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바닥 속의 봄>
달력상으로는 이미 봄이 찾아왔으나 여전히 찬 바람이 매섭게 불던 어느 날, 모리노미야 학원의 이사장 요코에게 온천 여행 초대장 한 통이 배달되었다. 식탁에서 이 소식을 접한 류이치는 의아해했으나, 비서 사이카와로부터 요코의 동창이 주인으로 있는 여관에서 온 초대라는 설명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요코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류이치와 코타로에게 동행할 것을 권했고, 나아가 베이비시터부의 모든 아이와 그 가족들까지 함께 가는 대규모 여행이 성사되었다. 보육원 아이들은 여행 소식에 들떠 환호했고, 마침 쿠키를 구워 방문했던 이노마타와 우시마루까지 합류하게 되면서 총 열여섯 명의 대가족이 여행길에 올랐다. 이동하는 소형 버스 안은 마치 소풍을 가는 것처럼 시끌벅적했으며, 아이들은 까불며 장난을 치고 어른들은 팀을 짜서 트럼프 게임을 즐기며 활기찬 시간을 보냈다. 코타로는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과 차의 흔들림 속에서 류이치의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가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눈을 떴다.
일행이 도착한 운류여관은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웅장한 건물이었고, 그곳에서 흰머리를 곱게 땋아 올린 우아한 여주인이 그들을 맞이했다. 여주인과 요코는 오랜 친구 사이답게 서로 짖궂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도 깊은 신뢰를 보여주어 류이치를 미소 짓게 했다. 일행은 기대하던 노천탕으로 향했으나, 그곳에서 장난꾸러기 원숭이가 짐 속의 옷을 훔쳐 가는 소동이 벌어져 한바탕 난리를 치르기도 했다. 알고 보니 여주인은 원숭이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었고, 강단 있는 친구 요코가 원숭이를 혼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초대했던 것이었다. 소동 끝에 차려진 저녁 식사는 싱싱한 해산물과 산나물이 가득한 호화로운 밥상이었고, 아이들과 보호자들 모두 감탄사를 터뜨리며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 아이들은 여관 내 레크리에이션 룸에 모여 고리 던지기와 사격 게임에 열중했다. 코타로는 고리 던지기에 도전했다가 실패하여 잠시 풀이 죽기도 했지만, 형 류이치와 친구들이 함께하는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곧 다시 즐거움을 찾았다. 로비 벽에 붙은 선녀 전설 포스터를 보며 동물들에 관심을 보이던 코타로는 다음 날 산책길에서 만난 산벚나무 아래에서 특별한 행동을 시작했다. 코타로는 바닥에 떨어진 벚꽃 잎들을 하나둘 소중하게 주워 모으더니 자신의 주머니를 가득 채웠다. 류이치가 무엇을 하는지 묻자, 코타로는 여관에 남은 할머니와 사이카와에게 선물할 것이라며 작고 통통한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코타로는 꽃잎이 시들까 봐 걱정하며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잠이 들었다. 다행히 꽃잎은 류이치가 우려했던 것만큼 시들지 않았고, 코타로는 정성껏 모은 벚꽃을 요코와 사이카와, 그리고 여관 여주인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코타로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하며 크게 기뻐했고, 류이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몽실몽실하고 따뜻한 기분을 느꼈다. 부드러운 봄바람이 불어와 벚꽃 잎을 흔드는 가운데 류이치와 코타로는 활짝 웃고 있는 산벚나무를 함께 올려다보았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어느덧 따스한 봄의 기운이 가득 찼다.
<오늘의 연애운을 알려드립니다.>
이누이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며 자신의 최악인 연애운에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드라마 속 미남미녀들의 화려한 러브신을 보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나 되어서 여자친구 하나 없는 오빠를 한심하게 여기는 여동생 미카와 말다툼을 벌였다. 이누이는 여동생의 무심한 발언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한 소녀의 환상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것은 과거 가발을 썼을 때 너무나 귀여웠던, 하지만 실상은 자신과 같은 성별인 남학생 카시마 류이치의 모습이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달래려 여동생의 패션 잡지를 난폭하게 넘기던 그는 이번 달이 애인을 만들 기회이니 소극적으로 굴지 말고 상대의 시야에 들어가려 노력하라는 별점 코너의 문구를 발견했다. 미카는 오빠가 잡지를 찢었다며 화를 내며 변상을 요구했고, 이누이는 결국 다음 날 잡지를 새로 사 오기로 약속하며 복잡한 마음을 안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이누이는 기분 전환을 겸해 쾌청한 날씨 속으로 외출했다. 서점에서 여동생의 잡지를 찾으려던 그는 우연히 카시마 류이치가 한 여학생(우시마루)과 함께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 두 사람의 다정한 뒷모습을 보며 류이치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것인지 의심하던 이누이 앞에 연극부 고문인 쿠마즈카 야요이 선생님이 나타났다. 선생님은 숨어있는 이누이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신비로운 말을 건네며 그를 당황하게 했고, 이누이는 서둘러 서점을 빠져나왔다. 이후 영화관과 노래방을 전전하며 기분을 내려 했지만, 가는 곳마다 류이치 일행과 마주치는 바람에 이누이의 마음은 갈수록 초조해졌다. 다시 마주친 야요이 선생님으로부터 마음을 억지로 지우려 하지 말고 서서히 진정되길 기다리라는 조언을 들은 그는 결국 잡지만 사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역으로 향하던 이누이는 류이치가 곤경에 처한 장면을 목격했다. 류이치는 등에 어린 동생 코타로를 업은 채, 동행하던 여학생을 희롱하며 길을 막아서는 불량한 남자 셋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누이는 류이치의 성실하고 곧은 눈빛이 오히려 위험을 초래할까 걱정되어 자신도 모르게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어젯밤 본 별점의 조언대로 적극적으로 시야에 들어가려던 그는 기세 좋게 달려들다 그만 발밑의 돌에 걸려 남자들에게 얼굴부터 들이받으며 요란하게 고꾸라졌다. 참혹한 등장에 분위기가 얼어붙은 사이, 때마침 나타난 사이카와와 코타로, 그리고 야요이 선생님과 이사장의 박력에 남자들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이누이는 창피함에 도망치려 했으나 발목을 삐어 움직일 수 없었고, 결국 류이치의 부축을 받으며 모리노미야 저택으로 향하게 되었다.
저택에 도착한 이누이는 사이카와의 능숙한 치료를 받으며 류이치와 어색하게 마주 앉았다. 류이치가 데이트를 방해해서 미안하다는 이누이의 사과에 우연히 만나 동행했을 뿐이라며 환하게 웃자, 이누이는 그의 미소에서 여장했을 때의 잔상을 느끼면서도 그가 강한 마음을 가진 남자라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류이치는 이누이의 턱에 난 작은 상처까지 정성스럽게 소독해주었고, 그 과정에서 형제의 천진난만한 눈빛과 마주한 이누이는 쑥스러운 마음에 둘의 뺨을 잡아당기며 비로소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훈훈한 시간도 잠시, 집으로 돌아온 이누이는 싸움통에 잃어버린 잡지 때문에 여동생 미카에게 다시 한번 거센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여전한 불운에 한숨을 내쉬며 도대체 언제쯤 연애운이 순조로워질지 막막해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귀여운 당신>
배우 마미즈카 코우스케의 아내 마미즈카 우미와 쌍둥이 아들 타쿠마, 카즈마는 모리노미야 학원 이사장의 권유로 온천 여행을 떠났다. 소속사 방침에 따라 결혼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코우스케는 평소 가족과 함께 외출하기 어려웠기에 내심 함께 가고 싶어 했으나, 불규칙한 촬영 일정 때문에 홀로 남게 되었다. 하필이면 가족이 없는 날 촬영이 일찍 끝나버리자 코우스케는 대기실에서 한숨을 내쉬며 적적해했다. 그는 매니저인 코쿠보에게 혼자 밥 먹기 외로우니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지만, 일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코쿠보에게 어린애 같은 소리 하지 말라는 호된 꾸중만 들었다.
터벅터벅 대기실을 나선 코우스케는 복도에서 아침 특촬 드라마 ‘절대전사 저스티 나이트’의 주연 배우인 키사카타 아사히를 만났다. 아사히는 코우스케의 가족이 여행을 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혼자 있는 것보다 재밌을 것이라며 그를 어딘가로 이끌었다. 두 사람은 지하철을 타고 소규모 극장들이 모여 있는 거리의 어느 상가 지하 술집으로 향했다. 그곳은 연극인들이 모이는 장소였고, 아사히는 방 안에서 술을 마시던 동료들에게 코우스케를 스페셜 게스트로 소개했다. 갑작스러운 환영 인사에 당황한 코우스케는 뒷걸음질을 치다 기둥에 머리를 부딪치며 엉성하게 첫인상을 남겼다.
자리에 앉은 코우스케는 주변의 미청년 배우들을 보며 감탄하다가, 맞은편 청년에게 맥주를 따라주려다 잔을 넘치게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분위기가 어색해지려던 찰나 아사히가 활기차게 건배를 제의하며 상황을 수습했다. 술자리가 이어지며 연극인들은 코우스케가 연기한 악역 ‘보이드’의 차가운 눈빛을 찬양했지만, 실제 코우스케의 천연덕스럽고 어리숙한 모습 사이의 격차에 매력을 느꼈다. 코우스케는 동료들이 보여준 2.5차원 무대 팜플렛을 유심히 살피며, 외형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내면까지 몰입해 연기하는 후배들의 노력에 진심 어린 경의를 표했다.
흥이 오른 코우스케는 맥주 몇 잔에 취기가 올라 자신의 아내와 아들 이야기를 발설하려 했으나, 위험을 직감한 아사히가 재빨리 그의 입을 막아 비밀을 지켜주었다. 코우스케는 젊은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 고민에 정성껏 답변해주며 훈훈한 시간을 보냈다. 이때 아사히의 연락을 받은 매니저 코쿠보가 술집으로 들이닥쳤고, 코우스케의 옷깃을 잡아 흔들며 당장 집에 가라고 호통을 쳤다. 코쿠보는 소란을 피운 것에 대해 연극인들에게 정중히 사과한 뒤, 벽에 기대어 천진난만하게 잠든 코우스케를 부축해 차에 태웠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사히는 코우스케가 남을 홀리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 말했고, 코쿠보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코우스케를 내버려 두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작은 류이치 군과 큰 코타로 군>
류이치는 매일 밤 동생 코타로가 좋아하는 우루룽 판다 시리즈 그림책을 읽어주며 형제만의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그날 읽어준 책은 작은 판다 씨가 커져서 영리하고 상냥한 어른이 되어 모두를 지켜주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림책을 읽어주다 잠이 든 류이치는 문득 자신의 뺨에 닿는 푹신한 감촉에 눈을 떴고, 손과 발이 검은 털로 덮인 채 몸이 코타로만큼 작아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황하며 코타로를 찾던 류이치 앞에 판다 옷을 입은 고등학생 소년이 나타나 그를 형아라고 불렀는데, 그는 다름 아닌 훌륭하게 성장한 모습의 코타로였다. 곧이어 시야가 바뀌며 모리노미야 학원 보육원이 나타났고, 그곳에는 겉모습만 고등학생으로 변했을 뿐 속마음은 4살 그대로인 타카와 키린, 쌍둥이 형제와 미도리가 판다 옷을 입은 채 류이치를 반겼다.
아이들은 고등학생의 체격과 힘을 가졌으면서도 여전히 철없는 행동을 이어갔고, 작아진 류이치는 이들을 통제하려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애를 먹었다. 타카가 장난감 칼을 휘두르다 넘어져 칼이 부러지자 대성통곡을 시작했고, 카즈마가 붙잡고 있던 고양이가 미도리에 의해 자극받아 날뛰면서 보육원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고양이가 선반을 건드려 미도리 쪽으로 쓰러지려 할 때 성장한 코타로가 민첩하게 몸을 던져 선반을 막아냈지만, 결국 선반 안의 책과 장난감들이 쏟아지며 아이들의 소중한 물건들이 망가지고 말았다. 울음바다가 된 아이들 사이에서 류이치는 자신이 너무 작고 무력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눈물을 쏟았다. 그때 커진 코타로가 류이치를 다정하게 안아주며 위로했고, 다른 아이들도 모두 다가와 류이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아이들의 온기에 눈물을 멈춘 순간 류이치는 원래의 고등학생 모습으로 돌아왔고, 아이들도 평소의 어린 모습으로 변해 작별 인사를 건네며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난 류이치는 곁에서 곤히 자는 코타로를 보며 그것이 태교용 그림책의 영향으로 꾼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책상 위 상자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전에 보내주셨던 편지들을 꺼내 읽으며 그리움에 젖었다. 류이치는 비록 부모님을 다시 볼 수는 없지만, 자신이 코타로를 돌보는 동시에 코타로와 주변 사람들에게서 큰 힘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그는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코타로와 함께 씩씩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부모님의 편지를 소중히 상자에 담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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