편 자유를 얻은 샤르는 빗속에서 앤과 멀어지며 기쁨 대신 형언할 수 없는 공허함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이미 앤을 만난 순간부터 명령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였음을 깨달았고, 무너져 내리는 앤의 달콤한 향기와 따스한 체온을 떠올리며 걸음을 멈췄다.

 

 

어느덧 비가 그치고 아침 햇살이 비치자 앤은 몽롱한 의식 속에서 푸른 열매 위로 빛 알갱이가 모여드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 빛은 응축되어 가녀린 날개를 가진 작은 요정의 형태로 변했고, 앤은 요정의 생명이 태어나는 성스러운 순간에 매료되었다. 그때 다시 나타난 샤르가 앤의 곁에 무릎을 꿇으며 요정은 사물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태어난다는 사실과 각자의 출신에 따른 분류를 설명해주었다. 갓 태어난 식물의 요정 루스르 엘 민은 샤르에게 인간의 위험성을 경고받은 뒤 황야를 향해 날아갔다. 앤은 돌아온 샤르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나, 샤르는 설탕과자를 주기로 한 약속을 받으러 왔다며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앤은 샤르가 돌아와 준 사실에 가슴 깊이 기쁨을 느끼며 그를 위해 가장 예쁜 설탕과자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앤은 조나스가 남기고 간 남자 옷으로 갈아입은 뒤 짐칸으로 향했고, 샤르는 차갑게 식은 앤의 손을 잡아 온기를 불어넣어 주며 그녀를 가볍게 안아 격려했다. 앤은 조금 전 보았던 요정의 탄생 장면을 은설탕 속에 가두기로 결심하고 온 힘을 다해 세공에 몰두했다. 해 질 녘이 되어서야 완성된 작은 설탕과자는 비록 품평회용으로 만든 이전 작품보다 크기는 작았으나, 어머니의 디자인을 흉내 낸 것이 아닌 앤 자신의 진심과 감동이 담긴 첫 번째 작품이었다.

 

 

앤은 완성된 설탕과자를 샤르에게 바치며 이것이 자신의 진짜 설탕과자라고 말했고, 샤르는 그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찬사했다. 앤은 감사를 전하며 샤르의 날개에 작별의 입맞춤을 보냈으나, 샤르는 설탕과자를 다시 앤에게 내밀며 이것이 최고 걸작이라면 당장 루이스턴으로 가서 출품하라고 종용했다. 샤르는 이제 앤의 사역자가 아닌 친구로서 그녀와 함께하겠다는 뜻을 내비쳤고, 앤은 그 말에 힘을 얻어 다시금 눈을 빛냈다. 두 사람은 상자형 마차를 몰고 밤새도록 블러디 가도의 어둠을 뚫고 달려가, 마침내 아침 이슬이 마를 무렵 왕도 루이스턴에 도착했다.

 

 

[7장 왕가 훈장의 행방]

 

수로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 거대한 왕성 주위로 방사형 도로가 뻗어 있고, 그중 왕성 정문으로 이어지는 가장 넓은 개선 도로에서 설탕과자 품평회의 막이 올랐다. 하얀 천막 아래 마련된 높은 좌석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왕과 왕비, 공주와 왕자들이 자리를 잡았고 광장은 그들을 보려는 백성들로 가득 찼다. 왕가 앞 탁자 위에는 장인들이 정성껏 만든 설탕과자들이 하얀 천에 덮인 채 나열되어 있었으며, 그 뒤로 모피 조끼를 입은 조나스를 비롯한 장인들이 긴장한 기색으로 서 있었다. 선대 국왕 때부터 신뢰를 받아온 다우닝 백작이 품평회 개최를 선언하려던 찰나, 상자형 마차 한 대가 관중석을 가로질러 돌진해 들어왔다. 마차에서 뛰어내린 소녀 앤 할퍼드는 병사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광장 중앙으로 달렸고, 그녀를 지키던 검은 머리의 요정 샤르 펜 샤르는 앞을 가로막는 병사를 발차기로 날려버리며 앤의 길을 열어주었다. 앤은 다우닝 백작 앞에서 고꾸라지면서도 아직 개최 선언 전이니 참가를 허락해달라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이때 백작의 뒤에서 은설탕 자작인 휴 머큐리가 나타나 앤의 기량을 자신이 이미 시험해 보았다고 보증해주었고, 덕분에 앤은 극적으로 품평회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앤은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 은설탕을 옮긴 뒤 광장 끝 조나스의 옆자리에 서게 되었다. 조나스는 앤이 내놓은 작은 설탕과자를 보며 실소했지만, 앤은 남의 작품을 훔쳐 출품한 조나스의 뻔뻔함을 사납게 노려보며 응수했다. 관리의 지시에 따라 장인들이 일제히 천을 벗기자 찬란한 설탕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지루한 표정으로 작품들을 훑어보던 국왕의 시선이 조나스와 앤의 작품 앞에 멈췄다. 국왕은 두 사람을 어전 가까이 불러들였고, 조나스의 커다란 작품과 앤의 정교한 작은 작품을 번갈아 살폈다. 휴는 두 작품의 경향이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했고, 국왕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생기 넘치는 앤의 작품이 마음에 든다며 그녀를 올해의 은설탕사로 삼고 싶어 했다. 그러나 축제에는 화려하고 큰 작품이 적합하다는 왕비의 반대에 부딪힌 국왕은 결국 조나스의 작품에 왕가 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승리의 기쁨에 도취한 조나스가 국왕에게 은설탕 통을 바치려던 순간, 통 안에서 요정 미스릴 리드 포드가 튀어나오며 상황은 급변했다. 미스릴은 조나스가 은설탕 정제 기술이 부족해 양을 채우지 못하자 자신에게 눈속임을 시켰다며 눈물 섞인 연기를 펼쳤고, 실제로 통 하나가 텅 비어 있는 것이 확인되자 광장은 술렁였다.

 

 

당황한 조나스는 이것이 앤의 음모라며 미스릴을 죽여야 한다고 소리쳤고, 앤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며 비난했다. 이에 분노한 앤은 조나스가 자신의 작품을 훔쳤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폭로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휴는 진위를 가리기 위해 국왕의 어전 앞에서 두 사람에게 나비를 즉석에서 만들라는 과제를 내렸다. 앤은 샤르의 아름다운 날개를 떠올리며 순백의 광택이 나는 나비를 빚어냈지만, 조나스는 제대로 된 형태조차 잡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실력의 격차는 명백했으나 국왕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올해의 은설탕사를 선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자리를 떴다. 품평회는 허무하게 끝났지만 다우닝 백작은 내년에는 축제에 어울리는 큰 작품을 가져오라는 왕비의 격려를 전하며 앤의 작품을 큰 금액에 사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앤은 이미 주기로 약속한 이가 있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휴는 조나스의 처우를 앤에게 맡겼고, 앤은 고개를 숙인 채 떨고 있는 조나스의 뺨을 세게 내리치며 그간의 울분을 털어냈다.

 

 

광장에 홀로 남은 샤르에게 다가간 앤은 비록 은설탕사는 되지 못했지만 엄마의 죽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앤이 약속대로 설탕과자를 건네려 하자 샤르는 더 맛있는 과자를 원한다며 내년에 앤이 은설탕사가 될 때까지 곁에서 기다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샤르는 앤의 손가락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진심을 전했고, 앤은 생전 처음 느끼는 사랑스러움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때 조나스의 통에 있던 은설탕을 몰래 다 먹어치워 배가 빵빵해진 미스릴이 나타나 앤의 어깨에 올라탔고, 뒤늦게 미스릴의 진심을 깨달은 앤은 그를 꼭 껴안으며 사과했다. 미스릴은 투덜거리면서도 지옥 끝까지라도 앤을 따르겠다며 큰소리를 쳤고, 샤르와 미스릴은 앤을 허수아비라 부르며 유치한 말싸움을 벌였다. 앤은 자신을 위해주는 두 요정의 모습에 미소 지으며 내년에는 더 멋진 설탕과자를 만들겠다고 다짐했고, 달콤한 향기가 감도는 왕도의 광장을 뒤로하며 새로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