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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발 작품

슈거 애플 페어리 테일 8권- 은설탕사와 재의 늑대 챕터 별 스토리 요약

by 미도착 원고함 서고지기 2026. 4. 18.

 

[1장 실버 웨스트르 성 회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루이스턴의 아침, 앤은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잠에서 깨어났다. 옆에서 들려오는 물방울 요정 미스릴 리드 포드의 숨소리에 안심하며 창문을 열자, 비둘기 떼가 날아오르고 상쾌한 봄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흑요석 요정 샤르 펜 샤르는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앤을 맞이했고, 곧이어 방문을 두드린 키스 파웰은 정성껏 준비한 아침 식사를 알리며 샤르의 침대를 구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앤은 키스의 다정한 배려를 고마워하면서도, 자신을 향한 그의 고백과 그 사실에 무덤덤해 보이는 샤르 사이에서 복잡한 마음을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키스가 마련한 새 공방의 식당에서 네 사람이 평화롭게 식사를 시작하려던 찰나, 누군가 가게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문을 열자마자 요란하게 쏟아져 들어온 이는 은설탕사 '캣' 알프 힝글리였다. 캣은 은설탕 자작 휴 머큐리가 보낸 심술궂은 편지를 내밀며, 왕실의 신기술을 익힌 앤과 키스에게 자신도 그 기술을 배우겠다며 막무가내로 신세를 지겠다고 선언했다. 소동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자작의 심부름꾼이 찾아와 앤과 키스, 그리고 캣에게까지 사흘 뒤 실버 웨스트르 성으로 오라는 소집장을 전달했다. 특히 앤의 소집장에는 샤르를 반드시 동행시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일행은 휴의 의도를 궁금해하며 성으로 향했다.

 

실버 웨스트르 성의 대연회장에는 각 파벌의 수장들과 장인장들이 모두 모여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다우닝 백작은 그 자리에서 왕가가 500년간 숨겨온 설탕과자 기술이 해금되었음을 선포하며, 이어지는 충격적인 왕명을 발표했다. 그것은 바로 요정을 견습생으로 받아들여 정식 설탕과자 장인으로 육성하라는 명령이었다. 전통을 중시하던 장인들은 경악했지만, 휴 머큐리는 왕명을 앞세워 각 파벌에 신규 견습생의 절반을 요정으로 채울 것을 단호하게 요구했다.

 

휴는 요정들을 모으고 교육하는 주축으로 앤과 키스, 그리고 캣을 지목했다. 장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한 캣은 크게 반발했으나, 휴는 거부할 경우 설탕과자 장인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무자비한 협박으로 그를 굴복시켰다. 앤은 갑작스럽게 맡겨진 중책에 당황하면서도, 요정을 도구로 보지 않고 진정한 장인으로 키우려는 이 계획의 무게를 실감했다. 회의가 끝난 후, 휴의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샤르는 인간들이 요정을 '만든다'는 표현을 쓰는 것에 씁쓸한 공허함을 느끼면서도, 환한 미소를 띠며 들어오는 앤의 모습에서 묘한 희망을 발견하며 그녀를 맞이했다.

 

[2장 관을 나르는 늑대]

 

휴의 방으로 안내받은 앤은 이미 그곳에 와 있던 샤르와 미스릴을 발견했다. 샤르는 무심한 태도로 창밖을 보고 있었고, 그의 정체를 모르는 미스릴은 자신들의 활동력을 인정받은 것이라며 으스댔으나 앤은 휴가 요정왕인 샤르의 지위와 힘을 이용해 요정 장인을 육성하려는 계획임을 직감했다. 곧이어 휴가 호위병 살림을 대동하고 나타나 앤과 키스, 캣 세 사람에게 설탕과자 장인의 재능이 있는 요정을 찾아 모으고 기초 교육을 실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키스는 예산 문제를 지적하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물었으나, 휴는 요정 상인 길드의 대표인 레지널드 스토와 협상하여 요정을 무상으로 빌리거나 싼값에 양도받을 계획임을 밝혔다. 늑대라는 별명을 가진 스토는 얼굴조차 알려지지 않은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고, 샤르는 요정 상인들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휴는 거칠게 반항하는 캣을 보좌역으로 임명하며 그의 실무적인 능력을 자극했고, 캣은 투덜거리면서도 숙식 시설 확보와 인력 배치 등 구체적인 운영 계획을 쏟아내며 자신의 명석함을 증명했다.

 

일주일 동안 루이스턴에서 레지널드 스토의 행방을 쫓던 앤과 키스는 별다른 소득 없이 요정 시장을 헤매며 지쳐갔다. 캣은 공방에 틀어박혀 왕국 전역의 요정 시장 규모를 조사하며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몰두했다. 어느 날 저녁, 녹초가 되어 돌아온 앤을 달래기 위해 키스는 질 나쁜 은설탕의 품질을 높이는 실험을 제안했다. 두 사람은 작업실에서 뜨거운 김을 이용해 은설탕을 정제하며 과거의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렸고, 앤은 다정한 키스를 보며 그와 가족 같은 관계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키스가 앤의 손을 잡으며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 기다리겠다고 말하던 찰나, 산책에서 돌아온 샤르가 그 장면을 목격했다. 샤르는 굳은 표정으로 다가와 요정 상인들 사이에서 정보를 캐내 레지널드 스토가 관을 실은 마차를 타고 노던블로로 향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샤르는 앤의 손을 거칠게 잡아끌어 침실로 데려갔다. 앤은 샤르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키스와 가족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전했으나, 샤르는 요정은 홀로 태어나는 존재이기에 인간이 말하는 가족의 의미를 모른다며 차갑게 선을 그었다. 그는 앤이 바라는 행복은 키스에게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그녀의 마음을 외면한 채 방을 나갔다. 뒷마당에서 샤르를 불러세운 키스는 앤을 사랑하느냐고 물었지만, 샤르는 자신의 감정을 죽인 채 그것이 앤의 행복이라며 키스에게 그녀를 양보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홀로 밤거리에 나선 샤르는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며 살기를 내뿜는 것을 느꼈고, 인간 왕의 서약 뒤에 숨겨진 위협을 경계했다.

 

다음 날 아침, 휴의 전갈을 받은 살림이 공방을 찾아와 일행에게 노던블로행을 통보했다. 휴는 앤과 키스, 캣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기 위해 그들을 협상 자리에 동행시키기로 결정했다. 일행을 태운 마차는 황량한 길름 주로 향하며 사흘 밤낮을 달렸다. 마차 안에서 휴는 요정 장인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인간 장인들의 거센 반발을 전했고, 앤은 페이지 공방의 요정 노아가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에 힘을 얻으면서도 장인들의 인식을 바꿀 방법을 고민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야영을 하던 중, 샤르와 살림은 모닥불 가에서 서로가 소중한 대상을 지키는 그림자 같은 존재임을 확인하며 기묘한 유대감을 느꼈다.

 

주변을 살피러 어둠 속으로 나갔던 샤르는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았다. 정체불명의 검은 인영이 살기를 뿜으며 검을 휘둘렀고, 샤르는 즉시 백은의 검을 형상화하여 맞서 싸웠다. 짧고 치열한 공방 끝에 습격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샤르는 소리도 기척도 없이 땅에서 솟아난 듯한 적의 정체에 의문을 품었다. 마차로 돌아온 앤은 샤르와의 소원해진 관계 때문에 괴로워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미스릴은 답답한 상황을 해결해주겠다며 호언장담했고, 앤은 자신의 이기심과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은설탕사로서 마주한 이 운명에서 도망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무거운 잠에 빠져들었다.

 

[3장 잠든 요정의 가치]

 

루이스턴을 떠난 지 나흘째 되는 날 아침, 앤 일행은 바위투성이 황야에 자리 잡은 투박한 마을 노던블로에 도착했다. 일행은 마을 중심부의 견고한 여관에 짐을 풀었고, 휴는 도착하자마자 은설탕 자작의 예복으로 갈아입으며 자신의 지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캣은 그런 휴를 아첨꾼이라며 비웃었지만, 휴는 레지널드 스토를 찾는다는 소문을 퍼뜨려 그를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별한 산업 없이 요정 시장과 사냥꾼들에 의지해 살아가는 노던블로 주민들에게 은설탕 자작이 내건 사례금은 충분히 매력적인 미끼였다.

 

점심 식사를 마친 오후 무렵, 상인 차림의 남자가 식당으로 들어와 휴에게 다가왔다. 남자는 레지널드 스토가 은설탕 자작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과 함께 그가 있는 장소가 적힌 쪽지를 건넸다. 레지널드가 스스로 자기 정보를 팔아넘겼다는 사실에 일행은 의아해했으나, 휴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그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서기로 했다. 요정 상인 길드의 대표이자 '늑대'라 불리는 레지널드 스토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었기에, 그가 직접 초대를 보낸 것은 분명 예사롭지 않은 의도가 숨겨져 있음을 시사했다.

 

해가 저물고 일곱 번째 교회 종소리가 울릴 무렵, 앤 일행은 마을 외곽의 버려진 교회에 도착했다. 황폐한 교회 안 제단 위에는 신의 표식 대신 새까맣게 칠해진 거대한 관이 놓여 있었고, 그 주위를 촛불들이 섬뜩하게 밝히고 있었다. 관 위에 앉아 있던 회색 머리의 남자 레지널드 스토는 휴에게 정보 제공료를 요구하며 낮고 깊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샤르의 가치를 단번에 알아보고 상품으로서 탐내는 무례함을 보였으나, 휴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며 본론을 재촉했다.

 

레지널드는 제단 위의 관 뚜껑을 거칠게 밀어 열어젖히며 그 안에 든 상품을 공개했다. 관 속에는 하얀 비단에 둘러싸인 채 잠든 아름다운 요정이 누워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샤르의 형제석 요정 라팔 펜 라팔이었다. 죽은 듯 잠든 라팔의 모습에 샤르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를 터뜨리며 은빛 광채를 내뿜었지만, 앤이 필사적으로 그를 껴안으며 만류했다. 앤은 인간의 추악한 행동에 대신 사죄하며 눈물을 흘렸고, 그녀의 진심 어린 슬픔을 느낀 샤르는 간신히 살의를 거두었다.

 

레지널드는 라팔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3만 크레스라는 거액과 요정 상인들에게 적용되는 세율을 25%에서 10%로 낮춰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왕가가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라팔을 다른 구매자에게 팔아넘기겠다고 협박하며 휴를 압박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휴는 다우닝 백작을 노던블로로 부르기로 결정했다. 휴와 캣이 편지를 쓰기 위해 여관으로 돌아가는 동안, 앤과 키스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교회에 남아 레지널드와 직접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샤르와 살림이 관을 지키는 사이, 키스는 앤을 향한 자신의 복잡한 감정과 샤르의 태도 사이에서 고뇌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편, 밀려오는 충격과 분노로 어지러움을 느끼던 앤은 샤르와 함께 잠시 바깥바람을 쐬러 나갔다. 세찬 바람이 부는 참나무 아래에서 샤르의 묵묵한 위로를 받으며 안정을 찾던 앤은 문득 교회 지붕 위에서 자신들을 지켜보는 낯선 요정의 그림자를 목격했다. 순식간에 사라진 그림자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앤은 곧 마주해야 할 레지널드와의 협상을 위해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다시 교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4장 앤과 늑대]

 

앤과 키스는 결연한 의지를 품고 레지널드가 머무는 방으로 향했다. 어둡고 서늘한 복도를 지나 도착한 방 안에는 굵은 촛불 두 개가 일렁이고 있었고, 요정 상인 길드의 우두머리인 레지널드가 한 노인과 마주 앉아 무디게 빛나는 나이프를 테이블에 박았다가 뽑는 기행을 반복하고 있었다. 키스는 은설탕 자작의 대리인으로서 왕명을 근거로 요정 수습 제도에 협력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으나, 레지널드는 왕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일개 장인이 아닌 격이 높은 은설탕사가 직접 협상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결국 키스는 경호원들에 의해 강제로 방 밖으로 끌려 나갔고, 앤은 목덜미를 스치는 차가운 칼날과 레지널드의 위압적인 기운 속에 홀로 남겨졌다. 마치 굶주린 늑대와 한 방에 갇힌 듯한 공포가 덮쳐왔지만, 앤은 어머니 에마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애써 두려움을 억눌렀고 술을 따르라는 레지널드의 희롱 섞인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며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레지널드는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주던 요정이 돈을 훔쳐 달아나려 했던 과거를 들먹이며, 자신은 인간과 요정 모두를 혐오하며 오직 돈과 힘만을 믿는다고 냉소적으로 뱉어냈다. 그는 장인들이 믿는 설탕과자의 행운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 증명해 보라며 앤에게 설탕과자를 만들 것을 명령했다. 앤은 열악한 환경과 조롱 섞인 시선 속에서도 밤을 지새우며 온 힘을 다해 은설탕을 반죽했다. 레지널드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배신자 요정의 외형 대신, 앤은 그 요정이 가졌던 옅은 분홍빛 날개의 색채에서 느껴지는 다정함과 희망을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정교하게 뽑아낸 은설탕 실로 머리카락을 엮고 비칠 듯 얇은 날개를 빚어내며, 앤은 보이지 않는 행운이 마음을 지켜주는 희망이 된다는 자신의 신념을 작품에 투영했다.

 

새벽녘에 완성된 부드럽고 다정한 요정 설탕과자를 보고도 레지널드는 그 가치를 비웃으며 끝내 협상을 거절했다. 그는 앤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며 설탕 덩어리가 운명을 바꿀 수 있느냐고 몰아붙였지만, 앤은 비록 특효약은 아닐지라도 절망 속에서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행복의 맛이라며 맞섰다. 협상은 처참한 패배로 끝났고 레지널드는 그저 하룻밤의 심심풀이로 앤을 이용했을 뿐이었지만, 앤은 돌아서기 전 그에게 설탕과자를 건네며 당신의 생애 첫 설탕과자가 언젠가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을 가져다주길 바란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방을 나왔다.

 

그 시각, 예배당에서 라팔의 관을 지키던 샤르는 묘한 위질감을 느끼고 잠든 라팔의 옷안을 살피다 위에서 두 번째 안단추에 박힌 정교한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다. 그것은 샤르의 기억 속에 있는 형제석과 일치했으나, 이미 에너지가 소실되어 속이 텅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샤르는 또 다른 요정이 이미 그 돌에서 태어났음을 직감하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고, 경호원들이 그 다이아몬드를 레지널드에게 바치겠다며 가져가는 것을 묵인했다. 밤샘 협상을 마치고 돌아온 앤이 실패의 소식을 전하며 사과하려 하자, 샤르는 포기했을 때나 사과를 하는 것이라며 그녀를 독려해 마차로 보내 쉬게 했다.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식사를 하기 위해 잠시 교회 밖으로 나온 샤르의 뒤로 살림이 조용히 뒤따라왔다. 고양잇과 짐승처럼 신중한 발걸음으로 다가오던 살림은 돌연 공기를 가르는 서늘한 살기를 뿜어내며 은빛 칼날로 샤르를 습격했다. 샤르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어깨를 스치는 치명상을 피하며 상대를 마주했다. 무표정한 얼굴 뒤에 지독한 살의를 숨기고 있던 살림은 이전 루이스턴과 웰놈 가도에서 자신을 습격했던 자와 동일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는 감정의 동요 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자작이 돌아오기 전에 샤르를 죽여 없애겠다는 선전포고를 던지며 검을 겨누었다.

 

[5장 백작의 결단, 자작의 결단]

 

언덕 위에 자리한 교회 뜰은 바람의 길목이었다. 나뭇잎 스치는 소리만 가득한 적막 속에서 샤르는 오른손바닥을 펴고 정신을 집중했다. 주위에서 반짝이는 백은의 입자들이 모여들어 검의 형태로 응축되자 샤르는 그것이 은설탕 자작의 명령인지 살림에게 물었다. 살림은 자작의 명령이 아니라 그분의 입장을 지키기 위함이라 답하며 담담히 검을 겨눴다. 샤르는 진심으로 달려드는 상대에게 망설임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며 싸움을 즐기는 요정의 본능에 몸을 맡겼다. 샤르는 땅을 짚은 왼손을 용수철 삼아 낮은 자세로 돌진했고 살림은 그의 칼날을 튕겨 올리며 팽팽하게 맞섰다. 두 사람의 검이 맞부딪치며 쇠붙이가 갈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때, 정적을 깨고 거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은설탕 자작 휴 머큐리가 뜰 안으로 돌진해 왔다.

 

휴는 말에서 뛰어내려 살림과 샤르를 꾸짖으며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마차에서 내린 앤과 캣, 키스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살림은 다우닝 백작의 명령에 따라 위험한 요정인 샤르를 제거하려 했다고 고백했다. 백작은 국왕 폐하께 책임을 추궁당하기 전에 샤르를 처리하여 휴의 입장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 샤르는 인간들이 원하는 것이 결국 은설탕 요정이라는 특수한 능력을 지닌 노예일 뿐이라는 사실에 실소했다. 앤은 샤르를 지키기 위해 그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고, 휴는 살림에게 자신의 명령 외에는 복종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휴는 자신이 은설탕 요정을 키우려는 이유가 왕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설탕과자가 진정한 가치를 갖게 하기 위함이라는 신념을 드러냈다.

 

잠시 후 다우닝 백작이 기마병들을 거느리고 마차에서 내렸다. 백작은 교회 안에서 요정 상인 길드 대표인 레지널드 스토를 불러내 협상을 시작했다. 레지널드는 라팔을 미끼로 삼만 크레스의 대금과 요정 상인에 대한 세율 인하를 요구하며 왕가를 협박했다. 그는 요정 상인 길드를 해산하고 암시장으로 숨어버리겠다는 강수를 두며 다우닝 백작을 압박했다. 백작은 제안을 검토할 시간을 달라며 일단 물러났고, 일행은 노던블로의 여관으로 돌아갔다. 여관에서 휴식을 취하던 앤은 다우닝 백작의 부름을 받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백작은 앤에게 자신의 아들을 전쟁으로 잃었던 과거를 이야기하며, 요정왕인 샤르가 존재 자체로 왕국에 내란을 일으킬 위험 요소라고 주장했다. 그는 나라를 위해 샤르를 죽이라고 앤에게 종용했다.

 

 

앤은 샤르가 결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며 백작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이때 나타난 휴는 타인을 자신의 신념에 이용하지 말라며 백작에게 항의했다. 그러나 백작은 스토와 그 일당을 습격해 입막음으로 모두 죽이겠다는 잔인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휴는 백작의 독단을 막을 수 없음을 깨닫고 어두운 복도에서 앤에게 은밀히 지도를 건넸다. 그는 앤에게 샤르와 함께 즉시 교회로 가서 스토 일행을 도망치게 하라고 명령했다. 후견인의 뜻을 거스르는 대가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을 알면서도, 휴는 협상 상대를 지키는 것이 은설탕 자작의 의무라며 앤의 등을 떠밀었다. 앤은 눈물을 흘리며 캣과 키스에게 휴를 부탁한 뒤 샤르와 함께 교회로 말을 달렸다.

 

교회에 도착한 앤과 샤르는 레지널드 스토에게 백작의 습격 계획을 알렸다. 레지널드는 처음에는 앤의 말을 의심했으나, 은설탕 자작의 신념과 샤르의 서슬 퍼런 경고를 듣고 마침내 움직이기로 했다. 요정 상인들이 서둘러 라팔의 관을 짐마차에 싣고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 앤은 교회 안에서 정성껏 만든 요정 설탕과자를 가져와 짐칸에 실었다. 바로 그때, 정원에 휘몰아치듯 강력한 바람이 불어왔고 모두가 눈을 가린 사이 소년의 모습을 한 요정 하나가 홀연히 나타났다. 하얀 은빛 머리카락과 은빛 눈동자를 지닌 그 아름다운 요정은 샤르를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샤르는 그 소년이 풍기는 강렬한 다이아몬드의 기운을 느끼며, 그가 자신과 같은 기원을 가진 형제석임을 직감했다.

 

[6장 도주]

 

샤르는 눈앞에 나타난 소년 요정을 보는 순간 그가 자신과 라팔의 형제석인 다이아몬드에서 태어난 존재임을 직감했다. 유리구슬처럼 맑지만 멍한 기색이 도는 목소리로 방해하지 말라고 경고한 소년 요정은 레지널드의 경호원들이 칼을 뽑아 들고 포위망을 좁혀오자 양손에 빛의 입자를 모아 가는 쌍검을 형상화했다. 경호원 중 한 명이 등 뒤에서 기습적으로 칼을 내리쳤으나 소년 요정은 부드럽게 몸을 회전하며 일격을 피했고, 찰나의 순간 풍차 날개처럼 휘두른 칼날로 경호원의 옆구리를 갈라버렸다. 샤르는 그 압도적인 속도에 위기감을 느끼며 앤을 지키기 위해 소년 요정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샤르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소년 요정은 에릴 펜 에릴이라는 이름을 말하며 라팔을 따라왔을 뿐이라고 몽롱하게 대답했다. 에릴이 라팔을 데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사이 또 다른 경호원이 그를 공격하려 했으나, 갑작스럽게 정원을 에워싸며 나타난 복면의 기병들로 인해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도적으로 위장한 병사들의 돌진에 샤르는 레지널드에게 고함을 쳐 마부석으로 올리고 앤을 짐칸에 실은 뒤 전속력으로 짐마차를 몰아 정원을 탈출했다. 뒤쫓아온 병사가 마부석 옆까지 접근해 검을 휘둘렀고, 이를 나이프로 막으려던 레지널드는 옆구리에 깊은 자상을 입고 쓰러졌다. 샤르는 한 손으로 고삐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 검을 소환해 추격자를 베어 넘긴 뒤 피를 흘리는 레지널드를 데리고 어둠 속으로 달아났다.

 

 

한편 숙소에서는 앤과 샤르의 도주를 도운 키스와 캣이 은설탕 자작 휴 머큐리의 방으로 향했다. 휴는 다우닝 백작의 분노를 사서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임에도 허브차를 마시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캣은 휴의 멱살을 잡으며 왜 이런 위험한 일을 벌였느냐고 따졌으나, 휴는 은설탕 요정을 육성하기 위해 요정 상인과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했음을 역설했다. 휴는 자신이 은설탕 자작이라는 지위를 선택한 이유가 과거 설탕과자를 좋아했던 고인이 된 여동생 때문이었음을 고백하며, 설탕과자의 미래를 위해 캣과 키스에게 뒤를 부탁한다는 유언 같은 말을 남겼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키스는 앤이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머릿속으로 모든 가능성을 조합했고, 전임 은설탕 자작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배경을 이용해 상황을 타개할 도박을 제안했다. 휴는 키스의 결연한 태도에 미소 지으며 한 통의 편지를 써주었고, 키스는 그 신서를 품에 안은 채 홀로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시각 샤르가 운전하는 마차는 휴가 일러준 대로 황량한 땅 발크람에 도착했다. 레지널드는 출혈 과다로 의식이 혼미해진 채 자신의 과거와 요정 에이미에 대한 파편적인 기억을 중얼거렸다. 마을 입구에서 의사의 상징이 조각된 집을 발견한 앤은 절박하게 문을 두드려 흰 수염의 노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레지널드의 상처를 봉합하며 오늘 밤이 고비라고 말했고, 앤은 그가 깨어나길 빌며 자신이 만든 요정 설탕과자를 베개 옆에 놓아두었다. 노의사는 그 설탕과자를 보고 과거 자신이 데리고 있던 쓸모없지만 아이들을 잘 달랬던 요정 에이미와 똑 닮았다며 놀라워했다. 앤은 레지널드가 배신당했다고 믿었던 요정의 진실을 어렴풋이 깨달으며 복잡한 심경에 빠졌다.

 

같은 시간 노던블로의 숙소에서는 다우닝 백작이 보낸 병사들이 휴를 찾아왔다. 휴는 살림과 캣을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분노로 가득 찬 다우닝 백작과 대면했다. 백작은 휴가 스토를 도망치게 한 사실을 추궁하며 채찍을 휘둘러 그의 어깨와 뺨을 내리쳤다. 살림이 나서려 했으나 휴는 이를 제지했고, 캣은 휴의 곁에 서서 그가 국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은설탕 자작임을 강조하며 함부로 대우하지 말라고 맞섰다. 백작은 캣이 과거 은설탕 자작 후보였음을 기억해 내고는 캣의 논리를 받아들여 포박은 하지 않겠으나 후견인으로서의 징벌은 계속하겠다며 휴에게 연달아 채찍질을 가했다. 휴는 살점이 패고 피가 흐르는 고통 속에서도 앤과 스토가 안전하기만을 바라며 묵묵히 매를 견뎌냈다.

 

사흘 뒤 발크람의 의사 집에서 레지널드는 기적적으로 기력을 회복했다. 앤은 휴가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위태로운 처지에 놓였을 것을 걱정하며 노던블로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했다. 샤르는 앤이 혼자 위험한 곳으로 가려 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그녀를 지키겠다는 맹세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며 동행을 선언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헛간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정원을 포위하는 수많은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길름 주의 병력까지 동원한 다우닝 백작이 군대를 이끌고 의사의 집을 겹겹이 에워싼 것이었다. 백작은 마차에서 내려 레지널드 스토의 인도를 요구했고, 그 뒤로 채찍 자국이 선명한 휴가 살림의 부축을 받으며 캣과 함께 나타났다. 백작은 스토가 협상을 파기했으므로 요정의 관을 강제로 회수하겠다고 선언하며 앤과 휴를 반역죄로 몰아세웠다.

 

샤르는 멸망해가는 나라의 법 따위는 상관없다며 은빛 검을 소환해 백작과 대치했고, 살림 역시 휴를 지키기 위해 검을 뽑아 들었다. 앤은 피비린내 나는 참극을 막기 위해 샤르의 팔을 붙들고 만류하며 병사들의 앞을 맨몸으로 가로막았다. 앤은 다우닝 백작 역시 나라의 안정을 위해 잔혹해진 것뿐임을 간파하고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처절하게 외쳤다. 백작이 공격 명령을 내리려던 일촉즉발의 순간, 마차 한 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정원 한복판으로 거칠게 돌진해 들어왔다. 마부석에서 일어선 키스 파웰은 국왕의 칙령이 내려졌음을 선포하며 모두에게 멈출 것을 명했고, 그 위풍당당한 외침에 정원의 모든 살기와 소란이 일시에 멈추었다.

 

[7장 늙은 사자와 초대받은 행복]

 

다우닝 백작이 분노 섞인 기세로 한 걸음 내디디려던 찰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키스가 앞을 가로막으며 국왕의 칙명이 담긴 양피지를 높이 치켜들었다. 키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재상 콜레트 공작과 재무 대신 바이곳 백작이 요정 상인 길드와의 협상을 승인했음을 선포했고, 길드 대표 레지널드 스토를 요정의 관과 함께 왕성으로 알현시키라는 엄중한 명령을 전했다. 정원 한복판에서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앤은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멍하니 서 있었고, 다우닝 백작은 키스의 손에서 양피지를 낚아채듯 가져가 읽더니 이내 안색이 창백해졌다. 휴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백작에게 다가가, 국왕 폐하께 백작의 방침과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을 상세히 보고했음을 밝혔다. 국왕은 다우닝 백작의 독단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라는 명과 함께 개인적인 서신을 보냈고, 백작은 휴가 결국 큰 도박에서 승리했음을 직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전 은설탕 자작의 아들이었던 키스는 왕성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었기에 국왕과의 알현이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국왕 에드먼드 2세는 백작의 과잉 보호 아래 머물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길을 택한 것이었다.

 

다우닝 백작은 떨리는 손으로 국왕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다 이내 눈을 질끈 감고 어깨를 축 늘어뜨렸는데, 그의 손에서 미끄러진 편지에는 평생 자신을 지켜준 노신을 향한 국왕의 깊은 신뢰와 이제는 국왕으로서 스스로 결단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앤은 발치에 떨어진 편지를 주워 백작에게 건네며 폐하의 진심이 담긴 글이니 소중히 간직해달라고 부탁했다. 백작은 자신이 더 이상 국왕의 곁을 지킬 자격이 없는 늙은 사자임을 인정하며, 과거 내전의 끔찍한 고통을 다시 겪을까 두려워 변화를 거부했던 자신의 나약함을 돌아보았다. 그는 후견인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밝히고는 마지막 명령으로 요정 상인 길드와의 협상을 진행하라고 지시한 뒤 병사들을 이끌고 떠났다. 앤은 멀어져 가는 백작의 등 뒤로 그만을 위한 행복을 담은 설탕과자를 만들겠다고 간절히 약속하며, 평생 왕국을 수호해 온 노신의 고단했던 마음에 평안이 깃들기를 빌었다.

 

다우닝 백작이 철수한 뒤 일행은 마을 의사의 집에 머물며 부상을 치료하고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휴는 레지널드와 협상을 진행하려 했으나, 레지널드는 갖가지 핑계를 대며 병실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길드에서 마중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앤은 레지널드의 식사를 챙겨주며 그에게 다가가 이 집에 살았던 요정 에이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과거에 서툴지만 아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봤던 에이미가 자신이 아끼던 소년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팔아 돈을 마련했던 희생과, 그 소년이 바로 레지널드였음을 암시하는 대화가 오갔다. 앤이 만든 설탕과자 요정을 보며 레지널드는 오랫동안 부정해 왔던 에이미의 눈동자가 봄 하늘처럼 푸른색이었음을 끝내 기억해 냈고, 그녀의 무덤이 정원 한구석에 소박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깊은 상념에 빠졌다. 앤은 설탕과자가 전하는 행복이 당신에게도 닿기를 바란다고 전했고, 레지널드는 앤의 진심에 마음을 움직여 결국 협상이라는 형식을 생략한 채 장인들의 각오를 받아들여 의뢰를 수락하겠다고 선언했다.

 

왕도 루이스턴으로 출발하기 전, 샤르는 짐마차를 준비하던 중 키스로부터 예상치 못한 선전포고를 받았다. 키스는 앤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진심임을 밝히며 정정당당하게 그녀의 사랑을 얻겠다고 다짐했고, 샤르에게 앤을 위해 억지로 차갑게 대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샤르는 백 년 넘게 살아온 자신보다도 사랑 앞에서 당당한 열아홉 청년의 성장을 지켜보며 묘한 경외감과 즐거움을 느꼈고, 운명이 이끄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겠다고 약속하며 소리 죽여 웃었다. 레지널드 스토가 길드의 마차에 몸을 싣고 왕성으로 향하자 휴와 앤 일행도 그 뒤를 따라 루이스턴으로 복귀했다. 앤은 떠나기 전 레지널드의 부탁대로 에이미의 돌무덤 위에 분홍빛 꽃 한 송이를 바치며 그녀의 영혼을 위로했다.

 

루이스턴의 공방으로 돌아온 날 저녁, 일행은 벤자민과 미스릴이 준비한 풍성한 음식을 나누며 오랜만의 평화를 만끽했다. 샤르는 방 안 창가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보며 은빛 머리카락을 가진 요정 에릴의 행방과 인간 왕 에드먼드 2세가 만들어갈 미래를 생각했다. 앤이 다가와 샤르의 곁에 서자 샤르는 앤의 뺨을 어루만지며 그녀가 장인으로서 나아가는 길이 자신의 종착지와 같을 것임을 예감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는데, 한밤중에 살림이 다급하게 말을 달려 공방으로 찾아왔다. 살림은 왕성 깊숙한 곳에 보관되어 있던 라팔의 관에 에릴이 침입했으며, 잠에서 깨어난 라팔이 그와 함께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고요한 봄밤의 대기 속에 차가운 긴장감이 감돌았고, 샤르는 불안해하는 앤의 손을 꽉 맞잡으며 깨어난 라팔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다시금 시작되었음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