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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발 작품

슈거 애플 페어리 테일 4권- 은설탕사와 녹색 공방 챕터 별 스토리 요약

by 미도착 원고함 서고지기 2026. 4. 13.

 

 

[1장 밀스필드로]

 

 

앤은 왕성을 마주한 광장 한복판에서 차가운 돌바닥의 감촉을 느끼며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방금 전 샤르가 브리짓의 손에 이끌려 인파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녀는 발걸음을 떼기는커녕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달려온 키스가 무릎을 꿇고 그녀의 상태를 살폈고, 캣은 이 모든 상황을 주도한 엘리엇의 멱살을 움켜쥐며 분노를 터뜨렸다. 엘리엇은 특유의 익살스러운 태도로 자신은 그저 진실을 알려주었을 뿐이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앤은 엘리엇의 입을 통해 샤르가 자신의 은설탕을 되찾아주기 위해 브리짓에게 날개를 넘기고 자유를 팔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들었다. 샤르가 날개를 빼앗겼다는 소식에 미스릴은 비명을 질렀고, 키스는 엘리엇의 방관하는 태도에 탄식했다. 앤은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듯한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간신히 정신을 차려 엘리엇의 앞에 섰다. 그녀는 샤르를 되찾을 방법을 물었으나, 엘리엇은 브리짓이 결코 샤르를 놔주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앤을 자극했다.

 

 

엘리엇이 떠난 뒤 앤은 가슴 앞에 쥔 왕가훈장을 바라보며 침울해졌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 내년을 기약할 수도 있었는데 왜 샤르가 그런 희생을 했는지 자책하는 앤에게 키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키스는 앤이 필락스 공의 일로 유명해진 탓에 은설탕사 자격을 얻지 못하면 다른 장인들의 극심한 방해를 받아 앞으로 설탕과자 장인으로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알려주었다. 앤은 자신이 처한 위태로운 상황을 스스로 깨닫지 못해 샤르가 대신 짐을 짊어졌다는 사실에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미스릴은 당장 래드클리프 본 공방으로 가서 샤르를 만나보자고 제안했고, 키스와 캣 역시 앤을 격려하며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시각 래드클리프 본 공방의 안채 방에서 샤르는 창가에 기댄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브리짓은 샤르의 언짢은 기색에 안절부절못하다가도, 자신을 부드럽게 대해달라며 억지를 부렸다. 샤르가 명령을 하든가 날개를 돌려달라며 차갑게 대꾸하자, 브리짓은 겁을 먹으면서도 옷 속에서 날개를 꺼내 무리하게 잡아당겼다. 온몸이 뒤틀리는 통증에 샤르가 신음하자 브리짓은 깜짝 놀라 손을 뗐지만, 이내 그에게 애정을 갈구하며 매달렸다. 그때 래드클리프 부인이 찾아와 브리짓의 아버지인 글렌 페이지가 발작을 일으켰다는 급보를 전했다. 엘리엇은 이 상황을 이용해 브리짓에게 앤이 찾아오기 전에 샤르를 데리고 밀스필드로 떠나라고 부추겼다. 샤르는 오지 말라고 빌면서도 한편으로는 앤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자신의 모순된 마음에 괴로워하며 마차에 몸을 실었다.

 

 

앤과 키스가 공방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샤르와 브리짓이 떠난 뒤였다. 텅 빈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엘리엇은 그들이 밀스필드로 향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앤에게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페이지 파의 본 공방에서 은설탕사로 일한다면 샤르를 되찾을 기회를 만들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키스는 엘리엇의 의도를 의심하며 만류했지만, 앤은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샤르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며 결연하게 대답했다. 앤은 이튿날 아침 밀스필드로 떠나기로 약속하고, 마커스 래드클리프를 만나 사과와 함께 내년분 은설탕을 확보하는 등 필요한 절차를 마쳤다.

 

 

숙소로 돌아온 앤은 짐을 챙기며 창가에 놓인 왕가훈장을 소중히 목도리에 감싸 상자 밑바닥에 깊숙이 집어넣었다. 샤르의 희생으로 얻은 훈장을 지금 당장 당당하게 가질 자격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밤이 깊었을 때 은설탕 자작 휴 머큐리가 앤을 찾아왔다. 휴는 캣이 자신을 찾아와 고개를 숙이며 샤르를 되찾아달라고 부탁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전했다. 하지만 앤은 타인의 권력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 않다며 휴의 도움을 정중히 거절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샤르를 구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은설탕사라고 자부할 수 없다는 그녀의 말에 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휴는 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것이 은설탕사로서 내딛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격려했고, 앤은 반드시 샤르를 되찾겠다고 다시 한번 굳게 다짐했다.

 

 

[2장 호수와 녹색 공방]

 

 

앤은 엘리엇과 함께 낡은 상자형 마차를 타고 루이스턴을 떠나 북동쪽 스트랜드 지방으로 향했다. 엘리엇은 마차비를 아끼기 위해 당연하다는 듯 앤의 옆자리에 앉아 여행의 설렘을 늘어놓았고, 미스릴은 그런 그를 도끼눈으로 노려보며 앤과 엘리엇 사이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평화로운 보리밭과 숲을 지나 도착한 밀스필드는 호수와 산기슭이 어우러진 여유로운 도시였다. 그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페이지 파의 본 공방은 300년 전 이노크 페이지가 세운 전통을 간직한 곳으로, 거대한 요새 같은 위엄 대신 고풍스러운 벽돌 건물과 여러 채의 작업동이 흩어져 있는 전원적인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차를 세우고 처음 마주친 장인 올란드는 앤을 향해 차가운 눈빛을 보내며 무뚝뚝한 태도로 일관했다.

 

 

엘리엇의 안내로 들어선 안채에서 앤은 병세로 침대에 기대앉은 파벌의 수장 글렌과 그의 딸 브리짓을 대면했다. 글렌은 앤이 왕가 훈장을 받은 은설탕사라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며, 파벌 수장의 대리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엘리엇을 대신해 앤을 공방의 장인장으로 임명했다. 브리짓은 아버지가 여자인 앤을 장인으로 인정하는 것에 크게 반발하며 울음을 터뜨렸지만, 글렌은 공방의 안위를 위해 앤의 능력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앤이 공방을 재건해낸다면 샤르의 날개를 돌려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샤르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부푼 앤은 장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이후 앤은 작업동으로 향해 건장한 체격의 킹, 대륙 출신의 소년 나디르, 온화한 인상의 발렌타인과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래드클리프 파와 달리 본 공방의 장인이 단 다섯 명뿐이며 주문조차 끊겨 파벌이 몰락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졌다. 엘리엇은 앤이 페이지 공방을 재건해 줄 것을 기대한다며 그녀를 압박했고, 앤은 창너머로 브리짓에게 매달려 있는 샤르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그날 밤, 앤은 복잡한 마음과 샤르를 향한 그리움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램프를 든 채 작업동으로 향했다. 낡은 도구들을 살피며 장인으로서의 각오를 다지던 앤 앞에 달빛을 등진 샤르가 나타났다. 샤르는 앤의 흐트러진 잠옷 차림을 나무라며 차가운 말로 그녀를 밀어냈지만, 앤은 자신의 자부심을 걸고 샤르를 구해내 샤르의 희생으로 은설탕사가 되었다는 부채감을 씻어내겠다고 소리쳤다. 서툰 손길로 앤의 잠옷 리본을 직접 묶어준 샤르는 앤의 한결같은 진심에 결국 마음을 돌렸다. 샤르는 앤을 품에 안은 채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앤이 구해주기를 기다리라는 말에 응하며 오직 앤만을 믿고 기다리겠다고 맹세했다.

 

 

 

 

[3장 최초의 은설탕]

 

 

아침이 밝자 앤 할퍼드는 잠든 미스릴 리드 포드를 흔들어 깨우며 지난밤 작업동에서 샤르 펜 샤르를 만났던 일을 들려주었다. 미스릴은 샤르가 브리짓에게 시달리느라 고생이 많을 것이라며 앤을 재촉했고, 앤은 서둘러 준비를 마친 뒤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이미 올란드가 홀로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앤에게 자신을 형식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라며 차갑게 대하면서도 식사 후에는 앤이 장인장으로서 작업동으로 와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앤이 자리에 앉자 집안일을 돕는 요정 다나가 식사를 가져다주었고, 곧이어 수장 대리인 엘리엇이 나타나 페이지 공방이 지고 있는 1만 크레스라는 막대한 빚과 수장 글렌의 병환으로 인한 공방의 위기 상황을 털어놓았다. 엘리엇은 지난밤 앤과 샤르의 만남을 엿보았다며 짓궂은 농담을 던졌고, 앤은 당황하며 서둘러 작업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업동에 들어선 앤은 올란드와 킹, 나디르, 발렌타인이 각자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며 장인장으로서 첫 지시를 내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녀는 고민 끝에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한심한 지시를 내린 뒤 미스릴에게 청소를 부탁하며 자괴감에 빠졌으나, 이내 기운을 차리고 장인들의 실력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올란드는 말 모양의 설탕과자를, 킹은 정교한 꽃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들의 솜씨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다. 앤은 장인이 만들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만든다는 페이지 공방의 독특한 방식과 장인장은 오직 완성품의 질을 가려내어 공방의 마크를 찍는 역할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래드클리프 공방과는 전혀 다른 이 방식에서 앤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지만, 우선은 나디르와 함께 질 좋은 은설탕의 재고를 파악하며 장인장으로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저녁 식사 시간, 앤은 요정 다나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제안했으나 요정은 인간과 어울릴 수 없다며 거절했고, 홀로 남은 앤은 엘리엇과 대화하며 공방의 신념에 대한 의구심을 나누었다. 그때 브리짓이 샤르를 데리고 나타나 은설탕 정제의 시작을 알리는 최초의 은설탕의 의미를 설명하며, 앤은 그저 변화를 불러올 뿐인 정체 모를 존재라고 비아냥거렸다. 샤르는 브리짓의 태도를 비웃으며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었고, 분노한 브리짓은 엘리엇과 앤을 내쫓은 뒤 샤르와 단둘이 식사하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브리짓은 밤늦도록 샤르에게 매달리며 위로를 갈구하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새벽녘, 잠이 오지 않아 작업동으로 향한 앤은 그곳에서 샤르와 다시 마주쳐 짧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하지만 잠에서 깬 브리짓이 두 사람의 만남을 목격하고 질투에 휩싸여 샤르에게 벌을 주겠다며 자신의 방 벽난로 구멍에 숨겨두었던 샤르의 날개를 꺼내려 했다. 그러나 숨겨두었던 날개는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였고, 브리짓이 절망하며 울부짖는 사이 올란드가 나타나 래드클리프 공방의 수장과 키스 파웰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뒤이어 나타난 엘리엇은 샤르의 날개를 글렌이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고, 곧이어 부축을 받으며 나타난 글렌은 딸의 지나친 집착을 꾸짖으며 앞으로 자신이 날개를 관리하겠다고 선언했다. 글렌은 샤르에게 앤의 방에 머물며 자유롭게 지내되 절제된 태도를 보이라고 명령한 뒤, 앤에게 래드클리프 일행을 응대하라고 지시하며 쓰러지듯 엘리엇의 품에 안겼다.

 

 

[4장 다시 도전할 때]

 

 

샤르가 앤의 방에 들어서자 침대에 누워있던 미스릴 리드 포드는 믿기지 않는 듯 제 눈을 몇 번이나 비벼댔다. 눈앞의 샤르가 환상이 아님을 깨닫자마자 미스릴의 호수 빛 눈동자는 순식간에 충혈되었고, 그는 침대에서 도약해 샤르의 목을 꽉 끌어안으며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샤르는 울며 매달리는 미스릴의 목덜미를 붙잡아 귀찮다는 듯 떼어냈지만, 미스릴은 날개를 되찾은 것이냐며, 그동안 그 여자에게 어떤 심한 짓을 당했느냐고 엉뚱한 망상을 쏟아냈다. 앤은 새벽부터 있었던 일들을 차분히 설명해 주었고, 비록 날개가 돌아온 것은 아니었으나 샤르가 다시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앤은 오랜만에 자연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겨우 진정된 미스릴은 샤르의 어깨에 앉아 그의 머리카락과 뺨을 만지작거리며 누가 날개를 훔쳐 수장에게 가져간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앤 역시 브리짓조차 몰랐던 장소를 알아낸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샤르는 날개를 가진 이가 누구든 인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며 냉정하게 대꾸했다. 앤은 요정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 인간들의 원칙을 보며 씁쓸함을 느꼈으나, 그 마음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때 창틀에 걸터앉아 밖을 보던 샤르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그는 기분 나쁜 기색을 내비치며 마차가 오고 있음을 알렸다. 언덕 아래 길 위에는 래드클리프 공방의 수장 마커스와 키스 파웰이 탄 마차가 보였다.

 

 

앤은 반가운 마음에 키스를 맞이하러 내려가려 했으나, 샤르는 그를 만날 필요가 없다며 무뚝뚝하게 고개를 돌렸다. 실망한 앤은 1층에 있는 글렌의 방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엘리엇과 함께 마커스 일행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마커스는 병상에 누워 약해진 글렌의 모습에 놀라 서툰 위로를 건넸고, 페이지 공방이 새로운 장인인 앤을 영입한 것을 두고 올해 신성제 선품에 참여할 계획인지 떠보았다. 신성제 선품이란 새해를 축하하는 국교회의 축제에서 제단을 장식할 설탕과자 공방을 정하는 영광스러운 행사였으나, 글렌은 이를 가볍게 부정했다. 소개를 받은 키스는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여 사과했고, 글렌은 그가 자유롭게 길을 선택한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며 앤에게 키스를 안내하라고 일렀다.

 

 

응접실로 이동한 앤과 키스는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키스는 앤과 샤르가 무사한지 걱정되어 따라왔음을 밝히며, 마커스가 페이지 공방의 선품 참여를 경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선품에 선정되면 국교회로부터 1만 크레스라는 거금을 받고 파벌의 명성도 치솟는다는 말에 앤은 공방의 빚을 갚을 기회라고 생각하며 눈을 빛냈다. 두 사람은 산책을 위해 밖으로 나섰고, 키스는 쌀쌀한 바람에 몸을 떠는 앤의 어깨에 자신의 코트를 걸쳐주었다. 그들은 호수로 이어지는 자갈길을 걸으며 선품 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앤은 페이지 공방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선품에 선정되지 못했는지 의문을 품었다.

 

 

길에서 물을 긷던 나디르와 발렌타인을 만났을 때, 키스를 향한 그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키스는 자신이 페이지 파를 버리고 래드클리프 파로 떠난 배신자로 낙인찍혔음을 덤덤히 고백했다. 그는 에드워드 파웰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라고 털어놓았고, 앤은 그런 키스를 위로하며 페이지 공방을 다시 일으켜 세워 그의 죄책감을 덜어주겠다고 다짐했다. 앤은 선품 참여야말로 공방 재건의 유일한 길임을 깨닫고 키스의 손을 꽉 잡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마커스 일행이 떠난 후, 앤은 글렌을 찾아가 선품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글렌은 선대 수장이 왕가의 방침 변화에 저항하며 내린 결정을 뒤집을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앤은 전통에 얽매여 실수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며 맞섰고, 자신 또한 페이지 공방의 장인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싶다고 소리쳤다. 화가 난 글렌과 물러서지 않는 앤 사이에서 엘리엇은 폭소를 터뜨리며 상황을 중재했고, 앤을 식당으로 데리고 나갔다. 엘리엇은 공방에 남은 장인들이 모두 글렌에게 큰 은혜를 입은 이들이라며 그들의 사연을 하나씩 들려주었다.

 

 

어머니의 치료비를 대준 글렌을 위해 일하는 엘리엇부터, 양자가 아닌 장인으로서 엄격하면서도 따뜻하게 길러진 올란드, 갈 곳 없는 악동이었던 킹, 수학적 재능을 설탕과자에 녹여낸 발렌타인, 그리고 외국인이라는 차별을 딛고 제자로 받아들여진 나디르까지, 그들은 모두 글렌을 진심으로 흠모하고 있었다. 앤은 그들이 지키고 싶어 하는 이 공방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작업동으로 향했다. 그녀는 자신이 정제한 질 낮은 은설탕을 꺼내 장인들에게 각자의 솜씨를 보여달라고 제안했다.

 

 

앤은 브리짓의 슬픈 눈동자를 떠올리며 그녀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옥빛 작은 새를 빚어냈다. 그 곁에서 발렌타인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정육면체들을 만들어냈고, 나디르는 바늘 끝으로 보리알만 한 꽃과 정교한 벽돌집을 세공하며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 앤은 이들의 특별한 기술을 조합한다면 지금껏 보지 못한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며칠 뒤, 주문이 완전히 끊겨 공방이 폐업 위기에 처하자 글렌은 직접 작업동을 찾아와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그는 삼백 년의 전통을 한 번만 무시하겠다며 신성제 선품 참여를 선언했다. 다만, 선품에서 뽑히지 못할 경우 앤은 장인장에서 물러나 공방을 떠나야 하며, 샤르의 날개 또한 영영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가혹한 조건을 내걸었다. 앤은 페이지 공방의 장인장으로서 그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날 해 질 녘, 앤은 석양을 바라보고 있던 샤르를 찾아가 선품 참여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만약 실패하여 여기서 쫓겨나더라도 자신의 모든 명예를 버려서라도 반드시 그의 날개를 되찾아주겠다고 맹세했다. 샤르는 앤을 믿고 기다리겠다고 답하며, 그녀의 곧고 강한 진심에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샤르는 앤을 향한 자신의 감정이 과거 리즈에게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그녀가 곁에 없으면 견딜 수 없는 강렬한 욕구임을 깨닫고 당혹스러워했다. 이를 지켜보던 미스릴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겠다며 과장된 웃음과 함께 자리를 비켜주었고, 샤르는 앤에게 입 맞추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깊어가는 가을 하늘 아래 그녀와 나란히 서 있었다.

 

 

[5장 누군가를 위한 설탕과자]

 

 

신성제에 출품할 설탕과자를 결정하기 위해 작업동에 모인 네 명의 장인들은 앤의 질문에 각자 다른 의견을 쏟아냈다. 발렌타인은 성인이나 시조왕을 모티브로 한 거대한 작품이 정석이라 주장했고, 킹은 지루한 동상보다는 색감을 살릴 수 있는 식물이 낫다며 투덜거렸다. 올란드는 계절감을 무시하지 말라며 강인한 시조왕을 지지했고, 나디르는 못생기고 큰 과자는 싫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앤은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만 고집하는 이들을 진정시키며, 이번에는 한 명의 장인이 책임지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다섯 명이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여 같이 만드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 올란드는 다섯 명의 의견이 일치할 리 없다며 콧방귀를 뀌었지만, 앤은 여러 사람의 의견이 모인 작품이야말로 많은 이들에게 선택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막연한 희망을 품고 설득을 이어갔다.

 

 

의견 차이를 좁힐 힌트를 찾기 위해 앤과 장인들은 역대 수장들의 일기를 찾아 안채로 자리를 옮겼다. 길드 빚 상환 문제로 루이스턴으로 떠나려는 엘리엇과 인사를 나눈 뒤, 앤은 겹겹이 쌓인 낡은 일기장들을 마주했다. 하지만 일기장은 난해한 고어와 비유적인 표현들로 가득해 앤을 당황하게 했다. 공부를 싫어했던 나디르와 킹은 비명을 지르며 포기하고 대신 청소와 빨래를 하겠다며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다행히 올란드와 발렌타인은 고어를 읽을 줄 알았고, 발렌타인은 고전어를 현대어로 풀이한 메모를 앤에게 건네며 친절하게 도움을 주었다. 앤은 미스릴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밤늦게까지 일기를 훑어내려 가며, 과거에 페이지 공방이 국교회와 의견 대립을 겪었던 기록을 찾아냈다.

 

 

늦은 밤 홀로 식당에 남은 앤은 추위를 견디며 남은 일기장과 씨름했다. 그때 요정 하루가 나타나 부끄러움이 많은 다나가 보낸 허브차를 건넸고, 앤은 하루로부터 브리짓이 학교에서 성실히 공부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앤은 브리짓에게 일기 해석을 부탁할 겸, 미리 만들어둔 옥빛 작은 새 설탕과자를 들고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브리짓은 샤르가 온 줄 알고 반겼으나 앤임을 확인하자 싸늘하게 반응했다. 앤은 정중하게 도움을 요청하며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는 설탕과자를 내밀었지만, 브리짓은 샤르가 오지 않는 한 절대 돕지 않겠다며 문을 거칠게 닫아버렸다.

 

 

방문 앞에서 허탈해하던 앤은 어두운 복도에서 아기 고양이 설탕과자를 들고 있는 올란드와 마주쳤다. 당황하던 올란드는 결국 샤르의 날개를 훔쳐 글렌의 머리맡에 둔 것이 자신이었음을 고백하며, 과거에 밝고 착했던 브리짓이 설탕과자 장인의 꿈을 포기하게 되면서 뒤틀려버린 사연을 들려주었다. 앤은 부모의 애정과 공방의 존속이라는 명분 아래 꿈을 빼앗긴 브리짓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설탕과자란 결국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깨달았다. 앤은 올란드에게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닌, 보는 사람이 기뻐할 만한 설탕과자를 다시 생각해보자고 제안했고 올란드는 짧은 침묵 끝에 수긍했다.

 

 

다음 날 아침, 앤은 샤르의 도움으로 고어 일기를 완벽히 분석한 뒤 장인들을 다시 소집했다. 앤은 선품 제도가 생겨난 이유가 공방의 고집과 교회의 취향 차이 때문이었음을 설명하며, 이번에는 국교회에 아첨하는 것이 아니라 수장인 글렌이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할 작품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킹은 예전에 글렌이 신성제 밤에 내리는 눈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올란드는 글렌이 상록수 잎에 눈이 쌓인 모티브를 자주 만들었음을 덧붙였다. 앤은 글렌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을 상징하는 눈을 테마로 정하고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모두가 결의를 다지는 순간, 밖에서 엘리엇에게 큰일이 생겼다는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며 작업동의 평온함은 깨지고 말았다.

 

 

[6장 눈]

 

 

안채의 현관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우유 배달 소년의 다급한 외침에 작업동에 있던 앤과 미스릴, 그리고 네 명의 장인들이 일제히 뛰쳐나왔다. 소년의 어깨에는 피를 흘리며 축 늘어진 엘리엇이 업혀 있었고, 이를 본 앤은 비명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안채 문을 열고 나타난 샤르가 신속하게 엘리엇의 몸을 건네받아 상태를 살폈다. 엘리엇의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옆구리에는 깊지 않지만 날카로운 베인 상처가 나 있었다. 의사가 도착해 응급처치를 마친 뒤 열흘 정도면 회복될 것이라는 진단을 내릴 때까지 브리짓은 겁에 질린 채 방 한구석을 지켰다. 점심 무렵 의식을 되찾은 엘리엇은 루이스턴에서 돌아오던 길에 인적이 드문 곳에서 강도를 만났다고 털어놓았다. 후드를 쓴 괴한은 엘리엇에게서 은설탕 향기가 난다며 은설탕사인지 물었고, 아니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갑자기 칼을 휘둘렀다.

 

 

샤르는 엘리엇의 상처가 인간이 만든 칼날로는 불가능할 만큼 정교하고 날카롭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자신의 손에서 은빛 칼날을 만들어 보이며 이것이 귀석 요정이 만든 무기에 의한 상처임을 확신했다. 엘리엇 역시 범인의 칼날이 붉은 은빛으로 반짝였다고 증언하며 요정의 소행이었음을 뒷받침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요정의 습격에 불안감이 감돌았지만, 선품까지 남은 시간은 단 11일뿐이었다. 앤은 병상에 누운 글렌 수장을 찾아가 엘리엇의 부상 소식을 전했고, 자책하는 수장에게 반드시 그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작업동으로 돌아온 앤은 장인들에게 이번 선품의 주제로 '눈'을 제안했다. 단순히 형태 없는 눈이 아니라, 겨울날 유리창에 맺히는 정교하고 기하학적인 결정체들을 조립해 거대한 탑을 쌓기로 한 것이었다.

 

 

장인들은 앤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란드는 은설탕의 광택과 강도를 높이기 위해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끈질기게 반죽을 도맡았고, 킹은 섬세한 감각으로 설탕에 은은한 색을 입혔다. 발렌타인이 기계적인 정확함으로 육각형의 기본 형태를 잘라내면, 앤은 그 위에 레이스 뜨개질 같은 방사형 문양을 새겼고 나디르는 바늘을 이용해 미세한 구멍을 뚫는 투각 작업을 진행했다. 미스릴 또한 도구와 재료를 적재적소에 나르며 효율을 높였다. 하루에 200개씩, 총 1,400개가 넘는 눈의 결정을 만들어야 하는 가혹한 일정이 이어졌다. 장인들은 새벽부터 자정까지 램프 불빛 아래서 은설탕을 만졌고, 좁은 휴식실에서 이마를 맞대고 식사를 하며 점차 앤을 중심으로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해 나갔다.

 

 

작업 9일째 되는 날, 앤은 그동안 만들어온 수많은 결정을 입체적으로 조립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부서질 듯 얇은 결정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쌓아 올리는 과정은 극도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마침내 열흘째 밤, 앤의 키를 훌쩍 넘는 원뿔형의 '눈의 탑'이 완성되었다. 각양각색의 결정들이 겹쳐진 탑은 내부로 들어오는 빛을 난반사하며 환상적인 광채를 내뿜었다. 완성을 확인하러 온 엘리엇과 샤르의 부축을 받으며 나타난 글렌 수장은 눈앞의 광경에 넋을 잃었다. 글렌은 추억 속의 아름다운 설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작품을 보며 깊이 감동했고, 앤을 향해 비로소 손님이 아닌 페이지 공방의 '우리 장인장'이라 부르며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글렌은 앤에게 엘리엇과 함께 루이스턴으로 떠날 것을 명하며, 샤르에게는 전사요정으로서 장인들을 지키는 호위 임무를 완수하라고 지시했다. 샤르는 엷은 미소를 띠며 그 명령에 따르겠다는 대답으로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알렸다.

 

 

[7장 축복의 빛]

 

 

루이스턴까지는 마차로 반나절 거리였으나, 앤 일행은 설탕과자를 완성한 다음 날 오후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엘리엇이 조달해 온 대형 짐마차에는 앤과 샤르를 비롯한 장인들이 모두 올라탔고, 고삐를 잡은 올란드는 득의양양하게 떠드는 엘리엇을 노려보며 마차를 몰았다. 짐칸에 실린 설탕과자는 워낙 섬세하여 작은 진동에도 부서질 위험이 있었기에 일행은 말의 속도를 최대한 늦춰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장인들은 엘리엇의 제안으로 만든 나뭇가지 틀 위에 보호용 천을 씌우고, 그것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구석을 단단히 붙잡았다. 샤르는 평소와 달리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며 호위에만 집중했다. 해가 저물고 남색 어둠이 깔리자 가도 위에 갈색 후드를 쓴 키 큰 사내가 나타났다. 엘리엇은 그가 자신을 습격했던 도적임을 알아챘고, 샤르는 마차를 멈추지 말고 계속 전진하라고 명령하며 홀로 내려 적과 대치했다.

 

 

샤르는 은빛 칼날을 꺼내 들고 적의 간격을 좁히며 맹렬하게 공격했다. 도적은 샤르에게 같은 귀석 요정끼리 손을 잡고 인간들을 죽인 뒤 날개를 되찾자고 유혹했으나, 샤르는 시간을 벌기 위해 동조하는 척하다가 상대의 빈틈을 노려 오른팔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샤르는 자신을 구해줄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며 차갑게 웃었고, 부상을 입은 도적은 분한 듯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사이 앤은 샤르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며 설탕과자를 지켰고, 날이 밝아올 무렵 마차는 마침내 루이스턴 시내에 도착했다. 성 루이스턴 벨 교회에는 이미 래드클리프 파와 머큐리 파의 장인들이 모여 있었고, 래드클리프의 수장 마커스는 페이지 공방의 등장을 보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선품이 시작되자 래드클리프 파는 키스의 손길이 닿은 시조왕의 입상을, 머큐리 파는 성인의 고뇌가 담긴 생생한 구체를 선보였다. 마지막 순서가 된 앤이 설탕과자를 덮은 천과 틀을 걷어냈지만, 어두운 교회 안에서 눈의 탑은 윤곽이 흐릿하고 평범해 보일 뿐이었다. 그때 몸에서 빛의 알갱이를 흘리며 부상을 입은 샤르가 교회 안으로 들어섰고, 그 모습을 본 앤은 주교에게 신성제 당일처럼 성당 안의 초를 모두 밝혀달라고 간청했다. 주교의 허락으로 수많은 촛불이 켜지자 페이지 공방의 설탕과자는 비로소 눈부신 빛을 발하며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교부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렸으나 주교는 결국 페이지 공방의 작품을 신성제의 설탕과자로 최종 선정했다.

 

 

승리의 기쁨 속에서 엘리엇은 앤에게 샤르의 날개가 든 가죽 자루를 건네며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떠나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앤은 자신이 시작한 일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신성제가 끝날 때까지 페이지 공방에 남아 설탕과자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샤르는 앤의 결정을 존중하며 그녀의 이마에 축복의 입맞춤을 남겼고, 앤은 비로소 자신이 당당한 은설탕사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일행은 다시 마차를 타고 페이지 공방으로 돌아가 글렌과 동료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모두가 축제 분위기에 젖어 있을 때, 홀로 소외감을 느끼며 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브리짓의 창가에 샤르만큼이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낯선 요정이 나타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