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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발 작품

슈거 애플 페어리 테일 11권- 은설탕사와 금고치 챕터 별 스토리 요약

by 미도착 원고함 서고지기 2026. 4. 29.

 

[1장 눈뜸과 경악]

 

하늘에 불길한 분홍빛 구름이 깔린 옅은 황혼 속에서 샤르는 품에 안은 앤의 뺨에 손을 얹고 연인의 증표로 입을 맞췄다. 앤은 만족한 듯 눈을 감았으나 대답은 없었고, 실처럼 가늘어진 숨결 속에 흘러나온 피만이 샤르의 무릎을 적셨다. 샤르는 절망하며 비명을 지르고 싶은 격정을 억눌렀다. 그때 은빛 머리칼의 요정 에릴 펜 에릴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샤르는 라팔과 한패인 에릴을 향해 짐승처럼 으르렁거렸지만, 에릴은 눈물을 글썽이며 앤을 살릴 수 있다고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샤르는 한 가닥 희망에 매달리는 심정으로 앤을 맡겼다. 에릴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은빛 입자들이 앤의 몸에 스며들자 상처가 씻은 듯이 아물고 거칠던 숨소리가 평온하게 바뀌었다. 에릴은 자신에게 사라져 가는 목숨을 붙들고 몸을 수복하는 능력이 있다고 설명한 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숲속으로 사라졌다. 샤르는 안도와 허탈함 속에 앤을 안아 들고 루이스턴의 공방으로 향했다.

 

앤은 따스한 행복감 속에서 헤매다 자신을 부르는 서늘하고 달콤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열흘 만에 깨어난 앤은 루이스턴 공방 침대에 누워 있었고, 곁에는 걱정스러운 눈빛의 샤르가 있었다. 앤은 라팔의 공격을 떠올리며 공포에 질려 몸을 떨었지만, 샤르가 그녀의 어깨를 꽉 쥐며 진정시켰다. 앤은 자신의 배를 만져보고 상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실에 경악했다. 샤르는 에릴이 그녀를 구했다고 알려주며 일어나는 앤에게 당연하다는 듯 입을 맞췄다. 앤은 자신이 샤르의 연인이 되었음을 실감하며 부끄러움과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곧이어 미스릴 리드 포드가 방으로 뛰어 들어와 앤의 품에 안기며 무사함을 기뻐했다. 앤은 미스릴의 따뜻한 날개를 만지며 안도했지만, 미스릴은 자신의 고유 능력인 물을 만드는 힘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충격에 빠졌다. 에릴의 치유 능력이 목숨을 잇는 대가로 요정의 능력을 앗아간다는 라팔의 말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었다. 앤은 인간인 자신도 무언가 잃어버린 게 아닐까 불안해했으나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는 못했다.

 

이후 키스와 캣, 벤자민이 공방으로 달려와 앤의 생존을 축하했다. 캣은 앤에게 휴의 의뢰였던 설탕사과 작황 조사 결과를 가져오라고 퉁명스럽게 독촉했고, 앤은 뒷마당 마차 짐칸에서 서류를 챙겨 전달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앤은 자신을 구해준 에릴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 설탕과자를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했다. 그 시각, 에릴은 라팔과 함께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최초의 설탕사과 나무’가 있는 신비로운 숲에 머물고 있었다. 에릴은 앤의 목숨을 구하는 대가로 그녀의 소중한 것을 빼앗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며 거대한 나무 아래 앉아 정적을 즐겼다. 하지만 라팔은 이곳을 거점으로 요정왕국의 부활을 위한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때 두 사람 앞에 은회색 머리카락과 날개를 가진 낯선 요정이 나타났다. 붉은 눈의 요정은 에릴과 라팔을 향해 리제르바를 언급하며 불완전한 요정왕들이라고 비웃었다. 라팔이 검을 겨누며 정체를 묻자 요정은 당당하게 이름을 밝히려다, 돌연 자신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를 지켜보던 라팔은 어이없다는 듯 지친 목소리를 냈다.

 

[2장 처음부터, 몇 번이고]

 

오랜만에 먹은 포타주 덕분에 깊은 잠에 빠졌던 앤은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은설탕을 만지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눈을 떴다. 희미한 달빛이 은설탕의 광채처럼 바닥에 흐르는 것을 본 그녀는 잠든 샤르와 미스릴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방을 나서 작업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뜻밖에도 키스가 홀로 남아 은설탕을 반죽하고 있었다. 키스는 앤의 회복을 축하하며 그녀에게 다시 한번 진심 어린 고백을 전하려 준비 중이었으나, 앤은 미안함이 앞선 표정으로 자신이 샤르와 연인이 되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키스는 잠시 쓸쓸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이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앤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고,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오히려 앤을 따뜻하게 위로했다.

 

마음을 다잡은 앤은 키스와 나란히 서서 다시 설탕과자를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은설탕에 물을 섞는 순간 앤은 자신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동작을 멈추고 말았다. 물과 은설탕이 제대로 섞이지 않고 겉돌며 얼룩덜룩해지는 모습은 마치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의 서툰 손놀림과 같았다. 당황한 앤이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고, 그녀는 에릴이 자신의 목숨을 이어준 대가로 설탕과자를 만드는 감각을 가져갔음을 깨달았다. 키스가 다급히 샤르와 미스릴, 그리고 캣과 휴 머큐리를 불러와 상태를 확인했으나, 은설탕 자작인 휴조차 앤의 손이 견습생의 수준으로 돌아갔음을 냉정하게 확인해 주었다. 절망에 휩싸인 앤은 비명을 지르듯 작업장을 뛰쳐나가 방으로 돌아가 오열했다.

 

방으로 뒤따라온 샤르는 절망하며 목숨 따위 필요 없다고 울부짖는 앤의 뺨을 때려 진정시킨 뒤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샤르는 요정의 능력이 태어날 때부터 가진 날개와 같다면 인간의 기술은 나중에 지어 입는 드레스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날개는 잃으면 끝이지만 드레스는 잃어버려도 처음부터 몇 번이고 다시 만들어 입으면 된다는 그의 말은 앤의 가슴에 새로운 희망의 빛을 던져주었다. 앤은 비록 지금은 갓난아기처럼 벌거숭이가 된 기분이지만, 잃어버린 감각을 처음부터 다시 갈고닦아 되찾겠다고 결심하며 눈물을 닦아냈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자리에서 앤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홀리리프 성의 업무를 쉬고 견습생으로 돌아가 수련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휴와 캣은 그녀의 끈질긴 근성에 감탄하며 체계적인 교육 환경을 갖춘 페이지 공방으로 갈 것을 제안했다. 앤은 즉시 엘리엇 코린즈에게 편지를 보냈고, 당장 돌아오라는 따뜻한 답장을 받자마자 서둘러 짐을 꾸렸다. 떠나기 전날 밤 샤르와 키스는 뒷마당에서 별을 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키스는 앤을 선택한 샤르에게 질투를 느끼면서도 그녀를 불행으로부터 지켜달라고 간곡히 부탁했고, 샤르는 키스의 공정한 영혼에 경의를 표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앤을 지키겠노라 맹세했다. 앤은 비참한 상실을 딛고 다시 장인이 되기 위한 첫발을 내디딜 준비를 마쳤다.

 

[3장 다녀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앤은 페이지 공방을 향해 길을 떠났다. 전날 밤 키스는 동이 트기도 전에 일을 보러 나갔는지 식당 테이블 위에는 공동 경영자의 조속한 복귀를 바란다는 짧은 쪽지만이 남겨져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앤은 샤르, 미스릴과 함께 상자형 마차를 몰아 파웰 할퍼드 공방을 뒤로하고 북동쪽으로 향했다. 루이스턴에서 밀스필드까지 가는 길에는 가을 기운이 완연한 숲과 호수가 펼쳐졌고, 온화한 풍경을 마주한 앤의 마음속 불안과 조바심도 조금씩 녹아내렸다. 밀스필드가 가까워지자 앤은 공방 식구들의 그리운 얼굴을 하나둘 떠올렸고, 곁에서 졸던 샤르는 앤의 목소리에 눈을 뜨며 그들이 쉽게 변할 리 없다며 앤을 다독였다. 미스릴은 자신이 요정왕으로서 수행할 웅장한 계획이 있다며 들떠 있었고, 샤르는 그런 미스릴을 무심하게 격려하며 장난을 쳤다.

 

마차는 이윽고 밀스필드를 빠져나와 붉은 지붕이 돋보이는 페이지 공방에 도착했다. 석양이 내려앉은 공방은 예전보다 활기가 넘쳤고 앤은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마차를 세웠다. 그때 본채 현관문이 기세 좋게 열리더니 금발의 브리짓이 나타나 앤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브리짓은 반가움을 숨기지 못하다가 이내 자존심을 세우며 우연히 마주친 척 새침하게 굴었다. 뒤이어 나타난 엘리엇은 자신이 글렌의 양자가 되어 이제 엘리엇 페이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브리짓이 앤을 간절히 기다렸다고 폭로했다. 엘리엇은 샤르와 미스릴에게도 인사를 건넸는데, 미스릴은 엘리엇이 자신을 10분의 1 요정이라고 부르자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소동을 피웠다. 엘리엇은 앤의 머리를 다정하게 다독이며 공방에 돌아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해 주었다.

 

엘리엇은 앤을 이끌고 병석에 누워 있는 글렌의 방으로 향했다. 글렌은 일 년 전보다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앤을 온화한 미소로 맞이했다. 앤이 설탕과자를 만드는 감각을 잃어버려 다시 견습으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고백하자, 글렌은 앤의 손을 맞잡으며 위로를 건넸다. 그는 감각에만 의존하던 기술을 잃어버린 지금이 오히려 의식적으로 기술을 재구축할 기회라고 조언했다. 휴 머큐리나 알프 힝글리처럼 흔들림 없는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다시 한번 기술을 자기 것으로 만들라는 글렌의 가르침에 앤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글렌은 앤의 재수련을 엘리엇에게 맡긴 뒤 휴식을 취하기 위해 눈을 감았고, 앤은 엘리엇과 함께 방을 나왔다.

 

식당으로 내려온 앤은 다른 요정들과 장인들을 마주했다. 부끄러움 많은 다나와 밝은 모습의 하루가 앤을 반겼고, 나디르, 발렌타인, 킹, 올란드도 차례로 나타나 앤의 복귀를 기뻐했다. 그 자리에서 미스릴은 앤과 샤르가 연인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떠들썩하게 알렸고, 앤은 새빨개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잠시, 올란드는 올해 첫 설탕사과 수확이 끝나면 공방을 나가 독립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갑작스러운 이별 소식에 나디르와 킹은 당황했고, 특히 브리짓은 올란드가 제멋대로라며 크게 화를 내고는 테라스로 뛰쳐나갔다.

 

앤은 브리짓을 달래기 위해 테라스로 따라 나갔다. 브리짓은 올란드가 공방을 버리고 간다며 분노를 쏟아냈지만, 앤은 그것이 올란드를 향한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 감정임을 눈치챘다. 브리짓은 과거 자신이 힘들 때 고양이 모양 설탕과자를 만들어 준 사람이 올란드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사랑에 빠진 브리짓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앤은 언젠가 자신의 실력을 되찾으면 이토록 사랑스러운 마음을 설탕과자로 표현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느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앤은 취해 잠든 미스릴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브리짓의 손길로 정성스럽게 정돈된 방에서 앤은 샤르와 함께 밤 풍경을 바라보았다. 앤이 기술을 되찾을 수 있을지 불안해하자 샤르는 서두를 필요 없다며 앤을 다독였다. 그러던 중 샤르는 앤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무릎 위로 끌어당기며 키스를 시도했다. 연인 사이임을 강조하는 샤르의 돌직구에 앤은 심장이 터질 듯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 속으로 도망치듯 숨어버렸다. 앤은 내일은 반드시 연인다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4장 도전하는 자들]

 

놀라운 속도로 침대 속으로 파고들어 잠들어 버린 앤을 보며 샤르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을 피하는 듯한 앤의 태도에 샤르는 그녀가 죽음의 공포 속에서 내뱉었던 연인이 되자는 약속을 혹시 후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다. 그런 샤르의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는 척하며 상황을 엿보고 있던 미스릴이 벌떡 일어나 샤르의 미적지근한 태도를 타박하며 창가로 다가왔다. 미스릴은 자신이 요정의 자유를 위해 '색의 요정'이 되겠다는 뜻밖의 포부를 밝히며, 키스로부터 전수받은 꿈을 이야기했다. 샤르는 명랑한 미소 뒤에 숨겨진 미스릴의 강인한 의지를 확인하고는, 앤과 요정들이 맞이할 미래를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라팔과 맞서 싸울 결심을 굳혔다.

 

샤르는 라팔이 얻은 지식의 원천을 쫓기 위해 밤중에 서고로 향하다가, 식당에서 홀로 고문서를 연구하던 엘리엇과 마주쳤다. 엘리엇은 앤의 재기를 돕기 위해 과거의 기록을 뒤지고 있었고, 샤르 역시 라팔이 찾아냈을 '최초의 설탕사과나무'에 관한 단서를 얻기 위해 엘리엇의 안내를 받아 서고로 들어섰다. 앤의 미래를 어지럽히려는 라팔을 확실히 멸하기 위해 샤르는 삼백 년 역사가 잠긴 공방의 기록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다음 날 새벽, 앤은 샤르가 자리를 비운 사이 홀로 눈을 떠 작업동으로 향했다. 견습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청소를 돕던 앤은 일찍부터 매 형상의 설탕과자를 만들고 있던 올란드와 마주했다. 올란드는 앤에게 설탕과자 제작을 거들어보라고 권하며 은설탕 그릇을 내밀었지만, 앤은 은설탕을 만지는 순간 자신의 손가락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그 미세한 감각을 완전히 잊어버렸음을 깨달았다. 머릿속에 기억은 남아 있었으나 몸에 배어 있던 기술이 통째로 사라진 것을 확인한 앤은 큰 충격을 받고 작업동을 뛰쳐나갔다.

 

초원 끝 우물가로 달려간 앤은 자신의 안일함을 자책하며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그저 어머니의 기술을 몸으로 흉내 내며 익혔을 뿐, 단 한 번도 그 기술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거나 의식하며 다루지 않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통감한 것이다. 하지만 앤은 곧 절망을 딛고 일어나, 몸으로 익힌 뒤 머리로 이해하는 방식이 불가능하다면 반대로 머리로 기술을 완벽히 이해한 뒤 몸에 새겨넣겠다는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 앤은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본보기가 되어줄 뛰어난 장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곧장 엘리엇의 방으로 달려갔다.

 

앤은 자다 깬 엘리엇에게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고백하며 파격적인 제안을 건넸다. 자신이 엘리엇의 기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여 언어로 전달해 줄 테니, 그 대가로 자신 또한 엘리엇의 기술을 보고 배울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앤은 이것이 엘리엇이 은설탕 자작이나 캣 같은 전설적인 장인들의 경지에 도달할 기회가 될 것이라며 그를 설득했다. 엘리엇은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앤의 도전적인 제안에서 장인으로서의 뜨거운 갈망을 읽어냈고, 기꺼이 그녀와 함께 더 높은 경지를 향한 수련에 동참하기로 약속했다.

 

[5장 장인의 본능]

 

서재는 글렌과 브리짓의 방이 나란히 이어진 복도 가장 안쪽, 유독 빛이 들지 않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샤르는 지난밤부터 줄곧 서가의 책들을 훑으며 설탕사과나무에 관한 기록을 찾았다. 인간들이 잊어버린 최초의 설탕사과나무에 다다를 단서를 찾기 위해 옛 문헌의 비유와 암시를 하나하나 파헤치던 중, 그는 마지막 요정왕과 세드릭 선대왕의 신화를 새긴 비문의 탁본을 발견했다. 고대 하이란디아 문자로 기록된 그곳에는 요정왕이 죽음을 앞두고 왕국의 중심을 지켜달라는 소원을 빌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샤르는 여기서 말하는 왕국의 중심이 곧 최초의 설탕사과나무임을 직감하고 탁본 위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창밖으로 새들이 지저귀며 아침을 알릴 무렵 브리짓이 서재로 들어와 샤르를 찾았다. 샤르가 쌓아둔 책더미와 탁본을 본 브리짓은 의아해했고, 샤르는 그녀에게 이 탁본의 원본이 있는 노스이스트우드 교회 터로 안내해달라고 요구했다. 보답을 하겠다는 말에 브리짓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앤이 걱정할 거라는 충고를 남겼으나, 결국 안내를 수락하고 헛간으로 향했다. 헛간에서는 물방울 요정 미스릴 리드 포드가 견습생들과 어울려 설탕사과 수확용 마차의 구조를 공부하고 있었다. 샤르는 으스대는 미스릴에게 격려를 건넨 뒤 브리짓이 모는 2인승 마차에 올라탔다.

 

본채 앞마당에서 외출하려던 두 사람은 마침 현관에서 나오던 앤, 엘리엇과 마주쳤다. 샤르가 늦게 돌아올 거라며 퉁명스럽게 인사하자 앤의 표정은 살짝 흐려졌다. 브리짓은 일부러 샤르가 권해서 나가는 것이라며 새침하게 덧붙였고, 멀어지는 마차를 보며 앤은 가슴 한구석이 지글거리는 질투를 느꼈다. 앤은 자신의 옹졸함을 자책하며 마음을 다잡았고, 엘리엇은 그런 앤을 놀리면서도 가장 구석진 작업동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달콤한 은설탕 향기가 가득한 작업실에 들어서자 앤은 몸에 밴 장인의 본능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앤은 서두르지 않고 견습생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 도구 손질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엘리엇과 마주 앉아 숫돌에 물을 적신 앤은 그의 손동작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엘리엇은 나이프의 날을 세울 때 힘을 조절하여 은설탕이 균일하게 잘리도록 섬세하게 연마했고, 앤은 그 방식을 자신의 손에 익히기 위해 집중했다. 도구를 만지는 것이 곧 은설탕을 대하는 손을 만드는 과정임을 깨달은 앤은 현기증이 일 정도로 방대한 감각의 세계에 압도되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두 사람의 도구 손질은 이어졌고, 엘리엇은 8일 뒤 시작될 설탕사과 수확을 언급하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혼자 남은 앤이 다시 도구에 집중하고 있을 때 장인장 올란드가 찾아왔다. 올란드는 앤이 여전히 도구만 붙들고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으나, 앤은 이것이 은설탕의 성질을 이해하는 과정이라 답했다. 올란드는 앤에게 공방에 남아 장인장을 맡아달라고 다시 한번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불안과 초조함에 예민해져 있던 앤은 참아왔던 화를 터뜨리며 자신의 무력함과 올란드의 이기심을 비판했다. 앤의 진심 어린 외침에 올란드는 사과하며 자신 역시 엘리엇이라는 뛰어난 동료를 보며 느껴온 장인으로서의 열등감과 독립하고 싶은 열망을 고백했다. 그는 브리짓에게 만들어준 고양이 설탕과자 이야기를 뒤로한 채, 그녀가 곧 이름난 장인과 결혼할 것이라는 씁쓸한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 시각 샤르는 노스이스트우드 교회의 폐허에 도착했다. 브리짓을 마차에 남겨둔 채 홀로 유적 안으로 들어간 샤르는 벽면에 새겨진 부조를 찾아냈다. 탁본에서 마모되어 보이지 않던 뒷부분에는 요정왕과 선대왕의 마지막 문답이 새겨져 있었다. 왕국의 중심을 지키고 싶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그곳으로 향하라는 모호한 격언뿐이었지만, 샤르는 비문의 내용을 곱씹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최초의 설탕사과나무를 찾기 위해 공방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동시에 자신이 사라져도 설탕과자 만들기에만 몰두하느라 알아채지 못할 앤의 모습을 떠올렸다.

 

해가 질 무렵까지 앤과 엘리엇의 수행은 계속되었다. 두 사람은 마주 선 채 은설탕을 반죽하며 수분이 흡수되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앤은 엘리엇의 빠른 손놀림을 눈으로 좇으며 자신의 동작을 수정했고,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은설탕의 미세한 변화를 말로 정리하며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어둠이 내려앉아 집중력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쯤 엘리엇은 먼저 본채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앤은 피로로 퉁퉁 부은 눈을 감고 스커트 위에서 반죽하는 손동작을 되풀이했다. 행복을 부르는 설탕과자를 다시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앤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을 때, 어느샌가 다가온 샤르의 목소리가 그녀라면 반드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따뜻하게 응답했다.

 

[6장 올해 첫 설탕사과]

 

앤의 눈앞에는 어스름 속에서도 유달리 희디흰 피부와 흑발이 돋보이는 샤르가 서 있었다. 앤은 브리짓과 함께 외출하고 돌아온 그를 마주하자 아침에 느꼈던 불안과 질투심이 도져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지만, 샤르는 거침없이 다가와 앤의 턱을 잡아 자신을 보게 했다. 울고 있느냐는 그의 물음에 앤은 그저 피곤해서라고 둘러대며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샤르는 손을 놓아주지 않고 무슨 일이냐고 재차 속삭였다. 앤은 결국 아름다운 브리짓과 샤르가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는 고백을 쏟아냈고, 샤르는 그런 앤을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질투냐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앤의 뺨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며 자신은 앤의 연인이고 사랑스러운 것은 오직 앤뿐이라며 굳은 믿음을 주었다. 마음을 다잡은 앤이 수련을 계속하겠다고 대답하자, 샤르는 라팔과 에릴을 찾아 결착을 짓기 위해 보름 정도 공방을 비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요정들의 미래를 짊어진 그의 고결한 모습에 앤은 거리감을 느꼈으나, 샤르는 앤의 앞에 기사처럼 무릎을 꿇고 손등에 입을 맞추며 돌아왔을 때는 지금보다 더 가까운 연인답게 다가와 있으라고 속삭인 뒤 그날 밤 공방을 떠났다.

 

같은 시각 브리짓은 방에서 앤이 만들어 준 비취색 새와 올란드가 선물한 아기 고양이 설탕과자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올란드가 과거 만들어 준 자신이 거절했던 볼품없는 고양이 대신 이토록 정교하고 생동감 넘치는 고양이를 다시 만들어준 것에 담긴 진심을 깨닫고, 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지난날의 제멋대로였던 자신을 후회했다. 창밖으로 앤과 엘리엇이 늦은 밤까지 작업실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던 브리짓은 침대에 기대앉은 아버지 글렌과 대화를 나누었다. 글렌은 더 나은 것을 목표로 필사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는 젊은 장인들을 가만히 두라고 말하며, 올란드 역시 공방을 아꼈기에 독립을 결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인의 천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이들의 운명을 실감한 브리짓은 앤의 필사적인 모습에 안쓰러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끼며, 자신도 장인이었다면 올란드에게 설탕과자로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겼다.

 

앤은 꼬박 7일 동안 엘리엇의 곁에서 은설탕을 반죽하는 기초 기술을 치열하게 연마했다. 손바닥에 착 감기는 매끄러운 윤기를 확인하며 기술을 되찾아갈 무렵, 공방에는 올해 첫 설탕사과 수확을 알리는 요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페이지 공방의 모든 장인과 견습생들이 마차에 올라타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숲으로 향했고, 앤은 브리짓의 마차에 동행하며 들뜬 열기에 휩쓸렸다. 숲에 도착한 장인들은 서로의 리본이나 스카프를 뺏는 기묘한 전통 놀이를 즐기며 붉은 열매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앤은 나디르에게 머리 리본을 빼앗겼고 브리짓 또한 누군가에게 리본을 낚여 분개했으나, 앤은 우연히 올란드의 주머니에서 브리짓의 리본이 삐져나온 것을 목격했다. 그 순간 앤은 올란드가 평소 브리짓의 장래를 걱정하며 그녀를 향한 모호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앤은 서로의 진심을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을 위해, 자신이 모은 이 마음의 조각들을 설탕과자로 빚어내어 행복을 전해주기로 결심했다. 은설탕 정제가 끝나 올란드가 떠나기 전까지, 자신이 익힌 기본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어내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붉은 사과 숲을 응시했다.

 

 

한편 공방을 떠나 유적지를 헤매던 샤르는 여러 비문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왕국의 중심으로 향하라'는 동일한 구절을 발견하고 이것이 라팔이 숨어있는 곳으로 가기 위한 결정적인 단서임을 확신했다. 해가 뜨자 그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품은 채 다시 공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수확을 마친 페이지 공방에서는 은설탕 한 줌을 탄 물에 설탕사과를 재우는 작업이 한창이었고, 밤이 되자 마당에는 풍성한 음식과 음악이 넘쳐나는 축제가 벌어졌다. 장인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동안 앤은 작업동에 남아 묵묵히 반죽을 되풀이했다. 엘리엇 역시 축제 대신 앤의 곁을 찾아와 자신의 새로운 감각을 공유하며 기술을 전수했고, 앤은 사흘 뒤 정제 작업이 끝나기 전까지 기본 기술만을 극대화해 두 사람의 마음을 담은 설탕과자를 완성하겠다고 다짐하며 은설탕을 정성껏 빚어냈다.

 

[7장 단 하나의 작은 것]

 

설탕 사과를 수확한 이튿날부터 날씨가 궂어지기 시작했지만, 은설탕을 정제하는 작업은 조금의 지체도 없이 이어졌다. 작업동의 모든 화덕에는 거센 불이 지펴졌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창문에서는 자욱한 증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부슬비가 내리는 바깥의 서늘함과는 대조적으로 작업동 안은 장인들의 활기와 열기로 가득 찼다. 견습생들과 장인들이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솥을 저을 때, 앤은 그 노랫소리를 배경 삼아 작업대 맞은편의 엘리엇을 쏘아보듯 응시하며 손을 놀렸다. 그녀는 엘리엇의 모든 움직임을 관찰하고 분석하여 머릿속에 담으려 애썼다. 눈은 재빠르게 그의 손끝을 쫓았고 머리는 그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회전했다. 끓여 녹인 설탕 사과가 평평한 용기에서 건조되고 맷돌이 돌아가는 소리가 여섯 개의 작업동 전체에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앤과 엘리엇은 닷새 동안 잠도 줄여가며 서로를 견제하는 진검승부 같은 긴장감 속에서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마침내 두 사람의 손놀림이 마치 한 몸처럼 같은 리듬을 타기 시작했을 때, 올해의 첫 은설탕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은설탕 정제가 마무리되어 가던 그날 저녁, 올란드가 내일 아침 갓 만든 설탕을 가지고 멜빌로 떠난다는 소식에 안채에서는 소박한 송별회가 열렸다. 평소의 온화한 분위기와 달리 브리짓은 말없이 식사만 하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했다. 올란드는 아쉬워하는 동료들에게 일일이 대답하면서도 브리짓에게는 말을 걸지 않았고, 브리짓은 그런 그를 보며 더욱 새침하게 굴었다. 나디르가 멜빌 공방의 규모를 묻자 노인 혼자 꾸려온 작은 곳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들은 브리짓은 페이지 공방의 장인장 자리를 버리고 고작 그런 작은 곳으로 가느냐며 가시 돋친 비아냥을 내뱉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고 엘리엇이 나무라려 했지만, 올란드는 할 말이 있으면 밖에서 듣겠다며 먼저 테라스로 나갔다. 브리짓은 냅킨을 내던지듯 내려놓고 그의 뒤를 쫓았다.

 

맑게 갠 밤하늘 아래에서 올란드는 독립은 자신의 자유 의지이며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브리짓은 페이지 공방 본공방 장인장이라는 명예를 버리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소리쳤지만, 올란드는 자신의 명예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며 차갑게 대꾸했다. 특히 그가 이 모든 일이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하자 브리짓은 뺨을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비명을 지르며 올란드를 밀쳤고, 두 사람은 엉킨 채 풀밭 위로 넘어졌다. 진심으로 질린 듯한 올란드의 표정을 마주한 브리짓은 상처를 입은 채 도망치듯 달려갔다. 홀로 남은 올란드는 별을 보며 주머니 속의 리본을 만지작거렸다. 설탕 사과 수확 때 쓸쓸해 보이던 그녀에게서 뺏었던 그 리본을 그는 차마 버리지도, 돌려주지도 못한 채 내일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안채로 뛰어 들어오던 브리짓은 자신을 걱정해 마중 나온 앤과 마주쳤다. 브리짓은 고맙다는 인사조차 할 수 없는 '상관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에 절망하며, 자신이 장인이었다면 마음을 형태로 만들어 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그 진심을 읽어낸 앤은 브리짓의 팔을 꽉 붙잡으며 자신이 대신 감사의 설탕과자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브리짓이 전하고 싶은 마음의 조각들을 모두 주워 모았으니 오늘 밤 안에 반드시 완성하겠다는 앤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앤은 곧장 작업동으로 달려가 마지막으로 남은 기술인 은설탕 실 잣기에 몰두했다. 이미 체력은 바닥이었지만 브리짓과 올란드의 마음을 이어줘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플라이휠을 돌렸다. 뒤늦게 들어온 엘리엇의 도움 속에 수만 번의 시도를 거듭하던 한밤중, 앤은 손가락 끝이 찌릿할 정도의 예민한 감각을 느끼며 마침내 완벽하고 고른 은설탕 실을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기술을 터득한 앤은 곧장 방으로 달려가 잠든 미스릴 리드 포드를 깨워 지원군으로 불러들였다. 그녀는 미스릴에게 날달걀을 구해오게 한 뒤 달걀 조각칼로 구멍을 내고 내용물을 비워냈다. 그러고는 은설탕 반죽에 일곱 가지 색가루를 미묘하게 섞어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이 감도는 일곱 개의 작은 구슬을 만들었다. 이 구슬들을 달걀 껍데기 안에 넣은 뒤, 앤은 플라이휠로 자아낸 찬란한 금빛 은설탕 실을 껍데기 주위에 불규칙하고 섬세하게 감기 시작했다. 실이 굳자 바늘로 달걀 껍데기를 톡톡 두드려 부수어 껍질 조각들을 실 틈새로 모두 빼냈다. 아침 햇살이 창가로 스며들 때 앤의 손바닥 위에는 속이 비어 있는 금빛 고치 같은 설탕과자가 놓여 있었다. 그 금빛 그물 사이로 일곱 빛깔의 구슬이 은은하게 비치는, 작지만 사랑스러운 작품이었다. 이것은 브리짓의 복잡하고 여린 마음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었다.

 

 

그때 올란드가 작별 인사도 없이 새벽같이 말을 끌고 나가려 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앤은 맨발에 잠옷 차림인 브리짓을 데리고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엘리엇과 실랑이를 벌이던 올란드는 엉망인 차림으로 나타난 두 사람을 보고 당황했다. 브리짓은 앤이 건네준 금빛 고치 설탕과자를 소중히 받쳐 들고 올란드 앞에 섰다. 그녀는 어린 시절 그가 만들어 주었던 삼색 고양이 설탕과자를 기억하고 있다며, 그때의 기쁨과 감사를 이제야 전한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마음 모양이라며 설탕과자를 내미는 브리짓의 옆모습은 아침 햇살 속에 눈부시게 빛났다. 장인인 올란드는 그 형태와 색에 담긴 깊은 의미를 단번에 읽어내고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브리짓의 머리에 손을 얹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의 화해를 지켜본 앤은 안도하며 현관 기둥에 몸을 기댔다.

 

그 순간, 보름은 걸릴 줄 알았던 샤르가 생각보다 일찍 앤의 눈앞에 나타났다. 샤르는 앤의 휑한 얼굴을 보고 잠은 잤느냐며 걱정스럽게 뺨을 어루만졌다. 앤은 기술을 되찾았다는 소식을 전하며, 브리짓의 용기에 힘입어 자신도 샤르에게 제대로 된 고백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긴장감에 심장이 뛰었지만 앤은 샤르를 똑바로 응시하며 자신을 연인으로 삼아달라고 사랑을 속삭였다. 샤르는 무리할 필요 없다며 다정하게 웃어주더니 몸을 숙여 앤에게 깊고 달콤한 입맞춤을 건넸다. 두 사람의 입맞춤은 설탕과자보다 더 달콤한 순간을 선사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은설탕 자작 휴의 종자가 말을 타고 급박하게 달려와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설탕 사과의 수확과 정제를 즉각 중단하라는 명령과 함께, 이대로라면 세상에서 설탕과자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급한 전갈이었다. 같은 시각, 최초의 설탕 사과나무 아래에 앉아 있던 붉은 눈의 은설탕 요정 필두는 삼천 년 만에 찾아온 전환기를 예고하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서 설탕과자가 아주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거대한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