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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발 작품

슈거 애플 페어리 테일 6권- 은설탕사와 붉은 왕국 챕터 별 스토리 요약

by 미도착 원고함 서고지기 2026. 4. 15.

 

 

[1장 작업 재개]

 

 

침대 옆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엎드려 자고 있던 앤은 난데없이 몸이 강한 힘으로 끌어당겨지는 감각에 눈을 떴다. 누군가의 품에 안긴 채 뺨에 닿은 익숙한 옷감의 감촉과 머리카락의 싱그러운 향기를 맡으며 앤은 눈앞에 있는 샤르를 발견했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상황에서 샤르는 앤의 등을 감싼 팔에 힘을 주며 누구에게도 너를 넘기지 않겠다고 절박하게 읊조렸다. 그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고, 평소의 여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경계심이 가득했다. 그때 성관 안에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고, 샤르는 곧장 앤의 팔을 붙잡아 일으켜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2층 홀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니 현관 근처에는 장인들이 웅크리고 있는 올란드 주변에 모여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앤과 샤르가 계단을 뛰어 내려갔을 때 올란드는 한 손으로 얼굴의 왼쪽 절반을 가린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으며,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의 갈라진 틈을 메우고 있었다. 엘리엇이 안색이 파랗게 질려 올란드를 일으키려 애쓰는 동안, 샤르는 무릎을 꿇고 앉아 엘리엇에게 당장 의사를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발렌타인과 킹이 말을 타고 서둘러 성관 밖으로 나갔고, 나디르와 미스릴은 치료에 필요한 물과 천을 준비하러 부엌으로 향했다. 샤르는 앤에게 절대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말라고 짧게 경고한 뒤 엘리엇과 함께 올란드를 방으로 옮겼다. 침대에 눕혀진 올란드는 눈이 아프다며 이를 악물고 신음했고, 장인에게 생명과도 같은 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샤르는 올란드를 습격한 자가 가도에서 마주쳤던 붉은 요정이며, 그 요정의 정체가 바로 브리짓이 데려온 글라디스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본명이 라팔 펜 라팔인 그 요정은 샤르를 쫓아 성관에 잠입했다가 올란드와 마주치자 분풀이로 그를 벤 뒤 도망친 것이었다. 샤르는 라팔이 은설탕사인 앤을 미끼로 삼아 자신을 유인하려 한다는 계획까지 간파하며 더욱 경계 수위를 높였다. 앤은 샤르를 따라 브리짓의 방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쓰러져 있던 브리짓을 발견했다. 정신을 차린 브리짓은 라팔이 노아의 수명을 연장해 줄 소중한 설탕과자를 훔쳐 먹었다며 자책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앤은 브리짓의 어깨를 다독이며 속은 것은 잘못이 아니니 상황을 나아지게 할 방법을 함께 고민하자고 위로했다.

 

 

얼마 후 도착한 의사는 올란드의 상처를 봉합했으나 그가 왼쪽 눈의 시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절망적인 진단을 내놓았다. 유쾌하던 장인들은 침묵에 잠겼고 페이지 공방에는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인력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엘리엇은 장인들을 모아놓고 외부에서 은설탕을 빌려올지 의사를 물었다. 하지만 앤은 페이지 공방의 장인장으로서 무조건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겠다고 결연하게 선언했다. 나디르와 킹, 발렌타인 역시 앤의 의지에 화답하며 다시 맷돌을 돌리기 시작했다. 앤은 복도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샤르의 시선을 느끼며 마음을 가다듬고 눈송이 결정을 조립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중 창밖을 살피던 샤르가 언짢은 목소리로 앤에게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언덕길 나무 그늘 아래에는 전 은설탕 자작의 아들인 키스 파웰이 숨어서 앤에게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앤이 밖으로 나가자 키스는 페이지 공방이 굳어버린 은설탕 때문에 곤경에 처한 것을 걱정하며 찾아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부족한 인원으로 은설탕을 재가공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며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으나, 앤은 끝까지 해보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때 엘리엇이 나타나 숨어 있던 키스를 억지로 성관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엘리엇은 키스를 장인들이 작업하는 방 앞으로 데려가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기백을 직접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키스가 가진 죄책감을 자의식 과잉이라 꼬집으며, 페이지 공방의 장인들은 오직 실력만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엘리엇은 키스에게 공방에 합류할 것을 제안하며 스카우트를 시도했으나, 키스는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그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르고 싶지는 않다며 정중히 거절하고 성관을 떠났다. 엘리엇은 아쉽다는 듯 농담을 던지며 작업장으로 돌아갔고, 앤은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며 쓴웃음을 지은 채 다시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2장 국교회의 우려]

 

 

다음 날 아침, 경쾌한 목소리와 함께 커튼이 열리며 방 안 가득 밝은 빛이 쏟아졌다. 전날 밤늦도록 은설탕 작업에 매달렸던 앤은 신음을 내뱉으며 담요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지만, 끈질기게 깨우는 손길에 결국 몸을 일으켜야 했다. 침대 옆에서는 미스릴 리드 포드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소파에서는 라팔을 경계해 곁을 지키던 샤르가 막 잠에서 깨어난 참이었다. 이들을 깨운 주인공은 전날의 기력을 되찾고 생기가 도는 연보라색 머리의 요정 노아였다. 노아는 하버트 경을 깨우던 솜씨를 발휘하며 오늘부터 성의 일꾼인 다나와 하루를 돕기로 했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잠결에 옷자락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앤은 속옷과 다리가 보인다는 샤르의 짓궂은 농담에 얼굴을 붉히며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후, 성 1층에서 캣이 도착했다는 킹의 외침이 들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 나간 앤의 눈앞에 회색빛 머리카락과 푸른 눈을 가진 세련된 차림의 캣이 서 있었다. 캣은 성의 음침한 분위기에 투덜거리면서도 앤이 작업 중이던 설탕과자를 예리하게 살피며 그 정교함에 감탄했다. 그는 자신의 어깨 위에서 잠만 자는 요정 벤자민을 앤에게 떠맡긴 채, 곧바로 은설탕을 가는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위층으로 향했다.

 

 

앤은 기분 좋게 졸고 있는 벤자민을 부엌에 맡긴 뒤 3층으로 올라가 글렌에게 보고를 올렸다. 하지만 글렌은 올란드가 입은 상처 때문에 딸 브리짓을 향한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앤은 방에 틀어박힌 브리짓을 걱정했으나 글렌은 당분간 딸을 대면하고 싶지 않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씁쓸한 마음으로 방을 나온 앤은 올란드의 방 앞에서 서성이는 브리짓과 마주쳤다. 브리짓은 죄책감 때문에 어떤 얼굴로 올란드를 봐야 할지 모르겠다며 망설이고 있었다. 앤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진심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가가는 사소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격려했다. 그리고 캣이 왔다는 소식을 직접 전해달라는 부탁을 남긴 채 샤르와 함께 자리를 비워주었다.

 

 

홀로 남겨진 브리짓은 떨리는 마음으로 올란드의 방에 들어섰다. 침대 헤드에 기댄 채 얼굴의 절반을 붕대로 감고 있는 올란드를 보는 순간, 브리짓은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그가 장인으로서 소중한 눈을 잃게 되었다는 사실에 오열하며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넸다. 하지만 올란드는 오히려 그녀가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며 투박하지만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브리짓은 늘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겼던 장인들이 사실은 각자의 일에 몰두하느라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용기를 내어 올란드를 간호하겠다고 제안했다.

 

 

 

 

그사이 앤과 엘리엇은 은설탕 자작 휴 머큐리의 호출을 받고 성 루이스턴 벨 교회의 교부관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은설탕 자작과 주교가 기다리고 있었다. 주교는 올란드의 부상과 은설탕이 굳어버린 사고를 언급하며, 일정에 차질이 생긴 페이지 공방 대신 머큐리 공방에 작업을 일임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벌금 없이 일을 그만둘 수 있는 배려 섞인 제안이었지만, 앤은 장인의 자부심을 팔아넘길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엘리엇 역시 앤의 뜻을 지지하며 반드시 기한 내에 설탕과자를 완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성으로 돌아가는 길, 마차는 루이스턴 성벽 근처의 번화가를 지나게 되었다. 거친 불량배들과 주정뱅이들이 널브러진 거리를 지나던 중, 앤은 술집 외벽에 기대어 축 늘어져 있는 한 청년을 발견했다. 그 청년의 무릎 위에는 빨간 머리의 요정 캐시가 필사적으로 그를 깨우고 있었다. 앤은 비명을 지르듯 마차를 세우고 달려갔다. 지저분해진 금발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분명 앤이 잘 아는 조나스였다. 앤은 충격에 휩싸인 채 그의 어깨를 거칠게 흔들며 이름을 불렀다.

 

 

[3장 한 사람의 장인]

 

 

캣에게 들은 소문대로 조나스는 루이스턴에 머물고 있었으나 앤과 샤르가 마주한 그의 몰골은 상상 이상으로 초췌했다. 앤은 돌담길 위에 무릎을 꿇고 조나스를 깨워 설탕과자 품평회에서 새미의 만행이 모두 밝혀졌으며 마커스가 사과와 함께 복귀를 원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조나스는 천재적인 키스와 비교당하며 비참함을 느끼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수치스럽다며 자포자기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앤은 조나스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며 장인이 부족한 페이지 공방으로 올 것을 제안했으나, 조나스는 설탕과자가 지긋지긋하다며 자신은 다른 재능도 많으니 굳이 설탕과자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소리쳤다. 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재능만 탓하는 그의 뺨을 때리며 일침을 가했고, 결국 조나스는 사실 설탕과자를 정말 만들고 싶었다는 진심을 눈물로 고백하며 앤이 내민 손을 잡았다.

 

 

페이지 공방에 합류한 조나스는 캣의 혹독한 지도 아래 밤낮없이 맷돌을 돌리며 은설탕 정제 작업에 매진했다. 나디르와 미스릴 등 동료 장인들과 함께 힘을 합친 덕분에 작업은 예상보다 사흘이나 일찍 마무리되었고, 공방에는 잠시나마 활기와 희망이 감돌았다.

 

 

하지만 평화로운 공방에 갑자기 오싹한 기운이 감돌더니 목에 은빛과 붉은빛 실이 감긴 엘리엇이 나타나 습격 소식을 알렸다. 정원에는 요정 라팔이 서 있었고 그는 실을 조종해 엘리엇의 목에 상처를 내며 앤을 넘기라고 협박했다. 샤르가 검을 들고 맞섰으나 라팔이 인질인 엘리엇을 더욱 가혹하게 몰아붙이자, 앤은 동료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라팔에게 향했다. 라팔은 앤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모욕적인 태도를 보였고 샤르의 날개까지 빼앗아 고통을 준 뒤 그를 강제로 자신의 뒤를 따르게 했다. 라팔이 앤을 태운 말을 몰아 사라지자 부상을 입은 엘리엇은 캣에게 즉시 은설탕 자작과 다우닝 백작에게 이 사태를 보고하여 군대를 움직여 달라고 요청하며 긴박한 상황을 마무리했다.

 

 

 

 

[4장 요정과 인간]

 

 

어둠이 깔린 황야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라팔의 품에 안겨 말에 올라탄 앤은 강철처럼 차가운 그의 몸놀림과 살을 파고드는 추위에 몸을 떨었다. 목을 겨누던 실날의 칼은 사라졌지만, 공포의 감촉은 여전히 생생했다. 라팔은 주요 가도를 벗어나 도적과 야생동물이 들끓는 블러디 가도의 변두리로 말을 몰았다. 그 뒤를 푸른 말을 탄 샤르가 묵묵히 따랐다. 앤은 이를 부딪치며 추위를 견뎠고, 라팔은 가엾다며 속삭이면서도 멈추지 않고 거대한 돌로 쌓인 투박한 성채에 도착했다. 성채는 오랜 세월 방치된 듯 말라비틀어진 덩굴과 잡목으로 뒤덮여 있었다. 말에서 내린 라팔은 샤르의 노려봄을 즐기며 앤을 풀어주었고, 앤은 힘없이 샤르의 품에 안겼다. 샤르는 앤의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것을 확인하고는 라팔에게 벽난로가 있는 방을 요구했다. 스무 명 남짓한 무표정한 전사 요정들이 그들을 성채 최상층의 방으로 안내했다.

 

 

샤르는 서둘러 램프를 켜고 장작을 지펴 앤의 몸을 녹여주었다. 앤은 라팔에게 납치당한 뒤 겪은 공포와 피로로 인해 정신이 멍한 상태였다. 샤르는 앤의 뒤에서 그녀를 감싸 안으며 차가운 손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었다. 앤은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라팔에게 빼앗긴 샤르의 날개를 걱정하며 눈을 감았다. 앤이 잠든 사이 라팔은 방 안으로 침대를 들여놓으며 나타났다. 그는 인간을 연약하고 추악한 생물이라 칭하며 요정의 우월함을 강조했다. 라팔은 자신과 샤르가 마지막 요정왕 리제르바 시릴 새슈의 유지를 잇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주장했다. 과거 인간 왕 세드릭이 리제르바의 검을 예배당에 안치했고, 그 검 손잡이에 박혀 있던 세 개의 귀석 중 흑요석에서 샤르가, 오팔에서 라팔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밝혔다. 라팔은 샤르에게 함께 요정왕이 되어 인간과 맞서 싸우고 요정의 나라를 되찾자고 유혹했다. 그러나 샤르는 앤과 인간 동료들을 떠올리며 라팔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라팔은 샤르가 인간 계집에게 마음을 빼앗겨 사명을 잊었다며 분노했고, 결국 힘으로라도 샤르를 지배하겠다고 선언하며 방을 나갔다.

 

 

그 시각 키스는 앤이 요정에게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차를 몰아 홀리리프 성으로 달려갔다. 그는 페이지 공방의 장인들이 앤을 구하러 가지 않고 작업에만 몰두하는 모습에 분개했다. 키스는 엘리엇의 멱살을 잡으며 앤이 소속 장인이 아니라서 방치하는 것이냐고 소리쳤다. 그러자 평소 가벼운 태도를 보이던 엘리엇이 돌변하여 키스를 벽으로 밀쳐붙였다. 엘리엇은 자신들이 전사 요정을 상대할 힘이 없는 장인이기에, 앤이 돌아왔을 때 실망하지 않도록 그녀의 빈자리를 채우며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캣의 중재로 싸움이 멈추자 키스는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고 깊이 반성했다. 키스는 페이지 공방 사람들이 앤을 진심으로 장인장으로서 인정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자신 또한 앤과 공방을 위해 작업을 돕겠다고 자청했다. 키스의 합류로 공방의 작업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성채에 갇힌 지 사흘째 되는 날, 라팔은 앤을 찾아와 어디선가 약탈해 온 은설탕을 내밀며 설탕과자를 만들라고 명령했다. 앤이 거절하자 라팔은 엘리엇을 해치겠다고 협박하여 앤을 굴복시켰다. 라팔은 앤에게 샤르를 계속 곁에 두는 것이 결국 그를 불행하게 만드는 길이라며 심리적으로 몰아붙였다. 인간은 언젠가 죽어 요정을 홀로 남겨두게 되니, 진정으로 샤르를 위한다면 그를 요정들의 세계로 보내주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앤은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방을 뛰쳐나와 샤르를 찾던 중, 우연히 요정들이 식사하는 방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앤은 과거 자신이 태어나는 것을 지켜봐 주었던 작은 요정 루스르 엘 민을 만났다. 하지만 루스르는 한쪽 날개를 잃은 상태였다. 루스르는 라팔을 새로운 요정왕으로 모시며 충성의 맹세로 날개를 바쳤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앤은 요정의 자유를 부르짖으면서 정작 동족의 날개를 빼앗는 라팔의 위선에 치를 떨며 눈물을 흘렸다. 뒤늦게 나타난 샤르는 앤의 슬픔을 외면하는 요정들에게, 앤은 자신에게 날개를 돌려주었지만 라팔은 빼앗았다는 말로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일갈하며 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5장 요정왕이 될 자]

 

 

루이스턴 서쪽 시장 외곽에 자리한 설탕과자 가게 앞에는 왕도 경비 병사들이 줄지어 구경꾼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은설탕 자작 휴 머큐리와 다우닝 백작이 그 출입구에서 함께 나타났다. 가게 안의 참상은 분명히 어느 요정 일당의 소행이었다. 지난 1년 동안 요정 상인과 요정 사냥꾼들이 잇따라 습격당해 왔고, 최근 들어 그 빈도가 부쩍 늘었다. 휴는 브리짓에게 요정을 팔았다는 밀즈필드의 요정 상인을 찾아냈지만, 그 역시 가족 전원과 함께 이미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가족을 인질로 잡힌 채 시키는 대로 따르다 결국 살해당한 것으로 보였다. 사건이 세인트 주, 샤메이 주, 해링턴 주 세 곳에 걸쳐 있었기에 다우닝 백작이 직접 쫓는 수밖에 없었다. 혼자 생각에 잠긴 휴는 거리의 돌바닥을 내려다보다가 눈을 크게 뜨며 서쪽을 응시했다. 단서를 찾았다는 말과 함께 그는 몸을 돌렸다.

 

 

한편 성채 안의 방에서는 매일 밤 요정 루스르 엘 민이 앤과 샤르 곁을 찾아왔다. 라팔이 이끄는 무리에 끌려온 지 열흘째였다. 루스르는 별다른 목적 없이 그저 아름다운 두 사람 곁에 머물며 이야기를 나눴고, 난로 앞에 앉은 샤르는 한쪽 무릎을 세운 채 말없이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채에 있는 요정들은 다들 좋은 사람이지만 라팔만큼은 바라보기조차 두렵다는 루스르의 말에 앤은 라팔이 더욱 싫어졌다. 날개를 빼앗기고 명령을 따르는 자신의 처지가 인간에게 사역당하던 때와 다를 바 없다는 샤르의 말에 루스르는 당황했고, 앤은 샤르가 루스르에게 화난 게 아니라고 달랬다.

 

 

어느 날 루스르가 방에서 은설탕 통을 발견하자 앤은 그녀를 위해 설탕과자를 만들어 주었다. 라팔의 명령으로 만들 때는 긴장이 돼서 좀처럼 예쁘게 완성되지 않았지만, 찬물로 손을 식히고 은설탕을 반죽하자 손이 절로 움직였다. 날카로운 칼로 실처럼 가느다란 줄기와 잎을 잘라내고 보라색과 파란색을 섞어 루스르가 태어난 풀 열매 모양을 만들어 냈다. 루스르는 마법이냐고 탄성을 질렀고, 설탕과자를 손에 받자 빛의 입자가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 달콤하고 힘이 솟아나는 것 같다며 루스르는 다친 전사 요정들에게도 가져다주고 싶다고 했고, 앤은 흔쾌히 허락했다.

 

 

루스르가 기뻐하며 나간 뒤 앤은 샤르 옆에 앉았다. 그가 앞으로도 함께 있어 주겠다고 했을 때 정말 기뻤지만, 자신 때문에 샤르가 불행해지는 건 아닐까 마음이 걸린다고 앤은 조심스럽게 꺼냈다. 혹시 마음에 들었던 귀석 요정이 있었다면 그를 찾아보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을 하려 했지만 목구멍에 걸려 잘 나오지 않았다. 그때 샤르가 앤의 말을 막으며 부드럽게 불렀다. 기대도 된다고 속삭이며 한 손으로 앤의 뺨을 감싸고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그 순간 '넌 그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야'라는 라팔의 목소리가 귓가에 되살아나며 앤은 움찔하고 몸을 뒤로 뺐다. 샤르 역시 무언가를 떠올린 듯 뺨에 닿았던 손을 거뒀고, 둘 다 동시에 시선을 피했다.

 

 

샤르는 앤이 설탕과자처럼 은설탕만 만져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을 하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내비쳤을 때, 보호자에 대한 신뢰 이상의 사랑에 가까운 감정이 담겨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고 입을 맞추려 했지만, 라팔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이 닿은 자리에서부터 앤에게 불행이 전해질 것만 같아 소름이 돋았고, 1년 전 필요하다면 앤을 죽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던 자신이 지금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도 되는 건지 자책이 밀려들었다. 그날 밤부터 샤르는 앤의 곁에 최대한 다가가지 않으려 애썼고, 앤도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 무렵 앤은 매일 설탕과자를 만들어 루스르를 거쳐 전사 요정들에게 전했다. 라팔을 위해 만들 때는 손이 굳어 버렸지만 전사 요정들을 위해 만들 때는 꽃, 나비, 풀 열매, 눈 결정, 아기 고양이와 작은 새 등이 낙서하듯 자유롭고도 놀랍도록 예쁘게 완성됐다. 요정들의 방을 찾아갔을 때 앤은 그들에게 날개를 되찾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요정들은 사역자가 인간에서 요정왕으로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게 없다는 앤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깊이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홀리리프 성의 정원에서 키스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앤이 돌아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장인들은 묵묵히 일을 계속했고, 미스릴은 샤르가 있으니 괜찮다고 단언했다. 외투와 차를 들고 나타난 조나스는 앤이 돌아올 것 같냐는 키스의 물음에 끈질기고 집요하고 멍청한 그녀이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는 투박한 말로 희망을 담아 대답했다. 또한 신성제가 끝나면 래드클리프 공방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는 조나스의 말에 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때쯤이면 자신은 거기에 없을 것이라고 조용히 말했다.

 

 

성채에서는 라팔이 매일 샤르와 몇몇 전사 요정을 데리고 나가 요정 사냥꾼과 요정 상인을 습격해 전사 요정들을 모으고 있었다. 요정들의 날개는 자물쇠가 달린 상자에 보관하고 열쇠는 항상 몸에 지녔으며, 샤르의 날개만큼은 품에서 절대 놓지 않았다. 라팔의 명령을 거부하는 요정이 있으면 샤르에게 그를 베게 했다. 동료를 베고 인간을 습격하는 일은 샤르에게 우울한 일이었다. 칼에 쓰러진 인간들의 모습이 앤이나 페이지 공방 사람들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성채에 온 지 한 달이 넘어 요정들의 수는 예순 명에 가까워졌다.

 

 

어느 날 지하 우물에서 온몸에 묻은 피를 씻어내던 샤르에게 라팔이 내려와 동료 모으는 일은 오늘로 끝이라고 알렸다. 더 넓은 장소가 필요하다며 루이스턴과 웨스트르 사이의 작은 산간 마을을 습격해 영지로 삼겠다고 라팔이 밝혔다. 무기를 쓸 줄 아는 인간도 없고 인구는 백오십 명 남짓한 그 마을을 점거하면, 마을 사람들을 인질로 삼아 국왕도 쉽게 손쓰지 못할 것이라고 라팔은 잔혹한 희열이 어린 눈으로 설명했다. 그 모습을 보던 샤르는 라팔의 날개가 하나라는 것을 새삼 떠올렸다. 샤르는 라팔이 요정을 위한 대의가 아니라, 인간에게 사역당하며 굴욕을 겪었던 것에 대한 복수와 증오를 동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확신했다. 라팔이 1년 전 갑자기 요정왕을 자처하며 나타난 것도, 그 이전 백 년 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인간에게 사역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복수냐고 묻는 샤르에게 라팔은 분노로 반응했다. 샤르는 동료 요정에게 배신당해 인간의 손에 떨어진 것이고 그래서 동료조차 믿지 못해 날개를 빼앗아 지배한다고, 또 두 날개를 가진 요정이 눈앞에 있는 것에 유치한 질투를 느끼는 것이라고 낱낱이 말했다. 라팔은 그 말들이 사실이었기에 더욱 격분했다. 샤르는 복수와 지배는 요정왕이 될 자의 즐거움이 아니라는 말을 남기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날 저녁 앤은 설탕과자를 들고 요정들의 방으로 향하던 중 복도에서 라팔과 마주쳤다. 라팔은 자신에게는 형편없는 설탕과자를 만들면서 요정들에게는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준다며 그 이유를 따졌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거부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라팔은 얄미운 계집이라고 중얼거리며 앤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루스르와 전사 요정들이 만류하려 했지만 라팔은 자신을 위해 설탕과자를 만들지 못한다면 쓸모없는 인간이라며 차갑게 잘라냈다. 앤은 라팔의 개인실로 끌려가 문 안으로 내던져지듯 바닥에 손을 짚었다. 라팔이 손바닥 위로 은빛과 붉은빛이 섞인 빛의 입자를 모으는 것을 보고 앤은 자기를 죽일 생각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라팔은 담담히 말했다. 금강석의 힘은 충만했지만 흑요석이 살아 있는지조차 알 수 없어 혼자 요정왕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흑요석인 샤르를 찾아냈더니 인간 계집에 꾀어 넘어가 있었다고. 앤만 없었더라면 샤르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거라고 절망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말하며 은붉은 실로 앤의 발목을 감았다. 앤은 라팔도 외로운 것임을, 그리고 샤르를 동등한 존재로 여기며 곁에 두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꼈다. 떨리는 목소리로 앤은 반박했다. 샤르는 자신이 있든 없든 지금의 샤르이며, 친구가 되고 싶으면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고. 요정왕이라는 라팔의 말에 앤은 샤르가 요정왕이 될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라팔은 앤이 사라지면 50년 뒤 샤르도 잊어버릴 것이고, 천천히 그의 생각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말하며 실을 더 세게 조여들었다.

 

 

그 순간 방문이 열리고 샤르가 몸을 낮추고 달려들어 라팔의 등을 향해 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라팔이 뒤로 물러나자 샤르는 앤의 발목을 감고 있던 은적색 실을 끊어냈다. 짧고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실이 빛의 입자로 흩어졌다. 무슨 짓이라도 하면 베겠다고 말했음을 상기시키며 샤르는 앤 앞에 무릎 꿇고 라팔을 향해 검을 겨눴다. 라팔은 날개가 든 주머니를 으스러뜨릴 듯 쥐었고, 샤르는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손을 짚었다. 샤르는 고통 속에서도 앤에게 방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쳤다. 앤은 떠밀리듯 복도로 뛰쳐나왔고, 전사 요정들이 눈을 크게 뜬 채 바라보고 있었다. 앤은 주저앉아 눈물을 쏟으며 샤르가 위험하다고, 제발 샤르를 구해달라고 전사 요정들에게 소리쳤다.

 

 

라팔은 날개가 든 주머니를 힘껏 움켜쥔 채 비웃는 미소를 띠며 샤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몸이 뒤틀리고 산산조각 날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샤르는 이를 악물고 라팔을 노려보았지만, 목구멍이 막힌 듯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라팔은 자신을 모욕하고 인간을 감싼 대가라며 차갑게 쏘아붙이다가도, 한때는 서로 존중하는 한 쌍의 왕이 될 거라 생각했다며 모든 비극을 인간의 탓으로 돌렸다. 라팔이 주머니를 더 세게 쥐자 샤르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손에서 검을 놓쳤으며, 바닥에 떨어진 검이 입자가 되어 사라지자 옆으로 쓰러져 몸을 웅크렸다.

 

 

이때 전사 요정들이 두 손목이 뒤로 묶인 앤을 끌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라팔은 절망하는 샤르의 귓가에 앤이 어떻게 되는지 잘 지켜보라며 잔혹하게 속삭였다. 하지만 라팔이 날개 주머니를 옷 속에 넣고 앤에게 다가가는 찰나, 앤의 어깨에 숨어 있던 작은 요정 루스르가 번개처럼 튀어나와 그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당황한 라팔이 손을 쓰기도 전에 루스르는 샤르의 날개를 낚아채 샤르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날개를 되찾아 고통에서 벗어난 샤르는 즉시 의식을 집중하여 다시 백은의 검을 손에 쥐고 일어섰다.

 

 

예상치 못한 반전에 라팔이 혀를 찼고, 전사 요정들마저 인간인 앤을 놓아주어야 한다며 라팔을 가로막아 섰다. 분노한 라팔이 실을 휘두르려 하자 샤르는 몸을 낮게 깔며 달려들어 그를 밀어붙였다. 샤르는 루스르에게 앤을 데리고 성채 밖으로 도망치라고 명령하며 좁은 복도에서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라팔은 실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샤르의 검에 밀려 성벽 위의 보도로 물러났다.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성벽 끝에서 두 요정의 대치가 이어지던 중, 지상에서 수많은 말 울음소리와 함께 다우닝 백작가와 은설탕 자작의 군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샤르는 은설탕 통에서 흘러나온 설탕을 이정표 삼아 인간들이 이곳을 추적하게 만들었다고 밝히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동료라고 믿었던 샤르에게 배신당했다며 절망하는 라팔에게, 샤르는 날개를 쥐고 사역하는 자는 결코 동료가 될 수 없다고 일갈하며 다시 화살처럼 달려들었다. 거리를 좁힌 샤르의 검끝이 라팔의 가슴을 겨누며 그를 성벽 틈새로 몰아세웠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라팔은 체념한 듯 요정들의 날개가 든 상자의 열쇠를 바닥에 던져주었다.

 

 

 

 

라팔은 앤을 만나기 전의 샤르를 만났더라면 운명이 달랐을지 물으며 쓸쓸하게 웃었다. 샤르는 고작 1년이라는 시간의 차이가 서로의 길을 갈랐음을 인정하며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그러나 라팔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스스로 몸을 뒤로 뉘어 아득한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흩날리는 은붉은 실과 함께 눈보라 속으로 사라진 라팔의 흔적을 보며, 샤르는 가슴 속에 스며드는 허전함을 느낀 채 오랫동안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성채 밖으로 뛰쳐나온 앤과 루스르, 전사 요정들은 줄지어 선 기병들 앞에서 멈추어 섰다. 눈발 너머로 다우닝 백작이 말을 몰고 나타났고, 그 뒤로 살림과 함께 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앤은 황급히 두 팔을 벌려 뒤의 요정들을 감쌌다. 이 요정들은 날개를 빼앗겨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따랐을 뿐이고, 날개를 쥐고 위협한 것은 한 명뿐이라며 그 한 명만 토벌해야 한다고 앤이 외쳤다. 바로 그때 눈 속에서 상자를 안은 채 샤르가 천천히 걸어왔다. 앤은 눈을 헤치며 샤르에게 달려가 목에 매달리듯 안겼다. 샤르는 앤을 꼭 안아주었다.

 

 

루스르가 라팔이 어떻게 됐냐고 묻자 샤르는 누각에서 떨어졌다고 담담히 답했고, 루스르는 가엾은 분이라고 조용히 시선을 떨궜다. 샤르는 상자의 열쇠를 꺼내 루스르에게 건네며 안에 있는 날개를 되찾아 이제 정말로 자유로워지라고 말했다. 요정들은 차례로 상자에 손을 뻗어 자신의 날개를 찾아 들고 눈밭으로 흩어졌다. 루스르에게 요정왕이 되어 달라는 간청을 받은 샤르는 고개를 저으며, 자유를 되찾는 데 요정왕은 필요하지 않고 언젠가 다른 방법을 찾겠지만 지금은 각자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서 살라고 말했다.

 

 

샤르는 다우닝 백작 앞으로 걸어가 인간을 습격하던 요정은 자신이 처리했으므로 병력을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저 요정들은 주인 없는 자유로운 요정들이므로 사냥하지 말아 달라고, 만약 사냥하려 든다면 지켜보고 있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다우닝 백작은 잠시 샤르를 내려다보다 국왕과 백성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신하이므로 요정은 사냥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 말에 샤르는 고맙다고 미소 지었다.

 

 

상자 바닥에 홀로 남아 있던 작고 아름다운 날개를 앤이 집어 루스르에게 건네주었다. 루스르는 네가 예쁘다고 말해줘서야 처음으로 자기 날개가 예쁜 줄 알았다며 기뻐했다. 그리고 훌쩍 뛰어올라 전사 요정의 어깨에 올라타며 자신도 바다를 본 적 없으니 함께 보러 가자고 선언했다. 그것은 자유로워지면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고 했던 바로 그 전사 요정이었다. 요정은 어깨를 으쓱이며 그러자고 했고, 둘은 눈밭을 걷기 시작했다. 앤은 루스르의 수명이 1년 정도라는 것을 떠올리며 불안해했지만, 샤르는 설탕과자를 먹었으니 그만큼 수명이 늘었을 거라고, 루스르 엘 민은 바다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하얀 눈 속에서 수많은 발자국이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눈은 은설탕처럼 희게 세상을 뒤덮었다. 앤은 하이랜드 왕국의 모든 요정이 가고 싶은 길로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언젠가 곁에 있는 이 요정이 그들을 위한 길을 찾아줄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그때 자신이 그의 곁에 있어도 괜찮을까 하는 마음을 가슴 속에 품은 채 눈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6장 마지막 하나를]

 
 
 

하얗게 눈이 덮여 평평한 광장처럼 변해버린 홀리리프 성의 정원을 가로질러 앤과 샤르가 발걸음을 옮겼다. 눈을 치우지 않은 언덕길 때문에 마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온 두 사람은 숨을 몰아쉬며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앤이 홀이 떠나가라 다녀왔다는 인사를 외치자 고요하던 서관 쪽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미스릴이 가장 먼저 튀어나와 앤의 품에 안겼다. 미스릴은 두 사람이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줄 알았다며 울먹였고, 샤르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원망 섞인 투정을 부리다가도 이내 안도하며 눈물을 닦았다. 곧이어 왼쪽 눈에 가죽 안대를 한 올란드와 킹, 발렌타인, 나디르가 모습을 드러냈고 엘리엇은 평소처럼 부드러운 미소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작업장에서 나온 캣과 조나스 역시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도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으며, 뜻밖에도 마커스 공방에 있어야 할 키스까지 합류해 일을 돕고 있었다. 앤은 동료들의 환대 속에 성채에서의 불안했던 기억을 씻어내고 다시 일할 수 있다는 기쁨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엘리엇은 곧장 앤을 작업장 앞쪽의 보관실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앤의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눈 결정 탑 일곱 개를 비롯하여 크기별로 계획했던 모든 설탕 과자가 완벽하게 완성되어 늘어서 있었다. 은설탕 자작인 휴가 미리 승인까지 마쳤다는 말에 앤은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끼며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신성제까지 열흘이라는 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앤은 단순히 개수를 늘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는 이들이 깜짝 놀랄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더해 하이랜드 왕국에 더 큰 행복을 전해주고 싶다는 새로운 결심을 굳혔다.

 

 

다음 날 아침, 앤이 다시 작업에 뛰어들 준비를 하는 동안 샤르는 홀에서 미스릴과 가벼운 장난을 치며 여유를 찾았다. 앤이 작업장으로 떠나기 전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자 샤르는 짓궂은 농담으로 대답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성벽 아래로 추락했던 라팔의 생사와 그가 남긴 저주 같은 말들을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때 브리짓이 다가와 앤에게 빌렸던 숄을 돌려주며 말을 걸었다. 브리짓은 앤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주었던 초록 새 설탕 과자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음을 고백했고, 엘리엇과의 사랑 없는 약혼을 파기하는 대신 그가 아버지의 양자가 되어 공방을 잇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길임을 깨달았다고 털어놓았다. 샤르는 그런 그녀의 결단을 지지하며 격려를 건넸다.

 

 

작업장에 모인 장인들은 앤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란드는 유려한 손길로 은설탕 반죽을 빚어냈고, 킹은 섬세하게 색소를 배합하여 은은한 빛깔을 만들어냈다. 조나스가 얇게 펴낸 설탕 반죽을 엘리엇과 발렌타인이 정교하게 잘라내면, 앤과 키스가 조각칼로 비침무늬를 새겨 넣었다. 캣과 나디르는 가장 난도가 높은 끝부분 세공에 몰두했고 미스릴은 도구들을 챙기며 곁을 지켰다. 이들은 서로 고함을 치고 농담을 주고받으면서도 손만은 한시도 쉬지 않고 수많은 눈 수정을 완성해 나갔다.

 

 

작업 엿새째 되던 날, 앤과 엘리엇은 성 루이스턴 벨 교회를 찾아가 브룩 교부를 만났다. 엘리엇은 페이지 공방의 명예를 걸고 최고의 작품을 선보이겠다며 이례적으로 사흘간의 설치 기간을 요청했다. 교부는 기한 내에 과자를 완성해낸 그들의 성실함을 믿고 제안을 수락했다. 성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글렌의 방을 방문했다. 기운을 차리고 일어난 글렌은 엘리엇을 양자로 삼아 페이지 성을 잇게 하겠다고 선언했고, 브리짓 역시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며 두 사람의 약혼은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갈무리되었다. 앤은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직감하며 브리짓과 샤르를 포함한 공방의 모든 인원을 작은 홀로 소집했다. 앤은 요정들에게는 식사와 글렌의 보살핌을 부탁하고, 나머지 인원들에게는 교회에서의 마지막 현장 작업을 지시했다. 수장 대리로서 중앙에 선 엘리엇이 끝까지 방심하지 말라며 긴장감을 불어넣자, 모두의 눈빛이 신성제를 향한 마지막 열정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7장 새로운 모습]

 

루이스턴의 거리에 쌓인 눈이 햇볕에 녹아 반짝이던 날, 앤은 성 루이스턴 벨 교회에 들어서며 그 눈부심에 잠시 넋을 잃었다. 홀리리프 성에서부터 짐마차에 실어 온 수십 개의 설탕과자 탑들은 하나하나 나무 틀에 감싸인 채 조심스럽게 교회 안으로 옮겨졌다. 장인 다섯이 달라붙어 하루 세 번을 왕복한 끝에 해가 저물 무렵 모든 설탕과자가 도착했고, 장인들은 밖에서 감자 수프와 빵으로 허기를 달랜 뒤 곧장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촛불 아래에서 자정까지 과자들을 배치했다. 작업을 마친 장인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교부 대기실에서 서로 의지하며 잠이 들었으며, 앤은 브리짓과 함께 주교 대기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앤은 옆에서 곤히 잠든 브리짓에게서 나는 은은한 꽃향기를 맡으며 자신의 초라한 모습과 대조되는 그녀의 어른스러움을 부러워했다. 앤은 샤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다가, 그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라는 라팔의 말을 떠올리며 외로움에 휩싸였다.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한 앤은 설탕과자를 확인하려 홀로 본당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전설의 요정왕이 그려진 천장화를 올려다보던 샤르와 마주했다.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예배당 안에서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요정왕에 관한 전설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샤르는 앤이 인간으로서 행복해질 때까지 곁에서 지키겠다는 맹세를 강조하며 그녀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과 사랑하라고 말했다. 그 다정함이 오히려 앤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으나, 앤은 샤르가 맹세를 다 지킨 뒤에는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샤르는 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거운 의미의 영원을 맹세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마음을 쓸까 봐 차마 그 속내를 다 드러내지 못한 채 앤이 마지막 작업을 완성해 행복을 불러오기만을 바랐다.

 

 

다음 날 아침부터 장인들은 예배당 중앙에 세울 거대한 설탕과자 받침대를 설치하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작업을 시작했다. 앤과 엘리엇, 캣, 올란드는 각자 동서남북으로 자리를 잡고 수많은 눈 결정을 쌓아 올리며 온 신경을 손끝에 집중했다. 신성제의 밤과 똑같은 빛의 분위기를 확인하기 위해 브리짓이 배치한 촛불들 사이에서 작업은 밤낮없이 이어졌고, 앤은 이 설탕과자가 세상 모든 이에게 행복을 전해주기를 바라며 하늘에 닿을 듯 더 높이 결정을 쌓아 나갔다. 마침내 신성제의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지고 교회의 거대한 문이 활짝 열렸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촛불의 빛을 머금고 난반사하며 공간 전체를 지배하는 설탕과자의 장관에 압도당해 숨을 죽였다. 장인들이 공간의 빛까지 계산하여 배치한 설탕과자는 마치 환상적인 눈의 풍경과도 같았으며, 글렌 페이지는 제자들이 일궈낸 성취에 감동하여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축제의 열기가 가득한 밤, 앤은 홀로 뒤뜰에서 눈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이 만든 행복이 멀리 있는 이들에게도 닿기를 기도했다. 그때 뒤뜰로 찾아온 휴 머큐리는 페이지 공방의 성공을 축하하면서도, 앤이 은설탕사로서 자신만의 뚜렷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 어떤 미래를 택할 것인지 질문을 던졌다. 뒤이어 나타난 엘리엇 역시 페이지 공방은 앤이 성장하기에 좁은 곳일 수 있음을 조언하며,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면 언제든 떠나도 좋으며 이곳은 항상 그녀가 돌아올 자리가 되어주겠다고 격려했다. 앤은 따뜻한 안식처가 된 공방을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고, 샤르는 그런 그녀의 곁에 자신이 있겠다며 힘을 실어주었다. 그때 키스가 다가와 래드클리프 공방을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파벌에 얽매이지 않고 앤과 둘이서 새로운 설탕과자 공방을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과 함께 손을 내밀었다. 앤이 내밀어진 손을 바라보며 망설이는 순간, 새해를 축복하는 성 루이스턴 벨 교회의 종소리가 다시 한번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