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콕 이야기>
구사 성의 화려한 방 안에서 비명에 가까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해적 여제』 보아 행콕을 앞에 두고 감히 삿대질을 하며 말이 안 된다고 소리를 높인 이는 작은 노파 뇽 할멈이었다. 너무 기가 막힌 소리를 들은 탓에 허리까지 삐끗해 바닥에 주저앉은 뇽 할멈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행콕은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뇽 할멈에게 다가서며, 만일의 경우가 있지 않겠느냐고 냉정하게 되물었다. 두 사람이 부녀처럼 시끌벅적하게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시녀 에니시다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소동의 발단은 몇 주 전, 행방불명되었던 구사 해적단의 일원 달리아가 2년 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하면서 시작되었다.
비 내리는 추운 아침, 너덜너덜한 배를 타고 해안에 도착한 달리아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채 의사를 불러달라고 애원했다. 그녀는 외해에서 남자를 만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고, 해안에 도착하자마자 건강한 여자아이를 출산했다. 아마존 릴리의 관습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아기를 돌보던 중, 달리아에게 뱀 여왕 보아 행콕의 호출이 떨어졌다. 달리아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 여왕에 대한 배신으로 비칠까 봐 두려워하며 의연하게 처벌을 받을 각오로 성에 올랐다. 그러나 행콕의 방에 들어선 달리아는 처벌에 대한 공포보다 여왕의 압도적인 미모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인지를 초월한 조형미와 청아한 목소리에 홀린 달리아에게 행콕이 던진 첫 질문은 뜻밖에도 아기의 상태였다.
사실 행콕은 달리아를 처벌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루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아이를 베고 돌아온 달리아가 남자와 어떻게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는지 그 비결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행콕은 위엄 있는 척하며 아기의 행동을 물었으나, 달리아가 아기는 보통 울부짖거나 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젖을 빨아먹는다고 대답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사랑하는 사이가 되면 루피도 울부짖거나 자신의 가슴에 매달리는 생물로 변하는 것인지 혼란에 빠진 것이다. 행콕은 달리아가 말하는 아기의 특성을 루피와 연결 지어 생각하며, 사랑에 빠진 남자는 주위 사람을 휘두르면서 본인은 행복하게 웃는 생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달리아는 행콕의 오해를 전혀 모른 채, 폭풍우 속에서 구조되어 선원이었던 남자와 마음을 열고 가명을 쓰다 진짜 이름을 알려주게 된 과정, 그리고 좁은 선실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사랑을 키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행콕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루피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던 순간과 단둘이 식사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미 자신과 루피가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특히 선원들과 파티를 열고 춤을 추다 청혼을 받았다는 대목에서, 행콕은 루피가 아마존 릴리를 떠나기 전 잔치에서 보여준 우스꽝스러운 코 막대기 춤이 사실은 자신을 향한 청혼이었다고 멋대로 단정 지었다.

행콕의 망상은 거침없이 뻗어 나가 루피의 동료들을 초대해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고기 십만 톤과 거대한 케이크를 준비할 계획까지 세우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달리아가 마지막에 아이가 생긴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남자가 떠난 뒤였다고 말하자, 행콕은 무언가 중대한 깨달음을 얻은 듯 곧바로 뇽 할멈을 불러들였다. 잔뜩 긴장한 뇽 할멈 앞에서 행콕은 자신의 배꼽 언저리를 소중하게 누르며 비장하게 선언했다. 자신과 루피는 이미 식사도 했고 이름도 불렀으며 잔치에서 춤까지 추었으니, 이제 곧 루피의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는 황당한 결론이었다. 뇽 할멈이 실신할 정도로 기겁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타시기 이야기>
해군본부로 귀환하던 타시기 대령 일행은 중형 해왕류의 습격으로 배에 구멍이 나는 사고를 당해 인근의 작은 무인도에 불시착하게 되었다. 다행히 그곳은 세계 정부에 가입된 소국이자 평화로운 항구 도시였고, 타시기는 배를 수리하는 동안 마을의 한 식당에서 휴식을 취하며 자괴감에 빠졌다. 정의의 이름을 등에 짊어진 해군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은 섬에 발이 묶여 있는 동안 해적들에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식당 주인인 청년 애틀리는 타시기에게 훈제 치킨을 내어주며, 반년 전부터 나타난 해적들이 식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문까지 훔쳐 갔다고 털어놓았다. 타시기는 고개를 숙여 사과했지만, 애틀리는 해군이 과거에 해적들을 잡았다가 금방 풀어준 탓에 오히려 더 큰 보복을 당했다며 마을 사람들은 이제 해군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애틀리는 해적에게 저항하다 다리를 잃어 의족을 하고 있었고, 타시기는 정의로운 해군으로서 그들의 상처를 지켜주지 못한 현실에 깊은 분통을 느꼈다.
스모커 중장은 이미 부하들을 시켜 해적들의 뒤를 쫓고 있었으나, 주민들의 거부감을 우려해 타시기에게는 숙소에서 검술 연습이나 하며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숙소 뒤편에서 홀로 ‘시구레’를 휘두르던 타시기 앞에 죽도를 든 열 살 소녀 히와가 나타났다. 해적보다 강해지고 싶다며 가르침을 청한 히와는, 과거 섬 최고의 검객이었던 애틀리가 다리를 다친 후 스승을 잃은 상태였다. 타시기는 기쁘게 히와를 지도하며 불합리한 것에는 맞서 싸워야 한다고 격려했지만, 자신의 실력이 여전히 미숙하고 해군에는 자신보다 강한 괴물들이 많다고 솔직히 말하자 히와는 약한 사람에게 배우는 건 시간 낭비라며 실망하고 떠나버렸다.

그날 밤, 타시기는 해적들이 다음 날 오후에 식당을 습격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스모커의 보고를 듣던 중, 히와가 사라졌다는 애틀리의 다급한 방문을 받았다. 히와가 낮에 들은 해적들의 거처로 복수를 하러 갔음을 직감한 타시기는 내일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홀로 항구 외곽의 낡은 상가로 달려갔다. 해적들의 근거지에 도달한 타시기는 아이를 찾는 엄마인 척 연기하며 안으로 침입했고, 순식간에 문지기들을 제압하며 3층 방까지 들이닥쳤다. 그곳에는 히와가 밧줄에 묶인 채 잡혀 있었고, 열 명의 해적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해적들은 타시기가 혼자라는 것을 알고 비웃었지만, 타시기는 ‘시구레’를 뽑아 밤하늘처럼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순식간에 적들을 쓰러뜨렸다. 히와는 압도적인 타시기의 실력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비록 총을 든 해적에게 어깨를 스치는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타시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적을 제압하며 히와를 안심시켰다. 마지막 남은 해적이 가짜 폭탄으로 자폭 위협을 가하며 타시기를 압박할 때, 창문 틈으로 새하얀 연기가 들어와 해적의 몸을 옥죄었다. 연기의 주인은 스모커 중장이었다.
스모커는 단숨에 상황을 종료시킨 뒤 다친 타시기를 타박하며 히와를 구해주었다. 히와는 연기로 변해 해적을 사냥하는 스모커의 모습과 타시기의 강인함에 큰 충격을 받았고, 해군이 얼마나 의지가 되는 존재인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며칠 뒤 배 수리가 끝나고 섬을 떠나는 갑판 위에서, 스모커는 혼자서도 충분했을 텐데 왜 자신을 불렀느냐고 물었다. 타시기는 해군에 강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히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편 항구에서 멀어져 가는 배를 바라보며 죽도를 휘두르던 히와는, 타시기처럼 강해져서 장래에 반드시 해군이 되겠다는 새로운 꿈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레이주 이야기>
국토 없는 해상국가 제르마 왕국에서 눈에 들어오는 경치는 오직 변화무쌍한 바다뿐이었다. 왕족인 빈스모크 레이주는 항구에 정박한 작은 상선을 보며 아주 오래전 노스 블루에서 도망치게 도와주었던 셋째 동생 상디를 떠올렸다. 철창을 비틀어 동생을 내보내며 다정한 사람들을 만나라고 눈물로 배웅했던 기억은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레이주는 스스로를 상디처럼 착하지 않다고 여겼으며, 당시의 행동이 정말 동생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함이었는지 자문하곤 했다. 회상에서 깨어난 그녀의 곁에는 약속한 마중선이 오지 않아 짜증이 난 남동생들이 서 있었다. 폭풍으로 출항이 늦어진다는 연락만 온 채 소식이 없자 이치디와 니디, 욘디는 근처에 있던 상선을 빼앗아 직접 항해하기로 결정했다. 제르마의 권위에 눌린 선원들은 순순히 배를 내주었고 동생들은 거들먹거리며 배에 올라탔다. 항해사는 왕족들의 호통에 겁을 먹은 채 키를 잡았고, 레이주는 제르마의 배와는 비교도 안 되게 느린 상선의 속도를 체감하며 동생들을 타일렀다.
출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허기를 느낀 형제들은 생전 관심도 없던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왕족이 주방에 서는 것을 불쾌해하면서도 그들은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냉장고와 찬장을 뒤적였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상디의 이름이 나왔고 레이주는 상디가 현재 '밀짚모자 일당'의 요리사가 되어 바다를 누비고 있다는 사실을 곱씹었다. 이치디는 냉장고에서 꺼낸 돼지고기에 자신들이 침공할 나라의 이름인 '브로콜리'가 붙어 있다는 이유로 불같이 화를 내며 고기를 내던졌고, 뼈 없는 생선을 잡겠다며 갑판으로 나갔다. 니디는 초콜릿 디저트를 만들려다 재료에 초콜릿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레시피를 보고는 비합리적이라며 포기해버렸다. 욘디 역시 빵을 만들려 했으나 이스트를 넣지 않아 반죽에 실패했고, 차가운 강철 손 때문에 발효조차 시키지 못했다. 레이주는 어머니가 읽어준 동화책을 기억하며 계란말이에 도전했으나, 욘디가 식재료를 아끼지 않고 싱크대에 부어버리는 바람에 결국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한 채 제르마로 귀환했다.

제르마에 도착한 동생들은 병사들의 환호를 받으며 성으로 들어갔고 곧장 주방장 코제트에게 식사를 요구했다. 만찬장에는 갓 구운 빵과 화려한 생선 요리가 차려졌는데, 레이주는 그중 맹독을 가진 갑옷쑤기미 요리를 보며 요리사들이 어떻게 독을 제거했는지 궁금해했다. 식사를 마친 후 레이주는 홀로 주방을 찾아가 설거지를 하던 요리사들과 마주했다. 고참 요리사인 베릴은 갑옷쑤기미의 독을 빼기 위해 특수한 미역을 넣은 수조에서 3주 동안이나 공을 들여 신선함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요리사들은 채소를 싫어하는 이치디를 위해 고기 요리에 채소를 잘게 다져 넣고, 단순한 맛을 좋아하는 니디를 위해 소스를 조절하는 등 형제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두 맞춰주고 있었다.
베릴은 과거 상디와 어머니 소라가 저지의 눈을 피해 이 주방에서 몰래 과자를 만들며 행복해했던 추억을 들려주었다. 레이주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따뜻한 광경을 상상하며 자신이 그동안 식사를 단순한 영양 보충으로만 여겼던 것이 얼마나 무미건조한 일이었는지 깨달았다. 상디가 동료들과 신뢰를 쌓으며 요리사로서 살아가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레이주는 자신의 특수한 능력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레이드 슈트를 착용하고 '포이즌 핑크'로 변신하여 수조 속에 있던 갑옷쑤기미의 독을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3주가 걸리는 독 제거 작업을 단 3초 만에 끝낸 레이주는 놀란 요리사에게 다음부터는 자신을 부르라는 말을 남기며 만족스럽게 주방을 나섰다.
<우타 이야기>
우타는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어린 시절 아빠 샹크스에게 던졌던 질문을 떠올렸다. 바람이 어디에서 오는지 묻던 그때의 공기와 솜사탕의 달콤한 감촉, 그리고 뺨에 닿았던 샹크스의 단단한 쇄골 느낌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함께 보낸 날들이 이제는 떠올리기만 해도 숨 가쁜 추억이 되어버렸기에 우타는 적어도 이 기억만큼은 아름다운 보물로 남기고 싶었다. 그녀는 공책 맨 윗줄에 '바람의 행방'이라는 제목을 적고는 눈을 감은 채 머릿속에 맴도는 멜로디를 조용히 흥얼거렸다.
그날 밤, 샹크스와 우타의 침대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마법의 공간이었다. 시트를 머리 위로 뒤집어쓴 우타는 사나운 해왕류 흉내를 내며 샹크스를 잡아먹겠다고 달려들었고, 샹크스는 겁에 질린 뱃사람 연기를 하며 침대 위를 뒹굴었다. 우타는 샹크스의 배를 간지럽히며 깔깔거렸고, 샹크스는 아이의 고집에 항복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샹크스가 1년 전 점령한 해적선에서 홀로 남겨진 우타를 발견했을 때 선원들은 아이를 해군에 맡기려 했으나, 자신을 따르는 우타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샹크스와 동료들은 결국 그녀를 배에서 함께 키우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어느덧 잠들 시간이 되었지만 우타는 좀처럼 침대에 누우려 하지 않았고, 샹크스는 흰 수염 괴물이 온다는 겁을 주거나 서운한 연기까지 동원하며 아이를 달랬다. 하지만 잠시 잠든 척하던 우타가 다시 눈을 번쩍 뜨자 샹크스는 결국 재우기를 포기하고 밀짚모자를 챙겨 든 채 밖으로 나가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화려한 불빛이 가득한 항구의 야시장이었다. 우타는 샹크스의 품에 안겨 밤바람을 맞으며 바람이 어디에서 오는지 물었고, 샹크스는 바다에서 오는 것 같다며 태평하게 대답했다. 낯선 땅이 두려워 샹크스의 셔츠를 꼭 붙잡고 있던 우타는 곧 눈앞에 펼쳐진 알록달록한 노점들의 광경에 마음을 빼앗겨 땅으로 뛰어내렸다.
우타는 야시장을 헤치며 뱀 구이를 구경하고, 선의 혼고 몰래 샹크스가 사준 달콤한 석류 주스를 마셨다. 핑크색 구름처럼 몽글몽글한 솜사탕을 한 입 베어 물며 세상에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에 감탄하기도 했다. 인파 속에서 잠시 샹크스를 놓치고 겁에 질려 울먹이던 우타는 다시 그의 다리를 붙잡고는 절대 혼자 두지 말라며 매달렸다. 샹크스는 아이를 안아 올리고 아동복 가게에서 화려한 원피스와 망토를 골라주었다. 그때 가게 주인이 부드러운 자장가로 울던 아기를 순식간에 재우는 모습을 본 샹크스는 아이를 재우는 비법을 배우기 위해 주인에게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평화로운 분위기는 샹크스를 알아본 젊은 해병의 등장으로 긴장감에 휩싸였다. 해병이 칼을 뽑아 들고 정의를 외치며 위협하자, 샹크스는 가게 주인과 함께 평범한 아빠인 척 능청스럽게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우타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정체가 탄로 났고, 샹크스는 우타를 옆구리에 끼고 재빨리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도망쳐 도착한 공원 분수대 앞에서 샹크스는 잡화점에서 사 온 비눗방울 놀이 세트를 꺼냈다. 우타는 허공으로 흩어지는 무지갯빛 방울들을 쫓으며 즐거워했고, 샹크스에게 평화와 평등이 무엇인지 물었다. 샹크스는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이기에 말이 존재하는 것이라 설명하며 나중에 더 크면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했다.
실컷 뛰어놀던 우타는 샹크스의 등에 업혀 배로 돌아오는 길에 샹크스의 체온을 느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레드 포스 호에 도착해 침실에 눕히는 순간, 우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다시 눈을 번쩍 떴다. 밖에서 기다리던 선원들은 아이 하나 재우지 못하는 선장을 비웃으며 방 안으로 모여들었다. 우타는 샹크스의 어설픈 자장가 대신 선원들이 다 함께 불러주던 거칠고 신나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졸랐다. 결국 라임주스가 책상을 치며 리듬을 만들기 시작했고, 야솝과 럭키 루를 포함한 전 선원이 어깨동무를 한 채 큰 소리로 노래를 합창했다.
시끌벅적한 해적들의 노랫소리에 우타는 침대 위에서 폴짝거리며 춤을 추었다. 음악이 주는 즐거움에 완전히 매료된 우타는 자신도 언젠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는 곡을 부르는 세계 최고의 음악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샹크스는 그런 우타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장래의 음악가라 칭찬해주었고, 우타는 사랑하는 동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모두를 위해 영원히 노래하겠다고 다짐하며 그날의 소중한 밤을 마무리했다.
<나미&로빈 이야기>
창밖으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눈꺼풀을 간지럽히자 나미는 이불 속에서 몸을 꾸물거리며 단잠을 떨쳐내려 애썼다. 평소 부지런한 편이지만 오늘따라 5분만 더 자고 싶은 유혹이 강렬하게 밀려왔고, 결국 아침 식사를 준비할 상디의 수고를 떠올리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세면대로 향해 쵸파가 만들어준 마스크팩을 얼굴에 붙이자 비로소 정신이 맑아졌고, 평소처럼 거울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려던 찰나 나미의 비명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식당으로 달려온 나미는 동료들에게 자신의 왼쪽 눈 밑을 가리키며 기미가 생겼다고 울상을 지었지만, 우솝은 바늘구멍을 보듯 눈을 부릅뜨고도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디는 기미가 있어도 아름답다며 찬사를 보냈고 루피는 고기를 뜯느라 정신이 없었으나, 조로는 고작 얼굴 하나로 소란을 피운다며 무뚝뚝하게 핀잔을 주었다. 이에 나미는 어릴 적부터 사탕을 얻어먹게 해준 자신의 얼굴은 가장 큰 무기라며 단호하게 맞받아쳤다. 다행히 오늘은 큰 마을에 정박해 장을 보는 날이었고, 프랑키는 화장품이라도 사 오라며 나미를 다독였다. 나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생기 없는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거친 바닷바람과 자외선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유지해온 피부 관리 노력이 무너진 것 같아 깊은 충격에 빠졌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화장품 가게로 달려간 나미는 점원에게 자외선 차단과 세정에 탁월한 제품들을 요구하며 진지하게 상담을 시작했다. 점원은 나미의 해박한 지식에 해군 관계자냐고 묻기도 했지만, 나미는 그저 항해 중인 여성들의 고충에 공감하며 꼼꼼하게 제품을 골랐다. 매장 직원이 유행하는 인조 속눈썹을 추천했으나 나미는 갑판 위 강한 바람에 떨어질 것이 뻔하다며 거절했고, 대신 핑크빛 베이스와 클렌징 제품을 대량으로 구입했다. 그녀는 배 위에 마음이 맞는 여사친이 있어 다행이라는 말을 남기고 전리품이 가득 담긴 봉투를 든 채 배로 돌아왔다.
여자 방으로 돌아오니 로빈이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나미가 새로 산 화장품들을 보여주며 기미 때문에 속상하다고 털어놓자, 로빈은 나미의 눈 밑을 살짝 만지며 진심 어린 공감을 건넸다. 해결책보다도 그저 ‘이해한다’는 한마디가 간절했던 나미는 로빈의 위로에 마음이 풀렸고, 끝을 살짝 다듬은 로빈의 헤어스타일을 바로 알아차리며 화답했다. 로빈은 미용실에서 우연히 브룩을 만났던 우스꽝스러운 일화를 들려주었다. 해골이라 머리끝이 어디인지 몰라 미용사가 당황했다거나, 샴푸 거품이 눈에 들어가도 눈이 없어서 괜찮다고 농담을 던졌다는 로빈의 이야기에 두 사람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문을 두드리고 나타난 브룩과 쵸파가 두 사람을 위해 선물을 내밀었다. 브룩은 알라바스타에서나 구할 수 있었던 귀한 헤어 트리트먼트 오일을 시장에서 발견해 가져왔고, 쵸파는 나미의 기미 소식을 듣고 화장수와 에센스를 직접 조합해 만들어 왔다. 쵸파는 주치의로서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지만, 나미는 자신의 기분 문제라며 고마운 마음을 담아 쵸파를 꽉 껴안았다. 나미는 감사의 뜻으로 제우스의 스팀 사우나를 함께 즐기자고 제안했고, 흑심을 품고 끼어들려는 브룩을 단호하게 쫓아낸 뒤 크리마 택트를 휘둘렀다.
제우스가 내뿜는 촉촉하고 미세한 안개가 욕실을 가득 채우자, 나미와 로빈은 온몸으로 따뜻한 미스트를 맞으며 피로를 씻어냈다. 동료들의 세심한 배려와 서로의 공감 속에 가혹한 항해의 고단함은 잠시 잊혀졌다. 두 여인은 자욱한 수증기 속에서 정성스럽게 자신을 가꾸며, 다음 여정을 이어가기 위한 소중하고 고요한 휴식의 시간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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