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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발 작품

슈거 애플 페어리 테일 12권- 왕국의 은설탕사들 챕터 별 스토리 요약

by 미도착 원고함 서고지기 2026. 5. 2.

 

[앤과 캣의 설탕과자점]

 

은설탕사 윌리엄 블래든이 운영하는 왕도 루이스턴의 유명한 설탕과자점을 둘러본 앤 할퍼드는 장인들의 엄청난 생산량에 감탄하며 가게를 나섰다. 어깨 위에 앉은 호수 물방울 요정 미스릴 리드 포드와 수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골목으로 향한 앤은 일주일 전 빼앗겼다 되찾은 낡은 상자형 마차에 올랐다. 마차에는 흑요석 요정 샤르 펜 샤르가 긴 다리를 늘어뜨린 채 누워 있었고, 앤은 그와 티격태격 농담을 주고받으며 다음 목적지를 고민했다. 루이스턴의 쟁쟁한 은설탕사들 틈바구니에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앤은 인구는 많지만 경쟁자가 적은 북쪽 도시 웨스트르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마차를 몰아 대로로 나선 앤은 찬 바람에 몸을 떨며 길을 가다 우연히 낡고 기울어진 건물에 걸린 설탕과자점 표식을 발견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앤은 마차를 세우고 비좁고 거미줄이 가득한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 카운터에는 연두색 곱슬머리의 요정 벤자민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그 옆에는 수많은 푸른 들꽃이 모여 하나의 큰 꽃 형상을 이룬 극도로 섬세한 설탕과자가 놓여 있었다. 앤이 그 아름다움에 홀려 있는 사이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슬그머니 들어와 설탕과자를 훔치려 했다. 앤이 소리치자 당황한 남자는 설탕과자를 바닥에 떨어뜨려 산산조각 낸 뒤 도망쳤다. 소란을 듣고 안쪽 작업장에서 잿빛 머리카락의 청년 캣이 나타났고, 그는 참상을 확인하자마자 앤을 범인으로 몰아세우며 거칠게 화를 냈다. 앤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캣은 막무가내로 변상을 요구하며 그녀가 설탕과자 장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몸으로 때우라며 강제로 일을 시켰다. 훌륭한 실력을 갖춘 캣의 기술을 곁에서 보고 싶었던 앤은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고, 샤르와 미스릴까지 합세해 좁은 가게에서 기묘한 동거와 노동이 시작되었다.

 

앤은 캣의 지시에 따라 맷돌로 은설탕을 빻으며 그의 작업 방식을 지켜보았다. 캣은 입은 험했지만 오직 자신이 만들어 주고 싶은 사람을 위해서만 정성을 다하는 장인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이번 작품을 구두 가게 딸의 결혼식을 위해 헐값에 만들어 주는 중이었다. 은설탕이 부족할 것을 걱정해 밤늦게까지 홀로 작업장에 내려가 은설탕을 정제하던 앤은 뒤따라온 샤르의 도움으로 화덕에 불을 지피고 얼어붙은 손을 녹이며 묘한 유대감을 느꼈다. 다음 날, 캣의 실력을 시기하며 거액으로 설탕과자를 사려던 클레이 자작부인이 찾아와 행패를 부렸으나 앤과 요정들이 힘을 합쳐 그녀를 쫓아냈다. 이 과정에서 앤은 지난번 설탕과자를 부순 범인이 자작부인의 시종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결혼식 전날 밤, 앤은 자작부인 측이 다시 방해하러 올 것을 예상해 설탕과자를 미리 주인에게 전달하고 작업대 위에는 요정들을 숨겨 가짜 설탕과자 꾸러미를 올려두었다. 예상대로 한밤중에 몰래 잠입한 시종이 가짜 꾸러미를 훔치려다 잠복해 있던 앤 일행에게 붙잡혔다. 소동 끝에 잠에서 깬 캣은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오해를 인정하며 앤에게 서툴게 사과를 건넸다. 앤이 떠나는 날 아침, 캣은 추운 북쪽으로 향하는 앤에게 고급스러운 방한용 케이프를 선물했다. 2층에서 짐을 챙기던 앤은 벤자민이 사실 자신의 날개를 스스로 다른 곳에 보관하며 캣의 곁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과 그가 이백오십 년 넘게 산 요정이라는 점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순간, 캣은 자신이 사실 과거에 은설탕 자작과 함께 수행했던 전설적인 은설탕사 알프 힝글리라는 정체를 밝혔다. 앤은 동경하던 장인을 직접 만났다는 사실에 전율하며 그의 조언을 가슴에 새기고 다시 마차에 올랐다. 웨스트르를 향해 나아가는 마차 위에서 앤은 자신을 '귀엽다'고 말하며 무심하게 챙겨주는 샤르의 태도에 가슴 설레어하며, 새로운 여정을 향해 힘차게 출발했다.

 

[천국의 은설탕사]

 

잿빛 눈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고요한 오후, 앤은 왕도 루이스턴의 저렴한 숙소인 풍향계정 방안에서 이주에 걸쳐 공들여 만든 연분홍 장미 모양의 설탕과자를 완성했다. 사흘 뒤로 다가온 승혼일을 위해 죽은 어머니 에마를 기리며 만든 작품이었으나, 창밖의 쌓인 눈과 싸늘한 방 안의 공기는 홀로 남겨진 앤의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때 술에 잔뜩 취해 뺨이 붉게 달아오른 요정 미스릴 리드 포드가 요란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를 짐짝처럼 들고 온 흑요석 요정 샤르 펜 샤르가 한심하다는 듯 미스릴을 테이블 위로 내던졌다. 미스릴은 술기운에 비틀거리다 테이블 아래로 떨어져 코를 골며 잠들었고, 앤은 그런 요정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앤은 샤르에게 자신이 만든 장미가 정말 예쁜지, 혹시 돌아가신 엄마가 비웃지는 않을지 물으며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부재를 실감했다.

 

이튿날 아침, 숙취로 괴로워하던 미스릴은 앤의 기운을 북돋아 주겠다며 남쪽 광장에 죽은 사람을 불러내 대화하게 해주는 요정이 있다는 소문을 전했다. 샤르는 명백한 사기라며 단호하게 반대했지만, 앤은 가슴속 깊이 차오르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설령 속는 셈 치더라도 가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주방에서 염소 우유를 끓이던 앤에게 샤르는 네 책임하에 가고 싶다면 가라고 말하며 다정하게 뺨을 감싸주었고, 앤은 그 온기에 용기를 얻어 어머니에게 자신의 장미가 예쁜지 꼭 묻겠노라 다짐했다.

 

세 사람은 유흥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남쪽 광장의 작은 텐트를 찾아갔고, 앤은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연분홍 머리카락의 요정과 마주 앉았다. 요정은 갑자기 책상에 엎어졌다 일어나더니 에마의 영혼이 빙의한 듯 연기하며 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요정은 설탕과자 전문가였던 에마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라거나 '요리 천재' 같은 실언을 내뱉었고, 결정적으로 앤의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며 규칙 때문이라는 허술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 어설픈 촌극을 지켜보던 앤은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에마의 부재를 인정하고 지금 곁에 있는 샤르와 미스릴이라는 소중한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앤은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텐트를 나섰다.

 

앤이 먼저 나간 뒤 텐트에 잠시 남은 샤르는 요정의 태도가 돌변하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요정은 마치 누군가에게 빙의된 듯한 서늘한 눈빛으로 샤르에게 앤을 잘 부탁한다며 응석받이지만 장미는 참 예뻤다는 말을 남기고 정신을 잃었다. 샤르는 이 기묘한 일을 앤에게 비밀로 한 채 텐트를 빠져나와 기다리던 일행과 합류했다.

 

마침내 찾아온 승혼일 밤, 별빛이 쏟아지는 추위 속에서 앤은 성 루이스턴 벨 대성당 주위에 자신이 만든 장미 설탕과자를 정성껏 내려놓았다. 성당 안에서 촛불을 밝히고 기도를 올린 뒤 밖으로 나온 앤은 이제 정말 어머니를 평온하게 배웅할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앤은 추위에 떨면서도 샤르의 곁에서 미스릴이 사 올 데운 와인을 기다렸고, 샤르는 세찬 바람으로부터 앤을 보호하듯 자신의 날개와 몸으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 곧이어 미스릴이 자신의 몫은 오다가 다 마셔버렸다며 천진하게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하자, 앤은 그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웃음을 터뜨리며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도 따뜻한 위로와 행복을 만끽했다.

 

[해와 달의 밀약]

 

왕도 루이스턴 서쪽 시장 근처에 위치한 서민적인 숙소 풍향계정에 여장을 푼 앤은 침대에 기운 없이 누워 있는 샤르를 보며 깊은 근심에 빠졌다. 성 루이스턴 벨 교회에서 열린 선품에서 페이지 공방이 신성제 설탕과자 제작 공방으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지만, 어젯밤 정체 모를 요정의 습격을 막아내느라 힘을 쏟은 샤르는 날개가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미스릴이 데운 와인을 가져오겠다며 소란을 피우며 방을 나간 사이, 앤은 샤르의 손등에 손을 얹으며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었다. 샤르는 평소처럼 짓궂은 농담을 던지며 앤을 당황하게 했지만, 그의 옅은 미소 뒤에 가려진 피로는 숨길 수 없었다. 앤은 문득 요정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설탕과자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그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급히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에는 페이지 공방 동료들과 함께 오늘 선품 현장에서 마주쳤던 머큐리 공방의 장인들이 합석해 있었다. 앤은 그곳에서 머큐리 파벌의 실력자인 킬레인을 마주하게 되었고, 샤르를 위한 설탕과자를 만들기 위해 은설탕을 조금 나누어 달라고 부탁했다. 킬레인은 흉작으로 귀해진 은설탕의 가격을 통상보다 세 배나 비싼 4크레스로 제시하며 인색하게 굴었지만, 수중에 돈이 없던 앤은 굴하지 않고 묘안을 내놓았다. 은설탕을 먼저 빌려주면 즉석에서 설탕과자를 만들어 팔아 대금을 치르고, 남은 돈으로 다시 은설탕을 사겠다는 제안이었다. 동료들의 든든한 응원 속에 킬레인이 제안을 받아들이자, 앤과 장인들은 주점 손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즉석에서 설탕과자를 빚는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수장 대리 엘리엇은 직접 설탕을 만지는 대신 앤을 '올해의 은설탕사'라고 치켜세우며 손님들의 경쟁심을 자극하는 경매를 진행했다. 장인들의 섬세한 기술과 엘리엇의 능숙한 수완 덕분에 설탕과자들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고, 급기야 정체 모를 손님이 노인을 시켜 다음 작품에 무려 4크레스를 지불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건네왔다. 덕분에 앤은 목표했던 대금을 치르고도 샤르를 위해 충분히 쓸 수 있는 양의 은설탕과 수익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밤이 깊어 손님들이 떠난 뒤, 앤은 홀로 촛불 아래 앉아 샤르에게 가장 어울리는 전설 속의 꽃인 월광초를 빚기 시작했다. 겹겹이 쌓인 순백의 꽃잎이 어둠 속에서 창백한 빛을 발할 때쯤, 지독한 피로를 이기지 못한 앤은 남은 은설탕 한 그릇을 앞에 둔 채 테이블에 엎드려 잠이 들고 말았다.

 

그 무렵 잠에서 깨어 내려온 샤르는 문틈으로 엘리엇이 잠든 앤 곁에서 몰래 은설탕을 반죽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평소 책임을 다하기 위해 창작욕을 억누르던 엘리엇은 앤이 만든 월광초가 외롭지 않도록, 짝을 이루는 태양의 꽃 일광초를 순식간에 빚어 그 곁에 나란히 놓아두었다. 이때 4크레스라는 거금을 지불했던 익명의 손님이 킬레인이었음이 밝혀졌고, 그는 퉁명스러운 태도 뒤에 숨겨진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하며 앤의 요정 설탕과자를 챙겨 떠났다. 엘리엇은 샤르에게 자신이 만든 일광초를 건네며 앤에게는 비밀로 해달라는 당부와 함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샤르는 은설탕사의 긍지가 담긴 일광초를 먹으며 전신을 채우는 강렬한 단맛과 함께 기운을 회복했고, 잠든 앤을 소중히 안아 올려 방으로 옮겼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앤은 자신을 방으로 데려다준 샤르와 마주했다. 샤르는 잠에서 덜 깬 앤을 향해 다시 한번 달콤한 농담을 건네며 그녀를 당황하게 했지만, 이내 앤이 정성껏 만든 월광초 설탕과자를 받아 들었다. 앤은 뒤늦게 월광초의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얼굴을 붉혔으나, 샤르는 그녀의 진심을 아는 듯 모르는 듯 금빛 섬광 속에서 설탕과자의 힘을 흡수하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날개가 무지갯빛으로 일렁이며 생기를 되찾은 샤르를 보며 앤은 안도했고, 문득 월광초와 일광초가 전설 속에서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슬픈 운명임을 떠올렸다. 하지만 샤르는 상대가 영원히 기다려 준다면 자신 또한 계속해서 찾아 헤매 언젠가 반드시 만날 것이라 화답했고, 두 사람은 창가에 나란히 포개진 그림자 위로 쏟아지는 달빛을 받으며 서로에 대한 믿음을 조용히 확인했다.

 

[새장의 꽃다발]

 

마차가 기분 좋은 진동을 내며 왕도 루이스턴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자 은설탕 자작 휴 머큐리는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맡겼다. 어깨와 등의 채찍 상처가 여전히 욱신거렸지만, 요정 상인 길드와의 협상을 무사히 마치고 은설탕 요정 육성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안도감이 그를 감쌌다. 맞은편에 앉아 창밖을 보던 캣은 휴의 풀어지는 기색을 살피며 상처가 쑤시느냐고 툭 내뱉듯 물었다. 휴는 고개를 저으며 캣의 얼굴을 응시했고, 문득 이 까칠한 사내와 인연을 맺었던 십여 년 전의 봄날을 떠올렸다. 당시 머큐리 공방파의 젊은 장인장이었던 휴는 공방 수장으로부터 양자가 되어 파벌을 이어받으라는 제안을 받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장인으로서 오직 설탕과자만을 빚고 싶었던 그에게 수장의 지위는 무거운 책임이자 창작의 자유를 뺏는 족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생각에 잠겨 복도를 걷던 휴는 작업장에서 소동이 벌어졌다는 보고를 받고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열일곱 살의 천재 장인 알프 힝글리, 즉 캣이 선배 장인 니콜과 살벌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캣은 니콜의 반죽이 형편없다며 그따위로 만들 바에는 차라리 자신에게 일을 넘기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휴는 뒷덜미를 낚아채듯 캣을 끌고 나와 공방 현관 앞에 세워두고 규율을 지키라며 나무랐다. 캣은 장인장인 휴에게도 서슴없이 독설을 내뱉었으나, 휴는 캣의 오만함 뒤에 숨겨진 설탕과자를 향한 지독한 순수함과 광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신분을 숨긴 채 수수한 차림을 한 갈런드 백작 일행이 공방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린 백작은 영접을 위해 서 있던 캣을 발견하자마자 사색이 되어 경악했고, 캣 역시 소스라치게 놀라며 작업장 안으로 도망쳐 버렸다.

 

객실로 안내받은 갈런드 백작은 안절부절못하며 캣을 다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캣은 이미 공방 밖으로 자취를 감춘 뒤였다. 백작은 자신이 본래 의뢰하려던 휴 대신, 반드시 그 소년 장인이 만든 설탕과자를 받고 싶다는 이례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그는 일개 장인의 작품값으로는 파격적인 300크레스를 제시하며, 일주일 뒤 작품을 완성해 장인이 직접 저택으로 배달해 올 것을 명했다. 그날 밤, 몰래 방으로 돌아온 캣을 붙잡은 휴는 백작의 의뢰를 전했다. 캣은 그 인간을 위해서라면 단 한 조각의 설탕과자도 만들지 않겠다며 공방을 나가겠다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휴는 캣의 분노 어린 눈동자 너머에서 길을 잃은 아이 같은 연약함을 읽어냈다.

 

결국 캣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의 출생에 얽힌 비밀을 털어놓았다. 갈런드 백작은 하녀였던 캣의 어머니를 취한 뒤 그들을 도시의 셋집에 숨겨두고 주기적으로 방문해 서민 가족 놀이를 즐기던 친부였다. 캣에게 백작은 어머니를 새장 속에 가두고 길들였던 위선자일 뿐이었고, 어머니가 죽자마자 자신을 백작가의 양자로 들이려는 시도에 질려 도망쳐 나온 것이었다. 휴는 캣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장인이라면 말로 떠드는 대신 실력으로 그 울분을 작품에 담아 백작 앞에 들이밀라고 일갈했다. 휴의 단호하고도 다정한 명령에 캣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 밤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은설탕을 치대기 시작했다. 휴는 캣이 뿜어내는 창작의 광기 곁을 지키며 그가 빚어내는 형상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일주일 뒤, 휴와 캣은 백작의 저택을 방문했다. 캣을 아들이라 부르며 껴안으려는 백작의 앞을 가로막은 휴는 정중히 작품을 확인해달라고 청했다. 캣이 덮여 있던 천을 걷어내자 그곳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백은색 설탕 새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교한 덩굴장미가 수놓아진 새장 안에는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가냘픈 들꽃 다발이 유폐되어 있었다. 그것은 백작이 어머니에게 선물했던 들꽃을 상징하는 동시에, 백작이 저질러온 '사육'이라는 행위의 잔인함을 고발하는 예술적 저항이었다. 백작은 아들이 토해낸 진실 앞에 무너져 내려 눈물을 흘렸고, 캣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신을 위해 빚은 작품이라 선언하며 방을 나섰다.

 

백작은 권력을 이용해 캣을 저택에 가두려 했으나, 휴는 물러서지 않고 그가 머큐리 공방의 소중한 장인임을 강조했다. 장인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하는 휴의 기백에 백작은 결국 패배를 인정하고 아들을 놓아주기로 했다. 저택을 나서며 휴는 캣의 머리를 다독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장인을 온전히 수호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거대한 권력을 쥐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는 스스로 설탕과자를 빚는 즐거움을 잠시 내려놓더라도, 캣이나 앤 할퍼드 같은 장인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로 결심하며 머큐리 공방파의 수장이자 은설탕 자작의 길을 택했다. 회상을 마친 휴는 어느새 잠든 캣의 평온한 얼굴을 보며, 자신이 선택한 이 운명의 업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나직이 읊조리며 미소 지었다.

 

[고양이와 요정의 식탁]

 

왕도의 번잡한 거리 한복판, 햇살이 잘 드는 공방 식당에서 매캐한 탄내와 함께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앤은 수프를 끓이는 데 열중하다 베이컨을 새까맣게 태워버렸고, 이미 자리에 앉아 있던 요정 샤르와 미스릴은 앤을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공동 경영을 위해 공방에 머물던 키스가 조심스럽게 식당으로 들어와 숯덩이가 된 접시를 보고 말을 잇지 못하자, 앤은 선수를 치듯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샤르는 여유롭게 허브차 향을 즐기며 앤의 요리를 먹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빈정거렸고, 키스는 미소를 지으려 애쓰면서도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미스릴이 죽고 싶지 않으면 숯덩이를 먹지 말라며 베이컨 접시를 치워버리자, 앤은 가난한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귀한 베이컨을 망친 자신의 둔함을 탓하며 식탁에 엎드렸다.

 

최근의 긴박했던 협상이 일단락되고 휴가를 얻은 탓에 긴장이 풀린 앤은 스스로도 질릴 만큼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키스는 평소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 준비를 도맡던 캣의 사역 요정 벤자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시 후 캣이 커다란 하품을 하며 식당으로 들어왔으나 벤자민은 보이지 않았고, 캣은 식당 안의 매캐한 냄새를 맡고 불이라도 난 줄 알았다가 앤이 만든 숯덩이를 보고 질색했다. 평소 요리만큼은 절대 실수한 적 없던 벤자민이 아침부터 자취를 감춘 상황에 공방 식구들은 불안에 휩싸였다. 앤은 주변에 도사린 위협을 떠올리며 벤자민이 납치된 것이 아닐까 겁에 질렸지만, 샤르와 키스가 집 안팎을 확인한 결과 외부인의 침입 흔적은 전혀 없었다. 다만 대로변 입구의 여분 열쇠가 사라진 것을 발견한 샤르는 벤자민이 스스로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갔음을 알아차렸다.

 

앤은 벤자민이 사실 자신의 날개를 스스로 관리하고 있었다는 놀라운 비밀을 동료들에게 털어놓았다. 캣이 워낙 물건을 잘 흘리고 다니는 탓에 벤자민이 몰래 날개의 위치를 파악해 챙겨두고 있었으며, 캣은 이 사실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벤자민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캣을 떠날 수 있는 처지였고, 캣은 벤자민이 제 발로 나갔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은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캣은 떠난 녀석에게 마음 쓸 여유가 없다며 평소처럼 작업실에 들어가 은설탕 실을 자아내는 데 몰두하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벤자민의 빈자리에 집중력이 깨진 캣은 플라이휠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등 초보적인 실수를 연발했다. 미스릴이 벤자민에게 버림받았냐며 놀려대자 캣은 불같이 화를 냈지만, 앤은 캣이 벤자민을 진심으로 필요로 하고 있음을 눈치채고 그를 설득해 함께 찾으러 가자고 다그쳤다.

 

캣은 앤의 끈질긴 설득에 마지못해 우물가에 앉아 3년 전 벤자민과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당시 가사 노동에 서툴러 고생하던 캣 앞에 벤자민이 나타나 자신을 팔리지 않는 요정이라 소개하며 사달라고 간청했고, 캣은 벤자민의 뛰어난 요리 솜씨에 감동해 그를 거두어주었다. 겉으로는 캣이 벤자민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벤자민이 캣의 비위를 맞추며 기묘한 공생 관계를 이어온 셈이었다. 캣은 벤자민이 자유를 찾아 떠난 것이라면 그 선택을 존중해주고 싶다며 씁쓸하게 말하고는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몸을 묻었다.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캣을 걱정하며 앤은 밤잠을 설쳤고, 결국 자정이 넘은 시각에 캣의 방 앞을 서성거리다 마당으로 내려와 샤르와 마주쳤다.

 

샤르는 앤에게 벤자민이 돈을 벌기 위해 인간을 속이며 살아가는 '떠돌이 요정'의 수법을 썼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캣과 벤자민의 관계가 속이는 자와 속는 자의 관계였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앤이 그토록 사이 좋던 두 사람의 진실에 슬퍼하던 찰나, 식당 문이 열리며 사라졌던 벤자민이 커다란 열쇠 뭉치를 질질 끌며 나타났다. 벤자민은 캣이 원래 살고 있던 노던블로에 자신의 날개를 깜빡 두고 오는 바람에 직접 그것을 찾으러 다녀왔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캣이 자신의 덜렁거림 때문에 미안해할까 봐 비밀로 했다는 벤자민의 사려 깊은 대답에 앤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벤자민은 캣의 잠꼬대하는 얼굴을 구경하겠다며 캣의 방으로 살그머니 돌아갔다.

 

마당에 남은 앤은 샤르에게 그가 언제나 자유롭고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진심을 전했고, 샤르는 앤의 허리를 붙잡고 입맞춤을 요구하며 짓궂게 굴어 앤을 당황하게 했다. 이때 잠을 자지 않고 지켜보던 키스가 끼어들어 두 사람의 분위기를 방해하며 티격태격 말다툼을 벌였다. 세 사람이 여름밤의 싱그러운 공기 속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란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 밤이 깊어갔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캣은 자신의 베개 옆에서 웅크리고 자는 벤자민을 발견했다. 캣은 벤자민의 뻔뻔한 대답에 어이가 없었지만, 무사히 돌아와 준 사실에 안도하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벤자민이 만든 맛있는 수프를 다시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캣의 기분이 풀리면서, 공방에는 다시금 평화로운 일상의 아침이 찾아왔다.

 

[내일부터]

 

가을바람이 설탕사과 잎을 흔드는 소리가 들려오는 황야에서 여덟 살 소녀 앤은 모닥불 앞에 앉아 부지깽이를 쥐고 있었다. 모닥불 위 쇠사슬에 매달린 검은 솥 안에서는 설탕사과가 걸쭉하게 졸아들고 있었다. 매년 설탕사과 수확철이면 엄마 에마와 함께 전국을 유랑하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작업을 이어왔지만, 올해의 에마는 어딘지 모르게 기운이 없고 마음이 딴 곳에 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앤은 지친 엄마를 돕고 싶은 마음에 설탕사과 솥을 돌보는 불침번을 자처했다. 에마는 어린 딸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못내 불안했지만, 나도 할 수 있다며 고집을 피우는 앤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설탕사과를 거두러 숲으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앤은 숲속으로 사라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평소답지 않게 가라앉은 엄마의 모습이 혹시 자신이 무언가 잘못했거나 잊어버린 일 때문은 아닐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앤은 지금이 엄마의 생일 즈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엄마의 생일을 챙겨주지 못해 엄마가 서운해하는 것이라 확신한 앤은 당장 줄 수 있는 선물이 없는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황야 한복판이라 돈을 주고 물건을 살 수는 없었지만, 앤은 엄마가 좋아하는 예쁜 것들을 직접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앤은 불을 돌봐야 한다는 본분도 잊은 채 부지깽이를 내던지고 숲 주변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나뭇가지와 반짝이는 돌멩이들을 모았다.

 

앤은 쪼그려 앉아 서툰 솜씨로 나뭇가지를 엮어 둥근 고리를 만들고 그 사이에 돌멩이를 끼워 넣으며 선물을 완성하는 데 온 정신을 쏟았다. 한참 후에 뒤에서 엄마의 발소리가 들리자 앤은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숨기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일어서려는 찰나 에마가 앤의 팔뚝을 거칠게 낚아챘다. 에마는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솥을 가리키며 불같이 화를 냈다. 앤이 한눈을 판 사이 설탕사과가 까맣게 타버린 것이었다. 장인에게 설탕사과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냐는 엄마의 호통에 앤은 자신의 미련함이 부끄러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앤이 숨기고 있던 선물은 손에서 미끄러져 풀밭 위로 힘없이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투박한 나뭇가지 고리를 발견한 에마의 눈빛이 흔들리며 분노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 만든 선물임을 직감한 에마는 당황하며 앤의 이름을 불렀지만, 수치심을 이기지 못한 앤은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상자 마차로 달려가 담요 속으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조심스럽게 다가온 에마는 앤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사과를 건넸다. 에마는 자신이 기운이 없었던 이유가 생일 때문이 아니라, 저 멀리 보이는 빌세스 산맥에 얽힌 슬프고도 복잡한 기억 때문이었다고 나지막이 털어놓았다.

 

엄마의 진심 어린 고백을 들은 앤은 조심스레 담요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에마는 눈물로 얼룩진 앤의 뺨을 서늘한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위로했다. 앤은 엄마와 같은 것을 보고 배우며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고, 엄마처럼 설탕과자 장인의 일을 배우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딸의 의지를 확인한 에마는 미소를 지으며 탄 솥을 함께 닦자고 제안했다. 그러고는 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짜 장인 교육의 시작은 내일부터라며 다정하게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